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여름이다

언제든 저 뙤약볕으로 뛰어나가게 될 것이다

by 일구삼

결국, 여름이다. 때때로 울컥 올라오는 후덥지근 한 공기를 몇 번이나 외면했건만 무시할 수 없는 완연한 여름이 되었다. 강한 햇빛과 습한 기운에 밖에 나가기가 무섭고, 함부로 나갔다간 여지없이 헥헥대며 "다신 안나가!"를 외치며 집에 기어들어오게 되는. 도서관, 카페는 당연하고 그렇게 좋아하는 야구장에 가기도 겁이 난다. 이맘때의 야구장은 정말... 날 태워 죽이려는 게 틀림없다. 특히나 원정석 쪽에 앉으면 홈팬들을 사랑하는 구단의 기막힌 구장 설계로 홈팬들 몫의 햇빛까지 내가 두 배로 받게 된다. 홈구장이 먼 나는, 그럴 때면 막 팀을 바꿔말어? 그런 생각이 들지만(과연 햇빛 때문일까요?) 그게 쉬운 게 아니니까요... 비실비실해져서 인상 팍 쓰고 이기길 응원(약간 강요 같지만) 하는 수밖에 없다.


그렇게 점점 성질이 더러워지고 예민해지는 와중, 일상을 잘 지켜나가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매주 3번은 하던 운동도 자꾸만 포기하게 된다. 마음을 먹는 것도 어려운데 꾹 참고 밖으로 나가면 금세 땀이 차서 운동 자체도 즐겁지 않다. 입맛도 오락가락해서 선선한 저녁에는 별의별 게 다 먹고 싶다가도 점심만 되면 아이스크림으로 세끼를 다 때우고 싶다. 이렇게 기본적인 생활이 잘 돌아가지 않으니 다른 활동에서도 에너지를 받을 수가 없다. 취준생이라면 마땅히 해야 할 일들은 다 노트북에 있기 마련인데, 노트북의 발열까지 견딜 수 없는 나는 누워서 책만 읽게 된다. 이런 생활은 참 백수 같구나...(그야 맞으니까.) 아무것도 안 했는데 지쳐서 '더 격렬히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


하지만 세상은 이런 날 가만히 두지 않지. 여름은 더위가 오면서, 그래서 더 생각할 것이 많은 계절이다. 이상할 정도로 빠르고 강하게 오는 폭염. 일상생활의 영향을 줄 정도로 자주 오는 비. 정말 요동치는 여름의 날씨와 5월부터 기침이 나오게 틀어대는 에어컨을 마주하면 세상이 어딘가 이상하게 흘러가고 있다는 생각을 멈출 수 없다. 지진, 홍수, 가뭄, 싱크홀 같은 단어들은 점점 익숙해지고 새로운 벌레와 질병의 출현은 '단독보도' 타이틀을 달고 기사로 나와도 현실감각이 느껴지지 않는다. 이 더위에도 어디론가 꾸준히 가고 있는 배달라이더들을 보면 세상이 나를 지나쳐 저 정도 속도로 달리고 있구나 싶다.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속도로 망가지고 있구나.


그 와중에 조선족 혐오 발언과 동성애 배제, 베지테리언에 대한 분노를 일상과 언론에서 두루 마주칠 때면 어지럽다. 제발. 자연재해는 그렇다 쳐도 니들은 사람인데 왜 시비를 거냐? 여름인데 덥지도 않냐고. 어떤 인간들 때문에 지구 온도가 조금 더 올라간 것 같은 기시감에 속에서, 그렇게 되면 또 다른 피해가 어디로 오는지를 생각한다. 그렇게 되면 누워만 있을 수는 없다. 진짜 너무 누워있고 싶은데..., 어쩔 수 없다. 유독 여름만 되면 힘들어하던 할아버지 얼굴을 생각해 본다. 나도 곧 그렇게 될 거니까 조금이라도 에너지가 남아있는 날에 많이 싸워둬야 한다.


각자의 삶 속에서 기를 쓰며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 천 원짜리 물건도 상표를 꼼꼼히 보고 사는 사람, 투표 전 날 공약이 담긴 우편물을 펼쳐놓고 고심하는 사람, 친구와의 편한 대화자리에서 '갑분싸'를 자처하는 사람. 그렇게 살면 쉽게 기진맥진해져서 위가 아파오기 십상이지만, 미래의 나의 삶을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해내게 되는 것이기도 하다. 생각하기 전에 사명감으로 뛰어드는! 벤치클리어링을 할 때 이유나 상황 따져가며 나오지 않고, 무조건 모든 인원이 그라운드로 뛰어나오는 것처럼. 나도 삶을 지키기 위해서 언제든 저 뙤약볕으로 뛰어나가게 될 것이다.


그러니 오늘 밤엔 조금 더 누워 있어도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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