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연초부터 여름휴가 계획 세우는 일이 중요한 일중 하나다. 아직 초봄인데 웬 여름휴가 계획이냐고 하실지도 모르겠지만 대부분 6개월 전 또는 그 훨씬 이전부터도 미리 앞서 휴가일정을 잡는 사람들이 많다.
우스갯소리로 지인들끼리 만나면 "일 년 내내" 휴가 이야기만 한다는 말도 있다. 휴가 가기 전에는 "올해는 휴가 어디 어디로 갈 거냐?"라는 계획부터 시작해서 휴가 갔다 온 다음에는 휴가 갔다 온 여행담 같은 에피소드 모두 다 이야기하느라, 또 다음 휴가는 다시 어디로 갈 예정이다 등등 휴가를 주제로 한 대화는 좀체 끊기질 않는다.
어쨌든 휴가 시즌 몇 개월 전부터 서둘러 일정과 행선지를 정하고 호텔이며 교통(비행기) 편 등을 미리 부킹(booking)해야 원하는 곳을 확정할 수 있고 또 결제조건에 따라 요금도 그만큼 낮은 가격대 조건으로 갈 수 있기 때문이다.
필자의 매거진 <THL 창작시집>에 발행한 시작(詩作) 중 [지난여름 망중한(忙中閑)]이라는 시(詩)가 있다. 이탈리아 지중해 섬들 가운데 시칠리아(Sicilia/Sicily) 섬 다음으로 큰 섬, 사르데냐(Sardegna/Sardinia) 섬에 얽힌 기억에 관한 시다.
예전에 그 섬에 간 애틋한 추억을 회상하며 썼지만 언젠가 꼭 또다시 가보고 싶어 그 그리움을 함께 기억해 두려고 일부러 쓴 시였다. 마치 제주도 여행 가듯 훌쩍 떠날 수도 있겠지만 지금 현재로서는 언제 다시 가 볼 수 있을지 미지수이다.
섬은 육지와 떨어져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온통 바다로만 둘러싸여 있어 (배를 타고 가든, 비행기를 타고 가든) 지리적으로 고립되어 있으면서도 독립적인 자연으로, 존재 그 자체만으로도 알 수 없는 어떤 신비로운 마력(魔力)을 갖고 있는 듯하다.
그림 같은 멋진 경치와 풍경 속에 마치 꿈을 꾸는 듯 섬 속을 걸어 다니는 경험은 육지에서와는 많이 다른 감성(感性)인 것 같다. 바닷가도 육지의 바닷가와 섬의 바닷가 느낌은 확연히 다르듯이. 그래서 그 섬사람들의 삶에 관해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들은 우리의 감성을 더욱 자극하고 또 특별한 감흥과 영감(靈感)을 불러일으키는지도 모른다.
최근 필자의 매거진 <THL 행복 에세이>에 [우상(偶像)에 관하여]라는 글을 발행했는데, 필자의 예전 학창 시절 프랑스 작가인 장 그르니에(Jean Grenier)에 관한 기억을 짧게 남기며 그의 작품 중 [섬] Les Îles(1933), [지중해의 영감] Inspirations méditerranéennes(1941)을 언급한 적도 있다.
그때 유년시절엔 '우상'같은 대상은 어쩌면 좀 막연했던 것 같다. 눈에 보이거나 손에 잡히는 것이라기보다는 어떤 '꿈'처럼 마음에 품고 그리워하는 대상이었는 지도 모른다. 마치 한 번도 안 가본 미지(未知)의 어떤 '섬'처럼.
필자에게는 새로운 섬이 생겼다, 가보고 싶은 섬이. 프랑스 코르시카(Corsica [프.Corse]) 섬이다. 이 섬에 관한 이야기를 읽다가 가보고 싶어졌다. 코발트빛 블루 지중해 섬 하면 당연히 빼놓을 수 없는 섬이기도 하지만 바로 독일 작가 W. G. 제발트(Sebald)의 유고 산문집 [Campo Santo](초판 2003) 때문이다.
그가 쓴 주옥같은 황홀한 산문들을 다시 읽으면서 부지런히 자금과 시간을 모아 꼭 한번 그 코르시카 섬에 가보고 싶다. 다음에 꼭 기회가 되면 (읽는 내내 가슴 떨리게 만든) 이 책을 손에 들고 그 섬 바닷가를 따라 걷고 싶다. 천천히 그 섬마을 골목길도 걸어 보고 싶다. 물론 이 또한 지금 현재로서는 언제 가 볼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래도 우리에게 여행을 떠날, 가보고 싶고 꿈꿀 수 있는 행선지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무척 두근거리고 설레지 않는가? 내 지친 육신이 휴식을 취하며 조용히 힐링할 그곳이 아름다운 섬이라면 더더욱.
오늘은 W. G. 제발트의 [Campo Santo](캄포 산토)중 한 구절을 인용하여 여기에 기록해 둔다. 함께 기억하기 위하여...!
"당시에는 기억과 보관과 유지 중 그 어느 것도 포기할 수 없었고 그건 죽은 뒤라 해도 마찬가지였다. 반면 누구든 한 시간이면 족히 타인에게 갈 수 있고 대체 가능한 존재로 사실 이미 태어날 때부터 인구 과잉에 기여하는 20세기 말 도시의 삶은, 불필요한 것을 지속적으로 내다버리는 것으로, 우리가 기억할 수 있는 것 모두, 가령 청소년 시절, 유년 시절, 출생, 선조와 조상을 남김없이 잊는 것으로 귀착된다. 최근 각별한 사이였던 사람들을 웹상에서 매장하고 방문할 수 있도록 온라인에 개설된 이른바 '추모 공원'은 한동안 명맥을 유지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가상 묘지 역시 얼마 지나면 대기 속으로 사라질 것이고, 과거 전체는 형체도 없고 알아볼 수도 없는 말 없는 덩어리가 되어 녹아 없어지리라. 그러면 우리는 기억이란 것을 알지 못하는 어느 현재를 살아가면서, 또 아무것도 올바르게 파악할 수 없는 미래를 마주하면서, 종국에는 잠시라도 머물고 싶은 또는 가끔씩이라도 되돌아오고 싶은 마음조차 품지 못한 채 삶 자체를 놓아버리게 되리라."
(출처 : [캄포 산토] by W. G. 제발트. 이경진 옮김. 문학동네 출판. 한글 번역본 2018) 42쪽 - 43쪽)
나도 그 섬에 가고 싶다, 언젠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