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단상 12

by The Happy Letter


"지나간 인연(因緣)은 그렇게 지나간 대로 그냥 두자"고도 하다가, 또 살면서 때로는 그렇게 두면 안된다고도 한다면 우리가 일상에서 얻은 그 소중한 인연(因緣)은 도대체 어떻게 대해야 할까?


또한 그 인연(因緣)을 마음에서 놓아버리지 않으려면 어떤 미련(未練)의 끝자락, 그런 체념(諦念)이 아니라 굴곡진 어떤 인연(因緣)에 대한 감내(堪耐)와 수용(受容)의 경지(境地)에 이르려면 우리는 과연 어떻게 해야 할까?


필자는 이 글에서 종교적이거나 믿음의 영역에서 인연(因緣)과 윤회(輪廻) 등을 논하려는 것이 아님을 먼저 밝혀둔다. 여기서 거론하는 것은 그냥 일상 속 관용적(慣用的)으로 자주 언급되는 인연(因緣)의 사회적 '통념'(通念)에 관한 개인적 단상(斷想) 일뿐이다.


어쨌든 어학사전상으로 인연(因緣)이란, 예를 들어 "인연이 있으면 또 만날 날이 있겠지", "우연한 인연으로", "인연을 맺었다"거나 또는 "인연이 끊겼다"라고도 하듯,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분(緣分) 또는 사람이 상황이나 일, 사물과 맺어지는 관계"를 뜻한다고 한다.




필자의 친구들이나 동료들, 선후배들로부터 받은 경조사비(慶弔事費)로 축의금(祝儀金)이나 조의금(弔意金) 등이 많이 있었다. 그런데 필자 후배 중 한 명은 - 그가 결혼하기만을 오래도록 기다려왔는데도 - 결혼을 하지 않아 그가 낸 결혼 축의금은 한동안 되갚을 수가 없었다.


물론 나중에 그의 다른 경조사 때 (먼저 받았던 축의금을 갚을 요량으로) 어떤 다른 부조금(扶助金) 형태로 낼 기회도 있었을 텐데 사회생활하면서 그로부터 소식이 뜸해지다가 연락이 끊어지고 말았다. 그래서 세월이 좀 지난 후인 어느 날 하루는 온 동네 그의 새 연락처를 수소문해서 전화로 그냥 바로 약속을 정해 만나게 되었다.


그간의 안부도 주고받고 옛날 추억이며 지금 하는 일이며 살아가는 이야기로 웃음꽃을 피웠다. 불확실한 미래로 힘들었던 예전 그 시절 20대 나이를 같이 고뇌(?)하며 보냈다 보니 (그리고 서로에게 잘 될 거야 응원하며 힘이 되었다 보니) 옛정감(情感)이 그대로 남아있는 것 같았다.


술잔을 기울이다가 문득 생각이 났는지 (그때까지도 혼자 살던) 그 후배가 물었다. "선배, 근데 오늘 왜 갑자기 보자고 한 거예요?"라고. 그때 그 순간 딱히 대답할 말이 바로 떠오르지 않아 그냥 겸연쩍게 웃으며, "야, 내가 그냥 밥 한번 사고 싶어서 그래! 오늘 네 생일 좀 앞당겨서 일찍 한다고 생각해."라고 말하고 말았다.




습관적으로나 무의식적으로라도 "인연이 있으면 다시 만나게 될 것"이라는 둥의 "밑도 끝도 없는" 말을 하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잊기 전에 여기 기록해 두고자 한다.


"나중에 밥 한번 먹자", "나중에 술 한잔 하자"라는 말이 (예의상이든, 체면치레식 형식상이든) 깃털보다 가볍게 난무(亂舞)하는 일상에서, 그런 일상 속 인간관계들에서 어떻게든 "나중에"를 남발(濫發)하지 않으려 스스로 경계(警戒)하고자 한다.


나중에 언제? "나중에"는 없다고 생각하고 나니 별로 할 일 없을 것 같은 이 순간에도 할 일이 많아졌다. 왜냐하면 지나가버린 순간과 시간은 결코 다시는 (그대로 똑같이는) 돌아오지 않기 때문이다.


그냥 바람 한번 불면 힘없이 날아가버리는 솜털보다 가볍고 변덕스러운 존재가 우리고, 또 내일 어떻게 될지 모르는 나약한 존재가 우리 '인간'이라는 생각이 들다 보니 필자는 지금부터라도 예전의 부채 의식(負債意識) 속 그 “빚”을 수시로 갚아 나가야겠다고 마음먹게 되었다.





필자의 좀 부끄러울 수도 있는 에피소드(episode) 하나를 여기에 적으며 이 글을 이만 줄이고자 한다.


예전에 가르침을 받은 은혜로운 스승 중 한 분이신 어떤 은사(恩師)님께서 개인적으로 필자에게 금일봉(金一封)을 주신 적이 있었다.


필자를 격려하고자 주신다고 해서 어린 마음에 얼떨결에 그냥 받았는데 집에 와서 그 하얀 봉투를 열어보니 그 당시 진로를 고민하며 아르바이트하던 20대 나이의 필자에게는 큰 금액으로 보이는 액수가 들어 있어 무척 놀랐었다.


필자는 (부끄러움으로 인한 알량한 자존심 때문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조만간에 ("나중에") 다시 찾아뵙고 베풀어주신 마음만 받고 그대로 다 돌려 드려야겠다고 마음먹고 있었다.


하지만 차일피일 미루다가 시간만 계속 흘러가고 말았다. 그 선생님을 떠올릴 때마다 그때 그 기억을 다시 하게 되었고 필자에게는 그 일이 오랫동안 마음의 빚으로 남아 있었다.


그러고도 세월이 한참 많이 지난 후에야 수소문 끝에 노쇠(老衰)해지신 은사님을 찾아뵙고 (비록 그 은사님은 그때 그 일은 잊으신 듯 보였지만) 선생님의 격려와 응원 덕분에 지금 잘 살고 있다고 말씀드렸다.


정겹게 담소(談笑)를 나누고 난 후, 사모님과 식사라도 한번 같이 하시라고 (끝까지 안 받겠다고 하시는데도) 필자는 하얀 봉투를 은사님의 주름진 손에 꼭 쥐어드리고 그 댁 아파트를 서둘러 뛰어나왔다.


많이 연로(年老)해지신 은사님은 지팡이를 짚고 힘들게 몸을 가누며 나오셔서 총총걸음으로 멀어져 가는 (지금은 기억조차 희미한) 옛 제자를 향해 손을 흔들어 주셨다. 필자도 멀찌감치 떨어져 연신 고개 숙이며 인사를 하는데 갑자기 울컥해지더니 눈물이 핑 돌고야 말았다.




갚아야 할 빚(마음의 빚도)을 꼭 갚아야 하듯 이 순간 떠오르는 고마운 은인(恩人)이나 존경하는 은사님, 따뜻한 우정을 나누어주는 친구나 지인, 동료에게 쑥스럽더라도 꼭 전해야 할 말을 전하며 살아가고 싶다.


내가 꼭 방문해야 할, 꼭 만나야 할 사람들을 (비록 지나간 인연(因緣)이라 하더라도) 스스로 상기(想起) 시키며 살고자 한다. 어쩌면 시간이 좀 많이 지났더라도 더 늦어버리기 전에. 어떤 시기와 방법에 구애받지 않고 그냥 편하게 자신만의 방식으로 나의 마음을 한 번이라도 더 전하고 싶다.


5월이 오기까지 기다리지 않아도 되리라 본다. "나중에"라고 하며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 물론 사랑하는 연인이나 배우자에게도, 곁에 있는 소중한 가족에게도.


오늘 이 시간 이 순간에도 필자의 글을 클릭해서 매번 끝까지 읽어주시는 독자(작가)분들께도 다시 한번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고 싶다. 이 소중한 인연(因緣)에 대해서도.
















인연1(因緣) : 1. (기본의미)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분 또는 사람이 상황이나 일, 사물과 맺어지는 관계.

2. [불교] 결과를 만드는 직접적인 원인인 인(因)과 간접적인 원인인 연(緣)을 아울러 이르는 말.(다음 [어학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