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같은 가을에 자주 눈에 띄는 '나도밤나뭇과'의 낙엽 교목, 서양칠엽수의 마로니에(marronnier) 열매는 일견 언뜻 보기엔 '밤'하고 너무 비슷하게 생겨서 (진짜밤과 구분이 어려워) 주의하지 않으면 예기치 못한 사고도 많이 난다고 한다. 그 나도밤나뭇과에 속하는 열매는 독성이 강해 위험하기 때문이다.
아직 진짜밤은 다 익지도 않았는데 산책길 나무 한 그루는 혼자서만 무엇이 그리 급한지 벌써 그 마로니에 열매를 세상에 내놓고 있다. 하지만 성급하게 땅에 떨어뜨린 그 열매는 동네 아이들이 가지고 놀뿐 아무도 거들떠보지도 않아 그 나무 그늘 아래서 그저 조금씩 썩어가고 있을 따름이다.
참열매는 느리게 익어간다는데 나는 과연 어떠한가 성찰(省察)해 보게 된다. 늘 촉박한 시간에 시달리며 그리고 그런 강박에 쫓기며 사는 일상이지만 나도 가끔씩은 "무르익을 때까지" 기다리며 유유자적(悠悠自適)하듯 여유를 좀 부리고 싶을 때가 있다. 오늘 같은 휴일 아침엔 더욱더 그렇다.
평소에도 뜨거운 차나 커피를 마실 때 자주 흠칫 놀라곤 한다. 바로 그 순간에 매사 내가 얼마나 서두르고 급한 지를 스스로 자각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특별히 좋아하는 일을 천천히 하는 게 쉽지만은 않겠지만 나도 느리게 책 읽는 방법을 배우고 싶다. 또 느긋하게 글 쓸 수 있는 습관도 익히고 싶다. 또한 그렇게 체득(體得)한 지식들이 '내재화'를 통해 내 의식에 잘 스며들기를 바란다.
나는 '나도밤나무'가 아니라 "참열매"가 제대로 익어가는데 필요한 시간을 기다리고 인내하는 "진짜밤나무"가 되고 싶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