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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 Happy Letter Nov 17. 2023

불안을 바라보는 또 다른 불안한 시선

*수능시험을 망쳤다고 우울해하는 수험생에게


지나친 불안과 걱정으로 불안 장애(Anxiety disorder) 증세를 보이거나 전문적 진료를 받아야 할 분들은 정신의학과 전문가인 의사에게 상담받으시길 바라며 이 글은 필자의 지극히 개인적 단상임을 전제로 쓰인 것임을 양지(諒知) 해 주시길 바란다. 또한 여기서 글의 논지(論旨)를 서술하기 위해 언급되는 직업, 믿음 그리고 관련 분야나 업계 종사자들을 폄훼할 의도가 전혀 없음을 함께 밝혀 둔다.




근심, 걱정으로 인한 과도한 불안은 여러모로 우리의 의식과 무의식에 큰 영향을 미치며, 해소되지 않은 채 반복되는 지속적인 불안감은 어떤 '방어기제'(Defence Mechanism)로서의 반응과 긴장 상태를 넘어 신체적, 정신적으로 견디기 힘든 심각한 질환이 되기도 한다. 우리들 대부분은 이별과 상실에 대한 불안, 무관심과 소외, 좌절과 실패에 대한 불안, 본능적으로 느끼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로 인한 불안 등 다양한 형태로 거의 매일 불안을 느끼며 살아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가 불안을 느껴야 위험에 대한 방어와 대처를 하게 되므로 이러한 감정이 건강한 반응임은 당연하지만 과도하고 병적 질환에 해당되는 불안은 관련 전문가의 의학적 진단과 치료가 필요하다. 다만, 필자는 불안을 대하는 '또 다른 시선'으로, 바로 불안을 이용하고 있는 주체와 사례를 짧게나마 한 번 살펴보고자 한다.


대표적인 예로, 인간이 본능적으로 갖고 있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인류는 어떤 믿음을 창조 내지는 발명해 내지 않을 수 없었다는 주장도 있다. 죽지 않고 영원히 살 수 있는 영생(永生)을 누리는 것은 (이 생에서는 어쨌든 죽음을 기꺼이 받아들여야만 하고) 일단은 한 번 죽은 이후인 내세(來世)에서만 가능하다는 교리나 믿음을 여기서 갑론을박(甲論乙駁) 하자는 것은 아니고, 다만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은 인류 역사의 시작과 함께 다양한 주술 또는 종교와 같은 신앙의 형태로 나타나 공존해 왔음을 볼 수 있다.


보다 현실적이고도 일상적인 예로는 우리가 일상생활 중 겪게 될지도 모르는 사건 사고, 재난과 질병으로 인한 금전적 부담에 대한 걱정과 불안 때문에 각종 보험(保險 insurance)에 가입하는 것을 들 수 있다. 보험 몇 개 가입하는 것을 문제 삼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이런 재난, 질병 또는 생명 보험 등을 가입하는 기저(基底)에는 어쩌면 이런 불행한 일들이 우리에게도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우리 일상에 함께 공존함을 여실히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약이 좋다고 남용(濫用)하면 안 되듯 보험 가입도 불안 심리에 중독된 것처럼 무분별하게 남발(濫發)하면 안 될 것이다. 그리고 이별과 상실, 재난에 대한 불안감은 이해는 하지만 그렇다고 요즘말로 무슨 이성 간 "어장관리"하듯 보험을 들 수는 없지 않은가?


우리에게 불확실한 앞날에 대한 불안감으로 나타나는 또 다른 예는, 바로 우리 사회 속 미래의 성공여부와 결부된다고 보는 학벌과 학력이다. 우리들 대부분은 명문대학이나 상위권 대학을 진학해야만 사회적으로 성공했다고 인정받을 수 있고, 또한 이 학벌과 학력이 주는 배경으로 취업도 보다 수월하게 할 수 있으며 향후에 보다 안정적으로 경제적 부를 보장받을 수 있다고 믿고 있다.


그러다 보니, 우리 모두는 학교에서 서로서로를 밟고 서야 하는 "지옥"같은 극한의 경쟁을 하며 청소년기를 보내고 있다. 그 결과는 시험성적으로만 수치화되어 나타난다. 독자분들 중에도 아직까지도 잊히지 않는 트라우마(trauma) 같은 지난 학창 시절 입시준비 과정을 기억하고 있는 분들이 많이 있으리라 본다.


예전에 필자도 고등학생이 되고 첫 학기 첫 수업시간부터 선생님들이 "지금 3년 시험공부가 앞으로 여러분들 인생의 30년을 좌우한다!"라는 말을 들어야 했다. 이 말을 듣고 난 뒤로는 학창 시절 내내 극도의 불안감에 시달리며 마음대로 놀지도 못했고 조금이라도 잠을 더 자게 되면 자책감으로 괴로워했다. 시험 준비만 하던 그때 그 시절의 잃어버린 학창 시절 시간에 대한 보상심리는 가슴 아프지만 훗날 그 어디서도 대신 치유받지 못했다.


지금은 중학교 때부터 앞으로의 6년이 인생을 좌우한다 운운하거나, 아니면 초등학교 때부터 (의대) 대학입시를 준비한다고도 하는데 이런 과열된 무한 입시경쟁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시험성적에 찌든 한국 대입수험생들을 생각할 때마다 씁쓸한 생각이 든다. 물론 열심히 공부한 성적 우수 학생들의 노력은 인정받아 마땅하겠지만 정말 한국 사회는 3년, 또는 6년(혹은 그 이상)의 대학 입시준비가 한 학생의 인생을 결정짓는지, 아니 결정지어도 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우리에게 다가올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을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은, 가장 확실한 종교와 보험 그리고 학벌 밖에 없을까? 이 3가지만 "장착"(裝着)하고 있으면 과연 아무런 문제없이 잘 살아갈 수 있을까?


물론 우리는 경쟁사회에 살고 있다. 생존 본능처럼 이런 무한 경쟁 속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한다. 반수를 하던, 재수 삼수를 하던 반드시 명문대(가능하면 의대)에 입학해야 한다. 나중에 사회에서 높은 연봉의 좋은 직장에 취직하고 성공하고 출세하고 큰 차 갖고 보다 넓은 아파트에 살려면 우선 눈앞에 있는 수능시험을 잘 봐야 한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정서적 안정감'을 갖기 어려운 불우한 가정환경에 처해 있거나 사교육은 꿈도 못 꾸고 대학 진학도 포기한 채 오히려 생활고에 시달려야 하는 극빈층 자녀들, 가정형편이 어려워 많은 남매들 사이에서 오빠나 남동생에게 대학진학을 양보하고 학업과 진학 대신 돈 벌러 나가야 했던 분들이 들으면 과연 어떤 생각을 하실까?




"전쟁"같은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어제 드디어 끝났다. 수능을 막 끝낸 약 50만 수험생들은 어제오늘 꼼꼼히 가채점을 거듭해 보았으리라. 대부분의 수험생들이 올해 수능의 높은 체감 난이도로 예상보다 만족스럽지 못한 최종 점수 결과가 나올 것 같아 노심초사(勞心焦思) 많이들 걱정하고 있을 것 같다.


이 글의 소제목처럼 '수능시험을 망쳤다고 우울해하는 수험생에게' 하고 싶은 말은, 혹시 가채점 결과가 너무 안 좋아도 많이 낙담(落膽) 하지는 않길 바란다 이다. 수능시험 실패 한 번으로 인생 실패는 아니며, 혹여라도 그로 인해 앞으로 남은 60여 년의 인생 전체의 낙오자(落伍者)가 되었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그리고 이제 대입 수능시험 하나만 끝났다. 앞으로 또 새로운 인생의 "시험들"이 있다. 우리 인생에는 앞으로 대학 진학과 졸업장 말고도 엄청나게 많은 또 다른 새로운 도전과 시련과 변수(變數)가 기다리고 있음을 잊지 말자.


이번 수능시험을 잘 봤건 아니면 망쳤다는 생각이 들 만큼 못 봤건 그동안 시험 공부한다고 수고하셨다. 또 '불안'에 떠느라 마음고생도 많이 하셨다.


다만 여느 누구처럼 불안했던 지난 시간들이, 그리고 최종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지금 이 시간들이 훗날 어떤 트라우마(trauma)로 남지는 않을까 불안해하는 것은 그저 필자의 어설픈 기우(杞憂)일 뿐이길 바란다. 실은 이 말을 꼭 해드리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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