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기니까 웃기잖아

모르는 것을 솔직히 인정하는 것도 연륜이다.

by 심내음

주 이사와 최 부장, 김 차장은 아침에 회의를 하던 중이었다.
“그럼 2분기 북미 판매전략 보고는 그렇게 마무리하고 참 어제 미국 주식시장 어땠지?”
“오르는 것 같던데요-최 부장, 크게 떨어졌습니다-김 차장” (동시에 대답이 나오면서 환상의 호흡이 되어버렸다)
“잉? 올랐다고 떨어졌다고 어떤 게 맞는 거야?”
“어제 미국 정부가 뭐 발표해서 분위기 좋았다고 하더라고요. 올랐다는 것 같은데 (뭔지 잘 모르겠는데 모른다고 하면 창피하고 일단 우겨보자)”
“아.. 그게 어제 FED에서 금리 올리지 않는다고 발표를 했는데요. 그 발표 이후 미국 채권금리가 일제히 올라서 주식시장 자금이 빠져나가 나스닥 지수가 -3.02%로 떨어졌습니다.(어차피 주 이사가 검색해 볼 텐데 최 부장은 어쩌려고 저렇게 우기는 걸까. 도와주고 싶어도 손을 쓸 수가 없는 곳으로 최 부장이 가는구나 ㅜㅜ)
“김 차장, 뉴스 좀 검색해봐”
“네 이사님.”

김 차장이 구글에서 NASDAQ을 검색하자 오늘자 기사로 수십 개의 기사가 떴는데 제목들이
‘나스닥 3% 급락’
‘뉴욕증시 미 국채금리 급등에 하락 3% 급락’
‘미 국채금리 상승에 나스닥 3.02% 급락’
대충 이러했다.

더욱 당황한 최 부장이 잠시 우물쭈물하다가 김 차장의 휴대폰 기사를 보고 갑자기 소리를 친다
“아 이거네요, 김 차장 이거 국내 기사잖아 다 한글이네. 영어로 봐야지 영어로”
“네?(뭐라고요? 한글이랑 그게 무슨 상관인가요?) 아 네 부장님, 이거 영어로도 검색 결과 나옵니다”

김 차장은 최 부장의 말에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페이지 하단에 설정 언어를 영어로 바꾸어 주 이사와 최부장에게 보여주었다.

“아 네, 그럼 영어로 보겠습니다. 여기 있습니다”

‘Nasdaq drops 3%’
‘Nasdaq falls 3.02%..’

김 차장은 최 부장이 어쪄려고 하는지 몰랐지만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최부장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 최 부장 뭐야. 좀 똑바로 알고 얘기합시다. 회의 이걸로 마치지 “

자리로 돌아간 최 부장은 무언가 마음에 안 들었던지 PC를 보면서 오래된 자신의 전자계산기를 계속 탁탁탁 두드렸다. 그 전자계산기도 이미 우리가 근무하던 층의 사람들이 모두 엑셀 아니면 휴대폰을 써서 아무도 쓰고 있지 않았지만 유일하게 최 부장은 아직도 그 전자계산기를 ‘전통(역사와 전통이 아니고 전자기기를 은어로 전통이라고 부름. 기원은 알 수 없음’이라고 부르면서 꽤 시끄러운 버튼 소리를 자주 내며 사용했다. 사실 회의 전에도 급여 명세서를 보며 거의 한 시간 동안 그 전통(전자계산기)을 두들기며 고개를 갸웃거려 주변 직원들에게 눈총을 받았었다.

“ 찾았다. 김 차장 주 이사님한테 가자. 뭐 보여줄 게 있어”
“네? 네.(뭐지? 불안한데)”

최 부장과 김 차장은 주 이사의 자리로 갔다.

“ 이사님 아까 말씀드린 거요 여기 찾았는데 올랐습니다”
“뭐가 올라, 아까 기사들 다 봤잖아.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네”
“여기 보십시오 맨 끝을 보면 올랐잖습니까(오후 4시 부분을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이 사람이 참. 이거 시간대별 지수잖아. 마지막 몇십 분동안 오른 걸 가지고 누가 올랐다고 해. 전일 대비 얼마 차이가 나냐를 보는 거지. 모르면 모른다고 하면 되지 뭘 그걸 가지고 이렇게 호들갑인가 사람 참. 그런데 최부장 명색이 해외 마케팅한다는 사람이 좀 심하네 그런 것도 모르고”
“아 이게 끝에 올랐으니까 오른 건데요 이상하네.”

최 부장은 말끝을 흐리며 자리로 돌아왔다. 김 차장은 최 부장을 보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나도 나이 들면 어떨지 모르는 거니까 측은지심을 갖자. 그런데 가끔은 최 부장은 우기는 게 너무 심하긴 해. 자존심이 세서 그러는 거겠지만. 50대 중반을 넘은 부장들 중 깜박깜박하는 사람들을 종종 보지만 저렇게 이상한 승부욕으로 우기지는 않으면 좋을 텐데. 아니면 나이가 든 것을 인정하기가 싫은 건가’

김 차장은 잠깐 생각을 하다가 곧 그새 쌓인 이메일과 메신저 업무 속으로 빠져든다. 내일도 오늘처럼 또 최부장을 보겠지만 뭐 어쩌겠어... 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