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묏자리?

by The Happy Letter


헤아리기 힘들 만큼 많은 재산을 가진 "억만장자"(億萬長者)라도, 정말로 "모든 것"을 다 가진 사람이라도 부러워하는 것이 있을까?


딱 하나가 있다고 한다. 우선 돈이 셀 수 없을 만큼 아주 많이 있으면 가능한 한 오래 살기 위해 건강을 잘 유지하고 관리하는 것이 인생 최대의 과제일 것이다. 하지만 대체로 보아 이 또한 어느 시점(연령)까지 한계가 있다. 아무리 좋은 최첨단 의료기술과 최상의 혜택을 누린다고 해도 말이다. 그러다 보니 무엇보다도 더 아쉽고 제일 부러운 것은 '시간'이다고 한다.


세상에서 제일 공평한 것이 시간이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다 똑같이 '제한적'으로만 주어진다는 사실 앞에 만감(萬感)이 교차한다. 그래서 우리는 나이가 좀 들면 모두들 청춘의 나이를 부러워하게 된다. 이구동성(異口同聲)으로 그 젊음이 부럽다 한다. 그렇다, 세상 모든 것을 다 가진 사람도 시간이 제일 아쉬운 것이다.


노동을 하며 돈을 벌려고 할 때도 취미 등 여가생활에도 시간을 투자한다는 말을 쓴다. 뭘 하려고 해도 시간이 없어서 못한다 한다. 허튼짓을 하면 시간 낭비하지 마라 한다. 그만큼 우리 모두에게 시간은 소중하고 값진 것이다.


흔히 들어서 이미 잘 아시겠지만 나이가 들어가면 갈수록 체감하는 시간은 더 빨리 지나간다고 한다. 말하자면 40대에는 시속 40km/h으로 간다라면 50대엔 시속 50으로, 또 60대엔 시속 60의 속도로 시간이 빠르게 지나간다는 말이다. 작가(독자)분들 중 요즘 평소에 이런 말을 가끔씩 하시거나 또 실감하신다면 좀 연세가 드신 분일 것이라 짐작해 본다.


문제는 시간을 잡아둘 수가 없다는 것이다.(아무리 돈이 많고 권력이 세다 해도) 시간은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계속 흘러가고 내가 자고 일어나기만 해도 하루의 삼분의 일(1/3)은 그냥 훌쩍 지나가고 만다.(그래도 잠은 꼭 자야 한다.)


뭔가 어떤 정해진 목표를 달성하고 더 높은 곳을 향해 도전하거나, 특히 100m 출발선에 서서 달리기 경주를 하듯 (당연히) 치열한 경쟁을 해야 쟁취도 하고 생존도 할 수 있는 것이 우리의 일상이다. 더 빨리 더 먼저 도달해야 하고 더 많이 성취하고 소유해야 지지 않고 무시당하지 않고 인정받을 수 있는 경쟁사회가 우리가 속한 일상이다. 그 또한 맞는 말이다.


비록 우리가 '시간'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 하더라도 그래도 조금이라도 그 시간의 속도와 압박에서 벗어나려면 이렇게 계속 흘러 지나가는 시간에 쫓기진 말고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필자에게도 그리 많은 시간이 남아있는 것은 아니다고 생각하기에 - 비록 시간은 혼자서도 중단없이 계속 흘러 지나가더라도 - 나 자신은 좀 "천천히" 사는 삶을 살아가고 싶다.




실은 평소 좀 천천히 먹고 좀 천천히 마시고 천천히 읽고 천천히 쓰고 하는 식으로 생활습관과 패턴을 바꿔볼 요량으로 이 글을 쓰게 되었다. 절대로 한가한 이야기가 아니다. 필자가 엄청나게 뭔가를 이미 많이 이루어내고 성취했다거나 또는 소유하고 있다는 말도 물론 아니다. 하지만 이제부터라도 나름대로 천천히 자족(自足)하는 삶을 살아보려 한다. 내가 스스로 정한 대상에 좀 더 시간을 쓰며 남은 삶에 충실하고자 한다.


저마다 개개인이 노년에 가지고 있는 여생(餘生)의 목표와 소원이 다 다르겠지만 중년의 필자가 개인적으로 갖고 있는 소박한 욕심(?)은 - 이 글을 쓰는 계기로 - 지금껏 번아웃(burnout)에 시달리면서도 급하게 앞만 보며 (저 높은 정상을 향해) 정신없이 달려온 그 삶의 속도를 좀 늦추어보고자 함이다. 소득 활동을 하든 여가선용을 하든.


우리 삶 속에는 길을 걷듯 천천히 가며 또 찬찬히 보아야 제대로 잘 볼 수 있는 것이 많다고들 하지 않는가? 그리고 이 나이에 무작정 "더 빨리" 달려가기만 한들 기다리고 있거나 마주 할 곳은 달리 그렇게 많아 보이진 않는다.(부정적인 뜻은 아니고 실제로 필자의 주변 지인들 중에도 자신이 누울 묏자리나 납골당을 미리 봐두러 다니시는 분들도 있다.)
















묏자리 : 사람의 무덤을 쓸 만한 자리. 또는 쓴 자리.

(Daum [어학사전])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