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밀가루를 먹지 않겠다고 말했다

밀가루 금식으로 만들어낸 홈런

by 일구삼

엄마는 어느 날부터 이렇게 선포했다. “난 밀가루를 먹지 않겠어. 건강을 챙길 거야.” 나와 언니 중 아무도 그 말을 믿지 않았지만 놀랍게도 그 선언은 꽤나 오랫동안 지켜졌다. 아니 아직도 지켜지는 중이다. 피자, 햄버거, 도넛, 과자, 빵,… 좋아하는 음식을 나열하라고 하면 끝이 없는데 그걸 전부 안 먹고 버틴 지 2개월이 넘었다. 꽤나 의지가 대단하다는 증거다. 대신 삶의 즐거움을 잃은 엄마는 점점 시들시들해진다. 예민함이 하늘을 찌르고 음식에 대한 집착은 강해진다. 먹방 유튜브를 멍하니 보는 것이 엄마의 가장 큰 일상이다. 아무래도 더 건강을 해치는 일 같아 몇 번을 만류해도 엄마는 완강하다. 안 그래도 센 고집이 더 세졌다.


이렇게까지 식단을 철저히 하는 이유는 한 가지다. 자신이 성공할 거란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면, (나는 곧 성공할 건데) 성공한 사람에겐 안 좋은 일이 같이 생긴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게 건강악화로 다가올 거란다. 원래도 남들보다 강한 체력에 기대어 여러 가지 일들을 뚝딱 해온 엄마는 조금만 체력이 꺾였다고 느껴도 불안해했다. 그렇다고 건강악화가 무조건 올 미래 같은 건 없는데. 근거 없는 믿음이야말로 얼마나 순수한 마음인지…. 그래서 엄마는 밀가루를 멀리하고, 성공에만 전념한다. 엄마가 성공할 분야는 비트코인이다. 퇴사를 결정하고 집에서 약 1년간 쉬면서 엄마는 생각했다. 이젠 돈을 벌어야 한다, 그리고 이젠 더 이상 사람을 만나고 싶지 않다. 그래서 아무와도 마주하지 않고 돈을 벌 수 있는 비트코인을 선택했다.


난 엄마가 사람을 만날 때의 건강한 에너지를 알고, 얼마나 일을 유능하게 하는지도 안다. 할 줄 아는 일이 정말 많은 것도 안다. 엄마는 피자 사업과 영어 강사와 청소년 지도사를 거쳐 산림공무원으로 일했다. 그 노동 안에서 엄마가 갈고닦은 기술은 사람을 다루는 방법,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방법, 팀장으로서 팀원을 관리하는 방법, 성과를 내는 방법, 산을 잘 타는 방법 등 매우 다양하다. 하지만 엄마가 회사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고통받았는지도 안다. 일을 너무 잘하는 여자였던 엄마는 시기와 무시를 한 번에 받았다. 여러 팀 중 엄마가 맡은 팀은 항상 상위권의 성과를 냈고, 그러면 어김없이 팀원을 갈아치웠다. 팀원을 잘 키워놓으면 뺏어가는 형식이었다. 몇 번이나 잘 가르쳐놓은 팀원을 뺏긴 엄마는 또다시 팀원을 가르쳐야 했고, 그걸 다시 뺏겨야 했다. 엄마는 자신이 팀장 같지 않고 나머지 팀장 뒤치다꺼리하는 팀원 같다며 몇 번이나 하소연했다.


그렇게 회사에서 나온 엄마는 그때부터 더 주동적으로 행동했다. 진짜 팀장이 되려는 것 같았다. 그런 엄마에게 밀가루를 먹으라 해도 듣지 않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밀가루에 대한 배척감은 온갖 방법을 동원해서 커져만 갔다. 어디서든 밀가루 배척자를 만나면 격하게 동의했다.


*“… 이 선수는 몸관리가 너무 철저해서 밀가루를 거의 안 먹는다고 해요. 술 담배도 전혀 안 하고요.”


어떤 야구선수에 대한 코멘트에 엄마는 극도로 흥분했다. "거봐! 쟤도 안 먹는다잖아!" "하지만 쟤는 야구선수인데?" 그렇게 말해도 엄마는 들리지 않는 듯했다. 하필 방금 저 선수는 홈런을 쳤다. 엄만 그 홈런이 자기 비트코인 같았을 것이다. 내 비트코인도 저렇게 멀리! 높게! 그리고 그 성공은 밀가루 금식으로부터 출발한다.


생각해 보면 그 야구선수도 고집이 너무 세다. 밥을 아주 많이 먹고도 잘하는 선수가 얼마나 많은데, 몸 관리 한다고 그 달콤한 걸 안 먹다니. 포도당이 나와야 체력이 보충될 텐데 그러고도 144경기를 매일 출장하다니. 그 선수는 운동량도 너무 많았다. 웨이트도 심하게, 남들보다 일찍 나와 아침 운동에 빠지지 않는다. 지쳐 보여서 감독이 쉬라고 해도 말을 듣지 않는다. 금강불괴 같은 그의 체력은 아무리 생각해도 밀가루 금식에서만 나오는 건 아닌 것 같다. 불가피한 부상으로 몇 주 푹 쉬고 온 뒤 그 선수는 공수에서 펄펄 날았다. 언니와 나는 엄마가 들을 수 있도록 아주 큰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거봐! 좀 쉬고 잘 먹으니까! 훨씬 잘한다니까!!! 너무 몰두해도 좋지 않다니까!!!” 엄마는 들은 척도 안 했다.


오늘까지, 오늘 아침에도 엄마는 여전히 비트 코인을 하고 밀가루가 빠진 식사를 하고 다시 비트코인을 한다. 먹방을 보고 슬퍼하면서도 정해놓은 시간에 잠을 잔다. 내일 아침 다시 비트코인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성공의 길을 묵묵히 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 선수도 오늘 가장 먼저 운동장에 나와 몸을 움직였을 것이다. 여전히 밀가루는 먹지 않는 채로. 그들은 자신이 오늘도 자신과의 약속을 지켰다는 사실로 다시 내일을 지켜나갈 것이다.




*김혜성 선수는 술, 담배는 물론이고 탄수화물을 거의 안 먹는다고 한다. 본인이나 동료들, 야구 관계자들의 증언이 쏟아진다.

https://youtu.be/0eYDyoZzIDs?t=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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