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해"라고 해서 보니 덩치 큰 흑인 남자가 서 있었

피어싱과 동성애

by 심내음

내음 씨는 잉글랜드에서 교환 학생 과정을 밟고 있었다. Y2K, 밀레니얼이라는 단어가 한창이었던 그때 내음 씨가 있던 그 도시는 대도시였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람은 4명 정도밖에 없을 정도로 지금에 비해 외국에서 생활을 하는 한국사람은 많지 않았다.


수업이 끝나면 내음 씨는 친구들과 펍(Pub)에 가서 기네스(Guinness)나 스텔라(Stella Artois) 맥주를 1 파인트(pint) 혹은 반잔(Half pint)을 하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어느 날 내음 씨는 수업을 같이 듣던 Greg, Sean과 펍에서 맥주 한잔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Sean이 TV에서 본 중국의 쿵후에 관한 얘기를 했다.

그 당시 잉글랜드 사람들 중 상당수가 이소룡 씨, 성룡 씨 덕에 동양 남자들은 거의 이럴 거라고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정말 멋있더라고. 브루스 리(Bruce Lee), 잭키첸(Jackie Chan-성룡)은 진짜인 거 같아 가짜 연기가 아니고. 근데 너도 그런 마셜 아트(Martial Art-무술)할 수 있지 않아?"

"내가 그 전에도 얘기했지만 난 한국사람이야. 중국사람이 아니고. 너 헷갈리는 거 아니지?

(*그 당시 한국, 중국, 일본을 헷갈리는 서양 젊은이들은 놀라울 정도로 많았다. 그런데 축구종가 젋은이들이여서 그런지 우리나라가 2002년 월드컵에서 4위를 하자 Greg, Sean은 예전에 잘 몰라서 미안했다고 하면서 그 후에 우리나라에 대해 너무도 잘 알게 되었고 프리미어 리그에서 뛰는 박지성, 이영표, 기성용, 이청용, 지동원, 손흥민에 대해 내음 씨 보다도 더 흥미를 갖고 게임을 보고 난 후 소감을 내음 씨에게 메일로 보내주기도 했다.)

암튼 난 쿵후는 아니고 태권도를 할 줄 알지. 한국 남자들은 군대 가면 태권도를 다 배워. 난 3단 블랙벨트(Black belt-검은띠)야. "


갑자기 Greg 이 눈이 동그래지면서 얘기에 끼어들었다


" 오우 정말 너 마스터(Master) 블랙벨트야? 내 사촌이 마셜 아트 스튜디오를 하고 있는데 마셜 아트를 할 줄 아는 동양 사람을 찾고 있어. 너 파트타임 잡(part time job) 필요하다며 한 번 가볼래? 요새 BBC, TV4에서 마셜 아트 특집 방송이 나오면서 마셜 아트 배우려는 사람들이 엄청 많아졌대. 내 사촌이 혼자 가르치기 버거운가 봐"


내음 씨는 마침 알바 자리를 찾고 있었기 때문에 잘 됐다 싶어 다음 날 Greg의 사촌을 찾아갔다. Greg의 사촌 Roy는 어릴 적부터 동양 무술에 관심이 많아 한국과 일본에서 태권도와 공수도를 배웠는데 태권도가 2단이라 3단인 나를 보고 너무 좋아했고 나는 당장 일을 시작했다.


그렇게 잉글랜드 사람들에게 태권도를 가르치기 시작하고 반년 정도 지나자 가끔 길에서 내음 씨에게 태권도를 배우는 사람들이 먼저 인사를 할 정도로 조금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불편한 점도 생겼다. 동네에 약간 껄렁껄렁한 건달, 한량 같은 덩치 큰 근육맨들이 길에서건 펍에서건 레스토랑 에서건 내음 씨를 알아보고 시비를 거는 경우가 간혹 생겼다.


"이봐 마스터, 네가 마셜 아트 마스터라며 나 복싱 선수인데 지금 나가서 한번 겨뤄보자"

"헤이, 내 친구에게 너 얘기 들었어. 나랑 한번 붙어보자"


참 내... 내음 씨는 어느 나라에서건 이런 사람들은 있구나 라고 생각하고 그냥 무시하거나 씩 웃어넘겼다. 다행히 심각하게 싸우자고 괴롭히는 녀석들은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펍에서 친구 Sean과 맥주를 한잔 하고 있는데 Sean 잠시 화장실로 자리를 비운 사이에 누군가 뒤에서 작은 종이를 내음 씨가 앉아 있던 바(bar)에 슬쩍 올려놓았다. 순간 이게 뭔가 하고 있는데 갑자기 누군가가 말을 했다.


"전화해(Call me)"


다짜고짜 전화를 하라니... 어리둥절해서 소리가 내음씨는 쪽으로 고개를 돌려봤는데 마치 농구선수 샤킬 오닐(Shaquille O'neal) 같은 덩치가 큰 흑인 남자가 내음 씨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내음 씨는 '또 시작이구나" 생각하고 그냥 씩 웃어 줬는데 그 덩치 큰 흑인 남자가 다시 내음 씨에게 말을 했다.


"진심이야 전화해.(Seriously, give me a call)"


내음 씨는 여전히 상황 파악이 안 되어 어리둥절해하고 있는데 마침 Sean이 돌아오자 그 덩치 큰 남자는 반대쪽으로 걸어갔다.


"무슨 일 있어?"

"아니 갑자기 이걸 줬는데"


자세히 보니 종이에는 전화번호가 적혀 있었다.


"Sean , 이게 뭐냐. 왜 전화번호를 주지? 또 나중에 한판 붙어보자는 건가? 근데 뭐 내가 전화까지 걸어줘야 되냐?"

Sean은 종이를 보더니 갑자기 웃기 시작했다.


"아~ 알았다. I Got it, I got it"


웃겨 죽겠다는 듯이 Sean은 큰 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야 뭔데, 빨랑 얘기해봐. 이게 뭐야"

Sean은 간신히 웃음을 참으며 말을 시작했다.


"야 아까 걔가 너랑 데이트하고 싶다잖아 ㅋㅋ. 너 귀걸이 한 거. 왼쪽은 어디 갔어? 오른쪽에만 하고 다니니까 그 남자가 너 게이인 줄 알고 작업 건 거야,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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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다. 그 당시 잉글랜드에서 남자들 귀걸이가 유행이어서 내음 씨도 했었는데 얼마 전에 왼쪽 귀에 염증이 생겨 왼쪽 귀걸이는 빼고 오른쪽에만 귀걸이를 하고 다녔다. 그런데 이게 동성애자라는 것을 뜻했었다니. 그러고 보니 요 며칠 동안 여러 군데에서 남자들이 계속 내음 씨를 쳐다봤던 것 같은 기억들이 파노라마처럼 머릿속을 지나갔다. 내음씨는 태권도 마스터를 하고 나서 조금 유명해진 자신을 알아보는 남자들이라고 단순히 생각했었다. 아이고 내음 씨의 성에 대한 무지와 넘치는 자기애가 부른 참사라니....


그로부터 10년이 지나 내음 씨는 출장 중 식당 옆 테이블에서 스테이크를 먹는 진짜 샤킬 오닐을 우연히 만난 적이 있다. 그때의 샤킬 오닐은 옛날 바에서 내음씨에게 수줍게(?) 말을 걸었던 남자와의 해프닝을 다시 소환하기 충분했었다.


내음 씨는 생각했다.


'미안해요. 저는 그쪽은 아닌데 오해를 하게 해서 정말 미안합니다. 당신의 성적성향을 진심으로 존중합니다.,

쿵후계의 양대 거목 중 하나인 성룡 씨, 당시 내심정을 잘 대변해주는 표정을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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