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연 Jun 17. 2019

고양이가 나를 취직시켰다

나도 내가 활동가가 될 줄은 몰랐지

고양이와 같이 산다. 거대한 뚱냥이 하나와 길다란 똘냥이 하나다.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꼬박 개와 함께 보냈던 나는 고양이를 만나는 그 순간까지 고양이와 같이 살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내게 고양이란 그저 마당 한 가운데서 게슴츠레 눈을 뜨고 나를 바라보던 알 수 없는 동물, 그 정도였으므로. 대학교 후배가 고양이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았으면, 그 아이와 친해지고자 내가 고양이 카페에 가지 않았으면, 그 곳 고양이가 정좌한 내 무릎 위에 앉지 않았다면, 나는 '내 고양이가 필요하다!!!' 생각에 머리를 후들겨맞지 않았을 것이다.


생각해보자면 나는 좋은 조건의 보호자는 아니었다. 서울로 상경해서 아르바이트로 먹고 살며 대학을 다니고 있는 20대 초반의 여성.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양이 한 마리 즈음은 평생 키울 수 있다고 자신했고, 고양이의 입양을 다소 충동적으로 결정했다. 당시의 나는 고양이 카페에 대한 비판의식은 없으면서도 아무튼 펫샵은 나쁘다는 건 인지하고 있는 수준의 시민이었는데, 다행스럽게도 고양이의 파양이 급한 어떤 분을 만나서 첫 고양이를 얻을 수 있었다. 4년 전의 일이다.


어쩌다가 취직해버렸는데


고양이를 기르면서 마주했던 것은 고양이의 귀여움, 끊없는 털, 그리고 고양이에 대한 나의 무지함이었다. 고양이에 대해 잘 알고 싶어서 인터넷 카페에도 가입하고 왠 고양이 매거진도 구독을 했다. 고양이와 함께 사는 것도, 고양이에 대해 알아가는 것도 무척 재밌었다. 우리 고양이 말고 남의 고양이에 대한 이야기 듣는 것도 즐거웠다. 심지어 약간 부끄럽게도 나는 교양 수업에서조차 발표 시간에 내 고양이를 자랑했다...


집사의 주요 업무: 우리 고양이 자랑하고 남의 고양이 자랑 들어주기


한창 고양이에 입덕하던 시기는 나의 취업 준비시기와 맞물려 있었다. 나는 구멍난 학점을 메꾸랴 알바도 하랴 정신이 없었는데, 그 와중에도 어떤 일을 하며 살아야 할지 혼란해 하고 있었다. 뭔가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싶었는데 그게 뭔지 잘 몰랐다. 세상 사람들은 무슨 일을 하나 싶어 취업포털을 들락날락 하는 게 일상이었다.


그러다 구독하는 매거진의 에디터를 채용한다는 공고를 발견했다. 동물도 좋아하고 글 쓰는 것도 좋아하니, 괜찮을 것 같았다. 유기동물 이야기도 다루는 등 공익적(?)인 내용도 다루는 게 매력 있어 보였다. 무엇보다 재미있을 것 같았다. 지원서를 넣었고, 합격했다. 그리고 13개월 일하고 기쁘게 때려치웠다. 일은 나쁘지 않았지만 대표가 너무 좇같아서였다.


그 분은 너무 사람을 지치게 만들었어


2년차 활동가


고양이는 두 마리로 늘었다. 내가 일하는 시간이 길어, 첫 고양이가 심심해 할까봐 동생 고양이를 데려왔는데 나름 아웅다웅대며 잘 지낸다. 먹여 살릴 입이 하나 늘었기 때문에 일을 쉴 수는 없었다. 퇴사하고 일 주일 뒤에 새로운 직장으로 출근을 시작했다. 동물권단체다. 구조동물 안락사 해서 문제되고 있는 거기 말고 다른 멀쩡한 곳.


일을 한 지는 이제 거의 2년 가까이 되어간다. 그 동안 나는 참 다양한 일을 겪었고, 많은 감정적인 반응을 했고, 정말 별의 별 사람들을 겪었다. 강제적으로 성격이 외향적으로 많이 변하기도 했다. 동물권 쪽에 대한 의식 자체도 달라졌다. 이제 고양이 카페라면 치를 떨게 됐고, 육고기를 거의 안 먹게 됐고, 음식물 쓰레기를 남기거나 플라스틱 테이크아웃 컵을 쓰는 데 죄책감을 느끼게 됐다.


시민단체에 대한 적응은 계속 해가는 중이다. 무엇이 옳고 어떤 것을 지향해야 하는지는 아직도 어렵다. 이제 대충 시민단체 활동가로 일한다는 게 어떤건지, 내 직무에 맞게 일한다는 게 어떤건지는 감을 좀 잡는다. 이제서야 겨우. 이 생각도 사실 매달 거듭해서 하고 있다. 아마도 평생 뭔가 잘 모르며 살지도 모르겠다.



할 말 많아서 만든 브런치


나는 정말 할 말이 많다. 나는 홍보 담당 활동가로 일하고 있는데, SNS 등 온미디어 채널을 관리하고 있기 때문에 내가 공식계정으로 손가락 하나 잘못 놀리면 조직이 타격을 입어서 할 말을 잘 못 하고 있다. 그냥 친절한 응대봇처럼 굴고 있는데 그러다보니까 할말하않 상태가 과열되고 화딱지가 나서 술을 물 마시듯 마시는 날도 늘었다. (살이 많이 쪘다)


아, 브런치 개설의 목적이 동물권 비하인드 스토리를 풀려는 건 아니다. 아닌가 비하인드 스토리가 되려나? 여하튼 할말하않 상태가 지속되고 있어서 답답하다는 건 부수적인 이유다.


구체적인 이유는 잘 모르겠다. 조직에 대한 이야기를 너무 많이 써서 그런가? 어휘를 다 소진하느라 내 이야기, 내 말을 전하는 게 서툴러진 기분이다. 일 하는 데는 문제가 없는데 사적인 영역에서 나의 내밀한 이야기, 나의 생각을 논거를 들어 명료하게 이야기 하는 것이 힘들어졌다. 그 사실을 깨닫고 나는 너무나 막막해졌었고, 어느 날엔가 내가 내 이야기를 못 하는 사람이 되었다고 고백하면서 울었다.


저스트 두 잇


그 때는 겨울이 끝날 무렵이었는데, 이제서야 내 글을 그냥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말에 퍼질러 잠만 자지 말고 뭐라도 끄적이면 나중에 심심 할 때 정주행하며 부끄러워 할 뭔가는 만들 수 있겠지...




브런치 매거진의 제목을 정하다가, '그래 내가 어쩌다가 활동가가 됐지?' 라고 반추해보니 그 시작에는 나의 고양이들이 있었다. 내 인생의 기로를 정해준 나의 고양이들에게 심심한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그리고 고양이와 함께 사는 것은 생각보다 녹록치 않은 책임감이 수반한다는 반성과 함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