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아보기.
(혹시나 도움이 되었다면 어떤 방식이든 좋으니 표현을 부탁 드립니다. 제가 글을 계속 쓰는데 동기부여가 됩니다.)
3년 전, 나는 해외 주재원 생활을 마무리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오랜만에 돌아온 한국은 나에게 익숙한 고향이 아니었다. 눈앞에는 예상치 못한 계급 사회가 펼쳐졌다.
어디에 사는지, 어떤 차를 타는지, 어떤 옷을 입는지. 모든 것이 등급이었다.
내 주위에는 나보다 어린 나이에 더 많은 연봉, 더 높은 직급을 가진 사람들이 가득했다.나는 한 번도 내가 부족하다고 느낀 적이 없었는데, 이곳에서는 이유 없이 작아졌다.
한국에서 커리어를 이어온 지인들은 이미 집을 사고, 투자를 성공적으로 해냈다. 그들의 이야기 하나하나에 마음이 요동쳤다. 그토록 꿈꾸던 ‘해외 경험 이후의 인생’은 그렇게 산산이 부서졌다.
그 시기에, 감사하게도 우리 가족에게 새 생명이 찾아왔다. 그러나 기쁨조차 온전히 기쁨으로 누릴 수 없었다. 아이에게 사용하는 카시트, 식탁 의자까지도 마치 부모의 계급을 상징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사회의 냉정한 평가 앞에 스스로를 점점 잃어갔다. 하고 싶은 일보다,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볼지가 더 중요해졌다. 그렇게 불안은 서서히 내 안에 자리를 잡았다.
결국 나는 미국 스타트업의 한국 대표직 제안을 수락했다. 솔직히 말하면, 나도 ‘상위 등급’에 속하고 싶었다.유명한 액셀러레이터 출신에 투자도 받은 회사였다.
인터뷰 내내 그들은 말했다. 곧 투자 라운드가 있고, 스톡옵션을 실행하면 큰돈을 벌 수 있을 거라고.
나는 조용히 성장하던 기존의 사업을 정리하고, 이 기회에 올인했다.인생에서 다시 없을 기회라고 믿었다.
그런데, 미국 출장 첫날부터 상황이 심상치 않았다. 그들은 한국 팀을 줄이자고 했다.
불과 4명이 전부였던 팀에서 2명을 줄이라고? 정식 발령을 받은 날, 나는 이미 원치 않는 결정을 실행해야만 했다. 설득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한결같았다. “예산이 없다.”
그리고 한 달쯤 지났을까. 대표는 나에게 회사에 돈이 없다고 말했다.
매주 한국 협력업체에 결제해야 하는 금액은 많게는 5천만 원. 그런데 돈이 없다니?
그날부터 매주 금요일은 악몽이 되었다. 결제일이 다가오면 잠을 이루지 못했고, 미국 본사와의 미팅에서는 해결되지 않는 이야기를 반복해야 했다. 설상가상으로, 실리콘밸리은행 파산 소식이 전해졌다.그 은행이 바로 우리 회사의 주거래 은행이었다.
나는 협력사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언제가 될지 모르는 약속을 되풀이했다. 이 모든 상황을 감당할 수 있을까? 내 월급으로 대신 변제해야 할까? 막막했다. 정말, 막막했다.
매주 토요일 오전, 미국 본사에서 결제 알림이 오기 전까지 나는 온종일 불안에 휩싸였다. 알림이 오지 않으면 그 주말은 그대로 지옥이 됐다. 그만두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포기해야 할 것이 너무 많아 보였다.
그렇게 2년을 버텼다.지옥 같았던 시간. 그 안에서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웃음은 사치였고, 불안과 우울은 일상이었으며,버티는 것이 곧 강함이라고 믿었다. 그러던 어느 날, 대표와의 미팅이 있었다.
그는 한국에서 철수하겠다고 말했다. 그토록 화려했던 비전과 약속은 아무 의미 없는 말장난이 되어버렸다. 내가 만든 한국 사업의 흑자 전환과 성장도 단 한 문장으로 지워졌다.
그 순간, 나는 결심했다.떠나야겠다고. 그리고 완전히 새로운 산업으로 이직했다. 대표도 아니고, 팀장도 아니었다. 연봉은 30% 줄였다. 이제 더 이상 나를 과시할 공간은 없었다. 나는 사회가 정해놓은 완벽한 중간 계층으로 이동했다. 처음엔, 그게 너무 불안하고 불행했다. 나는 이제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되어버린 것만 같았다.
새로운 시작이었다. 연고도 없는 도시, 아무도 나를 모르는 회사. 모든 것이 낯설었고 모든 것을 처음부터 다시 배워야 했다. 비록 경력직으로 입사했지만, 신입사원처럼 OJT를 따라가며 일을 익혔다.
새로운 업무를 배우고, 내가 가진 경험을 녹여내며 천천히 인정받기 시작했다. 환경이 바뀌자 내 안에서 새로운 에너지가 피어올랐다. 점점 나 자신을 되찾아갔다. 예전의 내가 좋아했던 것들도 기억이 났다.
매일 아침 동료들과 나누는 소소한 대화.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월급. 진심이 느껴지는 인정과 감사.
이제는 억지로 뭔가를 쟁취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것들 속에서 나는 행복을 느낄 수 있었다.
욕망을 내려 놓자 행운이 찾아왔고, 행복이 내게 인사했다. 이것은 내가 예전엔 상상도 못했던 삶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감히 말할 수 있다. 이 삶이 훨씬 더 좋다고. 왜냐하면 이제야 비로소 진짜 내 삶이기 때문이다. 불안은 끝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나를 다시 만나는 긴 여정의 시작이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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