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활동에서 '돈'은 우리의 당장 먹고사는 문제인 의식주 해결을 위해서도 반드시 벌어야 하지만 알 수 없는 불안한 미래의 안전을 미리 대비하기 위한 '저축'으로도 필요함은 자명하다.
문제는 그 돈이 어느 정도 있어야 - 현재의 생존과 미래의 안전을 위해 - 충분한가라는 물음이다. 도대체 우리는 어느 정도 돈을 갖고 있어야 하며, 어느 정도 벌어야 만족할 수 있을까?
인간은 절대 만족할 줄 모르는 동물이라는 점을 제쳐두고서라도 과연 우리가 자족(自足)할 수 있는 범주나 수준이 어느 정도까지인지 한 번쯤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다다익선(多多益善)이나 옆집 보다 좀 더, 내 친구(또는 내 또래 지인) 보다 조금 더 많이 말고. 또 본인이 먹고살만하면 자식 걱정해서 더 모아야 하고 등등 제외하고라도.
물론 개개인이 바라는 것은 저마다 다를 수 있겠지만 우리는 한 번쯤 돈으로부터 스트레스 덜 받으며 살 수 있는 방안을 고심(苦心) 해 봐야 한다.
물론 가장 쉬운(?) 방법 중 하나는 지금보다 소득(수익)이 더 많아지게 더 벌면 된다. 밤 잠 더 적게 자고 쉬지 않고 더 열심히 더 부지런히 일해서 더 벌면 된다. 그런 노력들은 당연히 존중되어야 한다.(여유 있는 부모를 둔 분들은 이 글을 읽지 않으셔도 된다.)
그런 와중에 우리가 혹시라도 가끔씩 유행이라며, 또는 남들 다 하는 트렌드라며, 아니면 옆집도 사는데 누구도 장만했다는데 라며 따라 흉내 내느라 지금의 처지와 분수에 맞지 않는 소비를 하지는 않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자기만족, 과시욕(誇示慾), 충동구매, 과소비, '지름신' 강림 등의 구분과 인식은 누구보다도 본인이 더 잘 안다. 쇼핑으로 과연 스트레스가 ‘해소’되는지 여부도.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득과 이익창출을 위한 노동, 다양한 경제 활동과 더불어 시장경제 활성을 위해 '미덕'(美德)으로 꼽히고 있는 것은 '소비'(消費) 생활이다. 이 사회 경제를 위해 또 기본적인 인간 욕망의 충족을 위하여 저마다 소비하는 것을 뭐라 할 수는 없다.
하지만 돈을 버는 것보다 더 쉬운(!) 방법은 돈을 안 쓰거나 덜 쓰는 것임을 우리는 자주 잊고 사는 듯하다.
오늘도 평소 정가 10만 원 하는 상품을 50% 할인해서 5만 원에 (이번 주말까지 한정된 기간만) 판다는 광고에 시선을 뺏긴다.
단, 조건이 붙는다. 2개 구매 시에만. 2개를 10만 원만 주고 싸게 사면 나는 (상대적으로) 10만 원을 버는 것일까, 아니면 당장 필요하지도 않은 물건을 할인한다고 2개씩이나 사서 (상대적으로) 10만 원을 버리게 되는 걸까?
살레(래), 말래 묻는 듯하다.
지름신 : ‘지르다’와 '신'이 합쳐진 말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마음에 드는 물건'을 구매했을 때 '지름신이 강림하셨다'라는 식으로 사용하는 말이다. '충동적 구매'가 자신의 의지가 아니라는 것을 호소하기 위해 '지르다'에 '신'이라는 단어를 붙였다는 해석이 있다. 지름신이라는 용어는 2000년대 초반부터 사용되었는데, 2004년경에는 이른바 '지름교'도 등장했다. 소비의 영도자 '지름신'의 강림을 믿는 종교라 할 수 있겠다.(다음 [트렌드지식사전3] Daum [어학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