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깊어가는 만큼 책을 찾는 사람들도 많아지고 있다고 한다. 여전히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이 큰 영향을 주고 있는 것 같다. 시중 온/오프라인 서점들이나 도서출판업계 및 관련업계 종사자들에게도 무척 고무적인 일이다. 문학을 애호(愛好)하는 모든 분들에게도 마찬가지지만.
새로 출간되는 베스트셀러들은 다 따라잡지 못할 정도로 많다. 하지만 "베스트셀러라고 해서 모두 작품성이 뛰어난 것은 아니다"는 견해도 있으니 저마다 가진 기준으로 가능한 한 엄선(嚴選)해서 선택적 독서를 할 수밖에 없는 것도 사실이다.
독자 입장에서 한 권이라도 더 빨리 읽어내려 하겠지만, 요즘 다른 한편에서는 "속독"(速讀) 보다는 "천천히 읽기"가 화두(話頭)가 되고 있다고 한다. 이런 토픽을 고려하자면 개인적으로 가용(可用)할 수 있는 독서 시간이 얼마나 많은지 여부가 관건이며 이는 전적으로 각자 개개인이 판단할 몫일 것이다.
필자도 책 이야기를 한번 써보려 한다.
무슨 서평이나 평론이 아니라 그냥 책에 관한 얽히고설킨 개인적인 일상이다. 책 욕심(?), 아니 독서에 대한 의욕과 애정이 많으신 분이라면 누구나 이미 비슷한 경험이나 생각을 한 적도 있을 것 같아 비록 새삼스럽게 느끼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필자 나름대로 책과 관련된 단상(斷想)을 여기에 기록해 두고자 한다.
필자도 오랫동안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는 어떤 강박 같은 것에 시달려왔음을 여기서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살아오면서 실제로 책을 많이 사서 읽었고 지금도 제법 가지고 있다. 하지만 지금 가지고 있는 책들을 좀 선별해서 정리 정돈하고 더 이상 소장(所藏)하지 않을 책들은 기증(寄贈)하거나 버리려고 하는데 잘 안된다.
꼭 이사 갈 때가 아니어도 집안 대청소 때 등 평소에도 사모은 책들을 좀 솎아 내려고 하는데 매번 쉽지 않다. 기증하거나 아깝지만 버릴 책과 소장용으로 오래도록 보관하고 싶은 책의 구분이 어렵고, 앞으로 또다시 읽겠다는 다짐으로 선별할 책에 대한 주관적 기준도 그때그때마다 다르고 때로는 그 대상이 점점 더 확대되는 듯하다. 그리고 아직 다 못 읽은 책들도 여럿 있고 심지어 "아껴가며" 조금씩 읽는 책들도 있다.
여담이지만, 예전에 어느 TV방송 프로그램에서 집에 갖고 있는 책들 중 끝까지 다 읽은 책의 ‘완독률’(%)을 언급하는 장면들을 보았는데 무척 흥미로왔다.
어떤 책의 완독률 정도를 퍼센트로 나타내는 호킹 지수(Hawking指數) - 독자가 구매한 책을 실제로 읽었는지를 나타내는 지수 - 기준으로 볼 때 세계적으로 널리 잘 알려진 유명한 책들도 실제로는 끝까지 읽은 비율의 수치가 예상외로 다들 아주 낮아 좀 놀랐던 기억이 있다.(처음엔 큰 관심을 갖고 그 책을 구매했지만 막상 몇 페이지 못 읽은 채 중도에 그만두고 포기하는 경우를 포함하여 그 완독률이 한자리 수로 아주 낮은 경우도 많았다.)
각설하고, 그런데 나는 왜 책을 버리지 못하는가?
필자도 여러 차례 책장 정리를 할 기회가 있었지만 여전히 - 공간(?)에 비해 - 책들이 좀체 줄어들지 않는 것 같다. 물론 "나중에 꼭!" 읽으려고 사둔 (고이 모셔둔) 새책들도 있다. 언젠가는 읽을 시간이 있겠지 하면서. 실은 책꽂이에 책들은 바라만 봐도 흐뭇하다. 밥 안 먹어도 배 부른 것 같은 그런 느낌이라면 좀 중병(重病) 수준일까? (서점 가서 책 둘러보는 것도 좋아한다!)
그런데 정작 다 읽었거나 이젠 다소 불필요해진 옛책들을 여전히 버리지 못하는 것은 나중에라도 꼭 다시 읽겠다는 의지 때문이라기보다는 불현듯 나의 내면 깊숙이 자리 잡은 어떤 '불안심리' 때문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일부 독자(작가)분들도 비슷한 경험과 느낌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요즘 들어 더더욱 책들로부터 어떤 "분리 불안"(分離 不安) 같은 혼란함을 더 많이 느끼는 것 같다. 그래서 필자의 손때 묻은 옛책들은 여전히 줄어들지 않고 있다.
참고로, (필자가 의학적인 내용을 논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그 의학적 명칭, 분리 불안 장애(Separation Anxiety Disorder)를 찾아보니 뇌신경정신질환, 소아청소년질환으로 병명이 나와 있다.
(이에 대한 보다 상세한 내용 및 진단과 진료는 관련 전문의와 상의하시고, 여기서는 필자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그 '원인' 일부만 이 글 맨 아래에 별도(Daum [질병백과])로 첨부해 두었다.)
무엇보다도 필자는 새로 출간된 책을 사서 읽는 것이 재밌다. 한자리에 앉아 몰입해서 읽을 때면 그 책을 통해 얻게 되는 이른바 그 '간접 경험'의 즐거움이 너무 좋기 때문이다. 솔직히 필자는 글 쓰는 시간보다는 글 읽는 시간이 더 즐겁다.(필자의 일천한 경험이지만, 글 쓰는 일은 정신적으로 뿐만 아니라 육체적으로도 더 힘들다.)
다른 작가가 쓴 글[책]을 읽으면서 그 작가의 사유(思惟)를, 그의 상상 속 혹은 현실 고뇌를, 때론 그의 유희(遊戱)를 따라가다 보면 정말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문제는 매일 글 읽을 시간도 그리고 글 쓸 시간도 부족하다는 사실이다.
독서는 학문적으로 좀 더 다양한 지식을 깊이 있게 공부하는 것 이외에도 인격과 품성을 수양(修養)하고 함께 살아가는 사회공동체 속 교양을 함양(涵養)하는데 꼭 필요한 중요한 요소다고 생각한다. 물론 필자도 좀 아는 척, 혹은 좀 현학적(衒學的)으로 보이려 애쓰던 철부지 시절이 있었음을 부인하진 않는다.
그래서 다시, 나는 왜 책을 버리지 못하는가?
필자의 짐작으로만 볼 때 우려되는 대목이 있다. 단지 책을 읽는 것만이 아니라 책을 처분하고 버리는 행위라든가, 또는 언제 어디를 가든 ("여가 선용"의 목적으로 독서에 몰입하는 것이 아니라) 책을 읽든 안 읽든 항상 옆에 두어야 마음이 편할 정도가 되면 너무 지나친 강박이 아닐까 싶다. 필자가 지금 이 글을 쓰는 이유는 개인적으로 후자를 주목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필자가 무턱대고 어떤 레어템처럼 소장(所藏)만을 목적으로 특정 책들을 사 모으거나 들고 다니지는 않는다. 나름대로 선호하는 책 선정과 구입 기준이 따로 있고 지출할 예산도 미리 생각한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책수집가"는 아닌 셈이다.
어쨌든 위에 반복된 자문(自問)은 필자의 새로운 숙제가 되어버린 것 같다. "분리 불안 장애"와 "책" 정리정돈의 상관관계 말이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좀 더 딥하게 들여다보고 싶지만 어쩌면 나의 깊은 무의식에 아주 예전 유년시절부터 (나도 미처 모르는 사이) 어떤 "분리 불안"이 내재하고 있어 그 책들과의 이별[분리] 고통에도 그대로 투영(投影)되고 있는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필자는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다"라는 말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다들 공감하시듯이 독서에 계절이 따로 있을 순 없다. 그래도 "가을엔" 책을 더 많이 읽을 수 있길 바랄 뿐이다. 왜냐하면 책을 읽는다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고 또 즐겁기 때문이다.(세상에서 이 두 가지보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를 더 잘 설명할 수 있는 말이 또 있을까 싶다.) 그런데 세상엔 내가 읽고 싶은 책들이 정말 너무 많다. 그리고 그런 책들은 내가 나이 들어가는 동안 더욱더 많아질 것이고!
최근까지 필자는 너무 '글쓰기'에만 많이 치중한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브런치에서도 매일 글을 쓰면 필력(筆力)이 는다고 하는데 필자는 "글력"보다는 손가락 '근력'(筋力)만 더 늘어났는지도 모르겠지만 앞으로는 책 읽기에 시간을 좀 더 많이 할애하고자 한다. 물론 필자에게도 독서는 계절과 상관없이 '일상생활'이어야 한다.
갑자기 예전 학창 시절이 생각난다. 읽고 싶은 책을 돈 주고 살 여력이 없어 친척집에서 빌려 읽기도 했다. 도서관에서 찾고 있던 책들을 몇 권 대출해서 무거운 줄도 모르고 두 팔로 감싸 안고 들떠서 기뻐하던 그 시절 그 순간들도 다시 생각난다.
어쩌면 앞서 언급한 '분리 불안'의 배경엔 용돈 다른 데 안 쓰고 몇 푼씩 저축해 두었다가 서점으로 달려가 읽고 싶었던 신간 소설책을 사서 곧바로 재밌게 읽었던 그 시절의 '배고픔의 기억'이 아직 남아있는지도 모른다.
그때 그 당시엔 헌책방도 자주 갔었다. 그 시절을 회상하며 쓴 필자의 창작시, [헌책방에서] 중 한 구절을 여기에 옮겨 적으며 두서없는 글을 이만 마친다.
갈 곳 없어 떠돌던 청춘 시절 / 이사를 몇 번이나 해도 / 그 책들 버리면 / 내 영혼(靈魂) 마저 달아날까 두려워한 적 있다 / 아마 그때부터였나 보다 / 가진 것 하나 없던 뜨거운 청춘 시절 / 누군가의 손을 떠난 그 수많은 헌책들 앞에서 / 책 뒤지면 사금(沙金) 캐는 심정 같다 생각한 게
(출처 : [헌책방에서] 中 by The Happy Letter)
호킹 지수(Hawking指數): 독자가 구매한 책을 실제로 읽었는지를 나타내는 지수. 책의 전체 페이지를 100으로 가정하고 독자가 끝까지 읽은 비율을 계산한다. 호킹의 저서, 시간의 역사가 1000만 부 이상 팔렸음에도 완독률이 낮은 데서 붙은 이름이다.(다음[어학사전])
분리 불안 장애(Separation Anxiety Disorder) : [원인] : 분리 불안 장애가 있는 가정은 대개 가족들 사이의 관계가 지나치게 가깝습니다. 부모는 자녀를 과보호하며, 아동은 부모에게 의존적이며 부모의 사랑을 지나치게 갈구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아이의 타고난 기질과 관련될 수 있습니다. 가족 내 불안 장애가 있는 경우 더 흔하게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또는 부모 자신이 불안하여 아이와 떨어지는 것을 힘들어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과거에 경험한 가까운 친척의 죽음, 부모의 질병, 아동의 신체적인 질병, 이사, 입학, 전학과 같은 스트레스가 아동의 불안을 증가시키기도 합니다.(출처 : 다음 [질병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