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크리스마스 트리의 항변(抗辯)

THL 창작 시(詩) #52 by The Happy Letter

어떤 크리스마스 트리의 항변(抗辯)

나무농장 땅속 깊이 뿌리내리고

고이고이 잘 자라왔는데

12월 초 어느 날

뿌리만 남기고 잘려나가

한 달 남짓 낯선 집 거실 구석에

벌 받듯 꼿꼿이 서 있는 신세가 된다

팔다리 몸뚱이 조이는 장식불 전깃줄에

화려한 데코에 힘겹게 눌리며

크리스마스 연말연시 연휴 내내

사람들 웃음소리 노랫소리

진수성찬(珍羞盛饌) 호화요리 술 파티

옆에서 혼자 묵묵히 지켜보며

물 한 모금 얻어먹지 못하고

건조한 실내 공기에 서서히 말라간다

새해 1월이 시작되면

크리스마스 트리 수거 지정일까지

집 앞 길가에 무참히 버려지고

그날이 오면 이른 아침

시청 쓰레기 수거차는

그동안 바짝 말라 가루처럼 부서지는 트리들

하나 둘 무심히 수거해 가겠지

근처 동네 쓰레기 하치장(荷置場)에

화장할 시체(屍體)처럼 차곡차곡 쌓아가겠지

환경보호 미명(美名)하에 재배하더니만

나를 또 다른 쓰레기로 만들고 마는구나

다음 생에 다시 태어나면

그래도 창고에 다용도실에 다시 보관되는

경쟁자, '플라스틱' 트리로 태어나야 하나

그도 나도 들러리긴 마찬가지고

그도 나도 슬픔과 설움은 그대로이겠지만

by The Happy Let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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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러독스 [paradox] : [논리] 일반적으로는 모순을 야기하지 아니하나 특정한 경우에 논리적 모순을 일으키는 논증. 두 가지의 상반된 것을 말하기 때문에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 어떤 진실을 담고 있는 것으로 간주한다.(다음 [어학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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