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팀에 관하여
난 호주의 청소부였다. 시급은 20달러였다. 3개월 내에 그만두면 1,500달러를 돌려받지 못한다는 계약조건이 있었지만 신경쓰지 않았다. 일도 한가하고 돈도 많이 주는 그 좋은 일을 그만둘리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생각은 오산이었다. 뒈질 거 같았다. 일은 편했지만 하루종일 반복되는 쓸고 닦기, 일하면서 벌어지는 사소한 스트레스의 반복, 무엇보다도 입 한 번 열지 못하고 고독 속에서 일해야만하는 환경이 날 미치게 했다.
그만두고 싶었다. 근데 그만두는 순간 날아가버릴 내 1,500달러와 한 주에 100만원 넘게 찍히는 통장이 내 발목을 잡았다. 무엇보다도 그만두는 순간 끈기없는 놈이라고 찍혀버릴 낙인이 내 발목을 놓아주지 않았다.
그래도 뒈지겠는데 어떻게 해. 난 결국 시원하게 일을 때려치웠다. 순간 몇 백만원이 날아갔다. 근데 숨통이 트였다. 숨통이 트이니 주변으로 눈을 돌릴 수 있었고, 안 보이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내가 청소를 하던 마트에서 마트 관리직 직원을 뽑는다는 공고가 보였고, 근처 맥도날드에서 직원을 뽑는다는 정보도 보였다. 곧바로 지원했다.
결과는 둘 다 합격. 하루에 5시간을 자며 투잡을 뛰었지만 힘들지 않았다. 외국인 친구들과 함께 일을 하니 시간이 쏜살같이 지나갔다. 그렇게 약 3달간 일하고 1300만원에 가까운 돈을 모았다. 호주에서 남겼던 최고의 추억은 청소를 그만둔 이후의 3달이었다. 버팀을 그만두니 새로운 기회가 열렸다. 억지로 버티며 청소를 했다면 기회는 끝까지 닫힌채로 남아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가장 기억에 남는 호주에서의 추억들도 없었겠지.
이 나라는 버팀의 미학을 너무 찬양한다. 목적 없는 버팀은 미덕이 아니다. 끈기도 아니다. '맹목적으로 버티는 일이 우리의 앞에 있는 기회를 놓치게 만들 수 있다는 사실', '무언가를 잃음으로써 무언가가 들어올 공간이 생긴다는 사실'. 그냥 문득 이런 이야기들이 하고 싶었다.
에세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당신에게> 중에서 발췌 : http://bit.ly/2TUPxY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