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단상 20

by The Happy Letter


요즘 같은 가을에 자주 눈에 띄는 '나도밤나뭇과'의 낙엽 교목, 서양칠엽수의 마로니에(marronnier) 열매는 일견 언뜻 보기엔 '밤'하고 너무 비슷하게 생겨서 (진짜밤과 구분이 어려워) 주의하지 않으면 예기치 못한 사고도 많이 난다고 한다. 그 나도밤나뭇과에 속하는 열매는 독성이 강해 위험하기 때문이다.


아직 진짜밤은 다 익지도 않았는데 산책길 나무 한 그루는 혼자서만 무엇이 그리 급한지 벌써 그 마로니에 열매를 세상에 내놓고 있다. 하지만 성급하게 땅에 떨어뜨린 그 열매는 동네 아이들이 가지고 놀뿐 아무도 거들떠보지도 않아 그 나무 그늘 아래서 그저 조금씩 썩어가고 있을 따름이다.


참열매는 느리게 익어간다는데 나는 과연 어떠한가 성찰(省察)해 보게 된다. 늘 촉박한 시간에 시달리며 그리고 그런 강박에 쫓기며 사는 일상이지만 나도 가끔씩은 "무르익을 때까지" 기다리며 유유자적(悠悠自適)하듯 여유를 좀 부리고 싶을 때가 있다. 오늘 같은 휴일 아침엔 더욱더 그렇다.


평소에도 뜨거운 차나 커피를 마실 때 자주 흠칫 놀라곤 한다. 바로 그 순간에 매사 내가 얼마나 서두르고 급한 지를 스스로 자각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특별히 좋아하는 일을 천천히 하는 게 쉽지만은 않겠지만 나도 느리게 책 읽는 방법을 배우고 싶다. 또 느긋하게 글 쓸 수 있는 습관도 익히고 싶다. 또한 그렇게 체득(體得)한 지식들이 '내재화'를 통해 내 의식에 잘 스며들기를 바란다.


나는 '나도밤나무'가 아니라 "참열매"가 제대로 익어가는데 필요한 시간을 기다리고 인내하는 "진짜밤나무"가 되고 싶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