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어디에 프사(프로필 사진)로 꽃 한 송이를 올려놓으니 주위에서 너무 나이 들어 보인다고 야단이다.
다른 지인들의 프사를 보다 보면 간혹 정말 꽃 한 송이 딱 하나, 그것도 아주 붉은색의 '동백꽃'으로 올려놓은 걸 본 적이 있는데 필자는 그렇게 올드해 보인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아, 꽃을 좋아하시는구나, 아니면 특별히 이 꽃을 좋아하시나 보다 정도? 다른 사람들에게는 혹시 그 꽃 이름에서부터 벌써 너무나도 정겨운(?) 트롯 가요 제목의 향기가 물씬 풍기는지도 모르겠지만.
꽃 사진을 올리더라도 예를 들어, 프리지아(Freesia)라든가, 약간 "버러"(butter) 냄새나는 이름의 꽃을 선택해야 하나? 아니면 이 참에 아예 좀 MZ스타일의 힙(hip)한 걸로 다른 사진을 찍어서 바꿔 올려야 할까 보다.
꽃이 좋아지고 더없이 예뻐 보이는 데도 어떤 나이(연령)대가 따로 있을까? 요즘 들어 그저 길가에 핀 이름 모를 봄꽃들이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한참 쳐다볼 정도로) 다 예뻐 보이는 까닭은 무엇일까? 그냥 나이가 들어간다는 뜻일까?
나이 들어가면서 새로 만나거나 사귀는 사람도 점점 줄어들고 (기존에 알고 지내던 사람들과의 교류도 조금씩 뜸해지거나 지쳐가고), 살다 보면 한 분 두 분 세상을 떠나는 이들도 생기고, 또 어쩌면 스스로도 '자연'으로 돌아갈 날이 머지않아 곧 다가온다고 느껴서인지, 아마 그래서 더더욱 '꽃'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자연의 일부이자 그 아름다움의 극치(極致)에 달한 꽃들을 더 좋아하고 예뻐라 하는 것일까?
필자는 어릴 적에 수선화를 좋아했다. 어린 시절 교정(校庭)에 있는 화단(花壇) 청소 당번을 같이 하다가 노랗게 핀 수선화를 마주 했을 때 그 꽃이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Daffodil'이라고 처음 나에게 알려준 옛 친구가 생각난다. (그 당시에 나르시시즘(narcissism)에 대해선 과연 얼마나 이해했을까?)
어떤 계기(契機)에서 그 친구를 좋아하게 되었는지 지금은 기억이 희미하지만 우리는 각별한 우정(友情)을 다지기로 또 그 친구와 '영원히 변치 않는' 친구가 되기로 하면서 필자도 그와 함께 수선화를 '최애꽃'으로 정했던 것 같다.
또래에 비해 좀 조숙(早熟)했던 그 친구는 그 당시 좋아하는 시(詩)들을 자주 옮겨 쓰기도 하고 큰소리로 외우기도 곧잘 했다. 지금도 어렴풋이 기억난다. 어느 날인가 하루는 교실에서 쉬는 시간에 이형기(1933-2005) 시인의 <낙화>를, (줄줄 다 외우고 있던) 그 시(詩)를 짙은 녹색빛 칠판 위에 하얀 분필로 세로로 적어 내려가며 함께 한 목소리로 읊조리기도 했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철 / 격정을 인내한 /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 이하 하략)
*이형기 시집 『적막강산』
이 시(詩)의 "낙화"의 의미나 중간에 나오는 "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 등이 주는 메시지 등을 그 당시에 어떻게 또 얼마나 공감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시(詩)를 같이 소리 내어 읊조리며 우리는 마치 뭐라도 된 것처럼 괜히 좀 들뜬 기분이기도 했다.
그때 후로 한참 많은 시간이 흘렀다. 이제 '집착'이며 '아름다운 물러남'에, 그리고 '꽃이 피고 지는' 것에 좀 초연(超然)해 질 수 있을 정도가 되었는지, 또한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있는지 지금 스스로에게 다시 되물어 보고 있을 따름이다.
여기저기 꽃밭과 들판에 앞다투어 핀 봄꽃들로 봄기운이 느껴지는 데도 여기 바깥바람은 아직도 좀 쌀쌀하다. 겨울도 아니고 봄도 아닌 아주 어정쩡한 날씨 속에 산책하다가 길가에 그 노란색 나팔수선화가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이고 피어있는 것을 발견했다. 바로 그 자리에서 사진 한 장을 찍지 않을 수가 없었다.
당분간 프사에는 필자의 유년시절 추억이 담긴 이 예쁜 수선화 꽃사진을 내걸어둘 요량으로 몇 장 더 찍었다. 꽃 사진을 프사로 올렸다고, 나이 든 표 낸다고 누가 뭐라 하든 그냥 나 자신을 위한 사진이다. 내가 나를 위하여 찍고 올리는 '자기애'(自己愛) 방식에 다름 아니다.
산책길 단상을 끄적이며 옛 추억에 잠겨 그 기억을 더듬어 보다가 예쁜 꽃 사진 한 장을 여기에도 기록 삼아 올려 둔다. 나팔수선화와 그때 그 어린 시절의 추억도 함께...
P.S. 참고로, 동백꽃의 꽃말은 꽃 색깔(하얀색, 붉은색, 분홍색 등)마다 다른데 흔히 보는 붉은색 동백꽃의 꽃말은 "누구보다 그대를 사랑합니다"라고 한다.
수선화(水仙花 Daffodil) : 수선화의 유래를 보면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미소년 나르시스(나르키소스)가 제 모습에 반하여 죽어 꽃이 되었다고 한다. 꽃말은 “신비, 자존심, 고결” (출처 : [국립수목원 국가생물종지식정보 : 식물], [꽃과 나무 사전], Daum [다음백과])
힙(hip)하다 : 고유한 개성과 감각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최신 유행에 밝고 신선하다. (Daum [어학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