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스 웨인:사랑을 그린 고양이 화가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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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뷰물꼬기

루이스 웨인: 사랑을 그린 고양이 화가

The Electrical Life of Louis Wain(2021)


개봉 : 2022.04.06

장르 : 드라마, 로맨스, 전기물

감독 : 윌 샤프

각본 : 윌 샤프, 사이먼 스티븐슨

출연 : 베네딕트 컴버배치, 클레어 포이 외

쿠키 : 없음

루이스 웨인의 그림은 알고 있었는데, 그에 대해서는 잘 몰랐다. 의인화된 고양이 그림을 그렸고, 조현병을 앓았고, 어쩌면 조현병이 아니라 고양이를 통해 감염되는 톡소포자충으로 인한 발병 일수도 있다는 정도만 어디선가 들었던 것 같다.


화가의 삶은 귀여운 고양이 그림들과 달리 참으로 고단했던 것 같다. 어린 시절에는 구순구개열 때문에 놀림을 받아 학교도 다니지 못했고, 스무 살에 아버지를 갑자기 잃고 어머니와 5명의 여동생의 생계를 도맡아야 했고, 동생들의 가정교사였던 한참 연상의 에밀리와 신분 차이도 극복하며 결혼했지만 3년 만에 그녀는 유방암으로 세상을 떠난다.


그녀가 떠난 후, 빗속에서 구조해 함께 키우던 반려묘 피터를 그리며 고양이 그림으로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지만 현실감각이 없었는지 저작권도 잃고, 여동생 중 한 명인 마리는 조현병을 앓았고, 빚은 계속 쌓여만 갔다.

루이스의 능력을 알아보고 그를 일러스트레이티드 런던 뉴스의 삽화가로 기용했던 편집장 잉그램 경은 그의 재능을 아껴주고 많이 도와주었는데, ‘이 암울한 시기에 어찌 이리도 밝은 그림은 그리는지 ‘라는 대답인지 질문인지 독백인지 어디쯤의 대사를 다.


물로, 잉그램 경은 그의 상황을 다 알고 있지만, 그의 그림만 보면 그가 밝고 행복하기만 한 사람처럼 생각될 수도 있다. 하지만, 루이스는 이런 말을 한다. “숨만 쉬어도 살아지는 삶인데 왜 이리 힘든지 모르겠어.” 이 대사가 마음에 들어와 내 속을 한참을 헤집었다.


아마도, 어린 시절을 지배했던 망상과 환청, 남들과 조금 다르게 생겼다는 이유로 당한 놀림과 그림 외에 재능은 없어 보이지만, 특허 발명, 권투, 오페라도 써야 하는, 하고 싶은 게 많은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인데 돈을 벌어야 한다는 압박이 가해질 수밖에 없는 현실이 그를 어두운 사람으로 만들었을 것 같다. 어둡고 차가운 사람일수록, 더 밝고 따뜻하고 잘 웃는 것 같기도 하다. 어둠이 깊기에 작은 빛에도 밝음을 느끼고, 약간의 온기에 더 민감하고, 그 작은 빛과 온기가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알기에 사소한 일에 웃고, 작은 것에 감사할 줄 알게 되는 것 같다.

그의 그림을 통해서 불길한 존재라는 고양이에 대한 편견들을 종식시키며 반려묘로 사랑받게 했다는 업적이 뭔가 귀엽기도 하고, 재밌기도 했다. 가끔 소셜미디어를 통해 본 고양이들이 현관문 키 버튼을 누르는 행동을 하거나, 수돗물을 틀어서 마신다거나 그런 것들을 보며 그들의 영특함에 놀라기도 하는데, 그런 모습들을 루이스가 누구보다 먼저 발견한 것 같다.


루이스가 고양이 그림만큼 전기의 파장이라고 해야 할까? 전구를 밝히는 그런 전기가 아닌 조금 다른 전기를 느낀다며 집착하는데, 그 파장을 통해 에밀리와의 사랑도 느낀다. 영화의 원제가 The Electrical Life of Louis Wain인 만큼 영화에서 그가 느끼는 전기에 대해 중요하게 다뤄진다.

영화의 스토리 착실하게 전기영화로서 잘 구성된 것 같고, 연기도 뭐 나무랄 때가 있겠는가? 그런데, 분장들에서 조금 어색한 부분이 느껴지기도 했다. 개인적으로는 영화 중간중간 낮고 차분하며 지친 여인의 목소리로 고단한 화가의 일상과 삶을 전달하는 내레이터의 연기가 좋았는데 올리비아 콜맨이라고 연기를 잘한다는 말을 여기저기서 들었던 분이었다.


영화의 화면비율이 4:3이었는데, 영화를 보는 내내 왜 비율을 4:3으로 했을까? 빅토리아 시대와 화면 비율에 어떤 상관관계가 있나? 왜 일까? 너무 궁금했다. 이 글을 쓰기 전까지 계속 머릿속에서 물음표들이 떠다녔는데 갑자기 혹시, 그림을 그리는 캔버스가 보통 4:3 비율일까? 하고 찾아봤더니 맞는 것 같다.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는 화가를 영화의 캔버스를 통해 그려낸 걸까? 괜찮은 연출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화면 비율이 거슬리지 않았고 영상미가 좋았으며 빅토리아 시대의 그림들이 구현되는 듯 그림의 질감을 느낄 수 있는 비현실적인 아름다운 장면들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그 시대의 풍경이나 벽지, 그릇 등 인테리어 보는 재미도 있었다.

좋은 대사들도 많았는데, 루이스가 에밀리에게 당신이 세상을 아름답고 따뜻하게 만들었다고 말하자, 에밀리가 내가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 게 아니라 세상은 원래 아름답다고 대답다.


또, 에밀리는 “아무리 인생이 고단하게 느껴져도 세상은 아름다움으로 가득하다는 걸 그걸 포착하는 건 당신에게 달린 거야.”라고 말하며 그 아름다움을 가능하면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계속 그림을 그리라고도 했는데, 루이스가 좋아하는 그림을 그리며 사람들과 소통하고 사랑받기를 바랐던 에밀리의 마음도 느껴졌지만 한편으론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많은 이들에게 감독인 윌 샤프가 전하고 싶은 말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다. 세상은 꽃과 바람, 반짝이는 강물과 찬란한 색들로 가득해 아름답고 따뜻한데 아프고 고단한 건 우리들 인간인 것 같다.


에밀리가 루이스에게 "당신은 프리즘이야"라고 말한다. 프리즘이 빛을 굴절시켜 무지개처럼 여러 색을 보여주는데 그것이 고단한 인생을 굴절시켜 다양한 빛을 내는 루이스와 같다고 한 것이다.


조현병 발병 이후에 그가 그린 괴랄한 고양이 그림들은 전기의 증폭과 만난 무지개 빛의 굴절들이 아니었을까? 아무튼, 덕분에 고양이님들이 집사를 부리며 사랑받고 있다. 모든 동물이 행복해지길 바랐던 그가 매우 기뻐 춤을 추며, 아름다운 전기의 파장을 뿜어 내고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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