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때로 야구장 밖 그들의 얼굴이 궁금하다
그러고 보면, 난 어릴 적부터 꽤 책을 좋아했던 것 같다. 책을 많이 읽는다는 말과 좋아한다는 말은 엄연히 다른 거니까. 다독가는 절대 아니었어도 첫 만남에 난 책이 좋았다. 비슷한 예시로 난 커피를 먹자마자 단번에 좋아했다. 중학교 때였는데 친구랑 우연히 들어간 카페에서 우리는 인생 첫 커피 도전을 했고, 먹자마자 이건 '내가 좋아하는 맛이다.'라고 생각했다. 그 뒤로 한동안 커피를 마시지 않았어도, 그 맛은 분명히 좋은 맛이었다. 책도 나에게는 그랬다. 한 권으로 딱 떨어지는 모양이나 무게도 좋았고, 글이라는 매개만 사용한 단순한 형식도 맘에 들었다. 이런저런 말이어도 글로 써두면, 그 글씨체와 검고 가는 선으로 보면, 뭐든 마음에 가 닿을 수 있다는 게 좋았다.
책을 꽤 많이 읽게 된 건 정말 최근이다. 난 SNS의 수많은 자기표현과 짧고 공격적인 언어사용에 매우 지쳐있어서, SNS 디톡스를 시작하게 됐다. SNS은 안 봐도 휴대폰은 놓을 수 없던 내가 휴대폰의 E-BOOK 어플에 들락날락하게 된 것이 다독의 길로 이어졌다. 결과적으로는 SNS 중독에서 E-BOOK 중독이 된 건데, 어찌 됐건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책에도 수많은 말이 있지만 그건 전혀 피곤하지 않다. 서사 없이 뚝 떨어진 텍스트도 아니고, 비꼬거나 의문을 제기하는 방해요소도 없다. 하나의 이야기를 오롯이, 그것도 시간과 공을 들여 전달하는 책에는 고심해서 쓴 누군가의 언어만 있을 뿐이다. 그걸 알고 나선 유튜브 콘텐츠 시청 자체를 겁내진 않는다. 그 콘텐츠도 정성이 들어간 하나의 이야기이니까. 대신 구독 창에 올라오는 영상만 보고, 영상을 바로 누르고, 댓글 창을 살피지 않는다.
책을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도 자연스레 뒤따랐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인터뷰집이나 에세이를 만드는 날도 올 수 있을지. 한 사람의 생각을 귀 기울여 듣는 건 정말 멋진 일이다. 모두는 자신 인생의 주인공이라는 점에서 누구나 책의 주인공이 되지 못할 이유가 없다. 그 어떤 사람은 과연 누가 될까? "나는 이제 멋진 사람, 잊지 못할 이야기를 만나면 저절로 한 권의 에세이를 상상한다."는 이연실 편집자(에세이 만드는 법)의 말처럼 나도 누군가를 한 권의 책으로 만드는 상상을 문득문득 하게 된다. 그러면 어쩔 수 없이 야구선수들의 이름이 많이 생각난다. 그들의 이름을 생각이 들 때마다 메모장에 적어두었는데, 어째... 슈퍼스타라고 말할 만한 사람이 한 명도 없다. 거의 떠밀리듯 은퇴한 사람, 아주 반짝 빛이 났었는데 혹사 논란으로 너무 일찍 져버린 사람, 온갖 궂은일을 다하며 씩씩하게 웃는 사람, 1군에 올라가기 위해 매일 특타 하는 사람....
난 때때로 야구장 밖 그들의 얼굴이 궁금하다. 몸도 마음도 너무 많이 쓰여서 너덜너덜해져 버린 건 아닌지, 패배감이 일상을 덮쳐버린 건 아닌지, 서운하진 않을지. 딱 떨어진 스코어나 기사에 찍힌 연봉처럼 명확한 숫자로 정해지는 인생이란 건 없는데도, '패배'라는 말로 기록된 어떤 날의 경기를 치르고온 선수들의 얼굴에는 패배감이 역력하다. 아무리 야구와 인생이 비슷해도 너무 헷갈리면 좋지 않을 텐데. 한참 걱정을 하던 사람 중 하나는 어떤 예능에 얼굴을 비추어 잘 먹고 잘살고 있음을 온몸으로 보여줬다. "내 걱정은 낭비야." 유행하는 노래의 한 구절이 퍼뜩 떠오른다. 역시 야구선수 걱정은 하는 게 아니라고...
그래도 걱정이 된다. 들여다보고 싶다. 언젠가는 야구보다 더 중요한 그들의 인생을 책으로 엮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