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조건은 건망증

회사 생활의 묘미

by 심내음

민재는 강 전무의 방을 노크하고 들어간다

“전무님 3분기 판매 전략 보고 드리겠습니다.”

“응? 왜 갑자기 3분기 판매 전략을 보고하는 거지?”

“엇 전무님께서 지난주 주간회의에서 3분기 판매 전략 다시 점검해서 보고해 달라고 하셨는데요?”

“내가? 그랬다고?”

다음날 민재는 박 이사와 점심을 같이 먹었다. 박 이사는 선지 해장국을 한 숟가락 뜨면서 민재에게 말한다.

“이 차장, 어제 내가 부사장님 하고 미팅을 하는데 말이야 갑자기 NFT를 물어보시더라고”

“이사님, 어제 저하고 같이 부사장님 미팅하셨는데요”

“아 그런가? 이 차장도 거기 있었나?”

과장하려는게 아니라 민재의 회사에서 흔히 있는 일이다. 모르겠다 회사를 다니기전 나이가 어린 세대가 보면 정말일까 의심을 품을 수도 있을 것 같다. 강 전무나 박 이사는 매우 정상적인 흔한 대기업 임원이다. 건강상 특별한 이상이 있는 사람들은 더더욱 아니다. 그냥 50이 넘은 평범한 대한민국 직장인 아저씨다.

민재는 강 전무와 박 이사를 보면서 가끔 생각했다.’왜 저럴까? 저런 것도 기억을 못하나’하지만 40대인 민재가 아직 모르는 인생의 비밀은 많았다. 그리고 곧 알게 될 비밀도 많았다.

민재는 스스로도 느꼈지만 머릿속이 해가 갈수록 복잡해지고 있었다. 승진, 아이들 진학,70이 넘으신 부모님 건강, 전세 계약, 세금 등등등 머릿속에 정보는 많아지고 빈 공간은 점점 줄고 있었다.

건망증, 기억을 잃는 것은 행복의 조건이고 어쩌면 진화의 증거일지도 모른다. 잊지않고 모든 것을 기억한다면 인간은 스트레스를 통제하지 못하고 터져버릴지도 모른다. 대기업의 50대 임원, 아저씨들도 마찬가지다. 남들보다 조금 나은 경제적 사회적 지위를 위해 자진한 것이지만 살기 위해 까먹고 기억이 없어진다. 자신도 모르게 머릿속에 또다른 생존 세포들이 기억을 지우고 있는지 모른다. 누군가에게는 중요할지도 모르나 자기에게는 중요하지 않은 기억들을 지우는 것이다.

강 전무와 박 이사가 모든 걸 까먹는 게 아니다. 대표이사와의 약속, 농담, 동작 하나도 신기하게 놀라울 정도로 기억하고 적재적소에 리액션을 한다. 그게 그들의 비결일지도 모르겠다.

회사에 다니고 있다면 오늘도 또 마주칠 강 전무, 박 이사를 보며 한번쯤 잘 관찰해 보면 재미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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