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 눈이 왔나 봅니다.
창밖을 보니 세상이 온통 하얗게 눈으로 뒤덮여 있네요.
이른 아침 아무도 걷지 않은 하얀 눈길 위로 한발 한발 가만히 발을 내딛다가 내 지나온 발자국들을 돌아보았습니다.
좀 삐뚤삐뚤하게 보이기도 하고 생각보다 그리 이쁘지만은 않아 보였습니다. 갑자기 얼른 뒤돌아서서 내가 남긴 발자국의 흔적을 흩트리며 지우고 싶어졌습니다.
그러다 문득 우연히 화면으로 본 바이올리니스트violinist가 생각났습니다.
순백의 오프숄더 드레스를 입고 황홀한 바이올린 연주를 마친 그의 왼쪽 턱 밑에 검은 멍자국을 본 순간 나는 울컥하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나는 음악을 잘 모릅니다. 그 바이올린이나 비올라를 연주할 줄도 모릅니다. 하지만 내가 하루하루 힘겹게 지나온 그 수많은 시간, 그 수많은 나날들이 모두 그의 ‘멍자국’처럼 나에게도 어딘가에 거무스름하게 남아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 나는 지금껏 걸어온 길에 내가 남긴 발자국들을 지우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 위엔 어떤 ‘분粉’도 바르지 않기로 했습니다.
분(粉): (기본의미) 얼굴빛을 곱게 하기 위하여 얼굴에 바르는 화장품의 하나. 주로 밝은 색의 가루로 되어 있고, 그런 가루를 굳힌 고체형도 있다.(Daum어학사전)
*Fiddler's neck : informally a.k.a. “Violin hick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