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행히 작은 용무
민재는 아내 수경이 반려견인 시럽과 산책을 나가자고 말해줘서 너무 고마웠다. 토요일 오후 집에 있기 무료하던 참이었다. 최근 큰 잘못을 한 민재는 무료함을 느끼는 것을 오리혀 감사해 하자고 했지만 토요일 오후 문득 집에 멍하니 앉아 있다가 격한 지루함을 느꼈다. 그런데 예전과 같이 그런 지루함을 해소하기 위해 혼자 어디를 가는 것은 싫었다. 최근 몇 개월 동안 느낀 감정인데 자기 자신을 위해 주말 시간을 쓰는 것이 불편했다.
처음엔 아파트 단지를 가볍게 산책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수경이 동네 시장이나 다녀오자고 했고 단지를 벗어나 전통 시장으로 향했다. 수경은 별로 일 것 같다던 최근 오픈한 빵집에 들어 갔다. 민재는 익숙하게 시럽을 데리고 빵집 바깥에서 기다렸다. 기다리면서 시장 주변을 오가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스스로 나와 구경했으면 재미 없었을 풍경인데 수경이 가자고 해서 같이 나온 시장 구경은 너무 재밌고 행복했다.
시장 구경을 마치고 막내 딸이 이번 주에 맛있게 먹었다던 티라미슈 케익 가게를 구경 가자고 수졍이 말했을 즈음 이었다. 갑자기 소변이 마려웠다. 민재는 카페에 가서 화장실을 가야 겠다고 생각했다. 참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수경은 산책을 나와 날씨가 춥지 않아 기분이 좋았던지 동네 이곳 저곳 가게를 들어갔다가 나왔다를 반복했다. 민재가 없었으면 시럽 때문에 못 들어갔을 가게들도 민재가 밖에서 기다리면 되니 마음 가는대로 할 수 있어 더 기분이 좋은 듯 했다.
민재는 바로 티라미슈 카페를 갈 것으로 예상했던 것과 달리 화장실 도착 시간이 지연되자 당황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수경에게 빨리 가자고 말하지 않았다. 수경의 웃는 모습 보는 것도 좋았고 50이 넘었지만 남자로서 화장실이 급하다는 얘기를 하기 싫었다.
“왜 어디 아퍼? 안색이 안 좋아”
“아냐, 화장실을 좀 가고 싶어서. 얼른 티라미슈 카페로 갈까?”
수경이 손가락을 옆에 있던 다른 가게 하나를 가리켰다.
“여기 잠시 들렸다 가도 돼? 필요한게 있어서. 내가 화장실 쓸 수 있는지 물어봐 줄까?”
“어 그래줄래? 고마워”
평소였으면 나중에 가면 된다고 했을 민재지만 이번 만큼은 여유가 없었다. 수경의 제안에 얼른 대답을 했다.
가게 밖에서 발을 가볍게 구르며 쇼윈도 안의 수경을 쳐다 보았다. 가게 사장과 몇 마디 나누는 듯 했는데 어찌된 일인지 대화가 끝나고 밖의 민재에게 화장실을 알려주지 않았다. 수경은 계속 가게안 물건들을 살펴 보는 듯 했다. 민재는 아랫도리가 뜨겁게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민재는 당장이라도 문을 열고 화장실을 써도 되는지 물어보고 싶었지만 식자재를 파는 가게여서 반려견 동반 입장이 안된다고 써있었기 때문에 문을 쉽게 열지 못했다. 발이 점점 빠르게 동동 굴러 졌다. 동동이 동동동, 동동동동이 되자 민재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가게 문을 조금 열어 수경에게 말을 걸었다.
“혹시 물어봤어?”
“어 안된다네. 어떡하지?”
“아 그러면 시럽 좀 잠시 데리고 있어줘. 금방 다녀올께”
“아직 계산중이라 조금만 더..”
수경이 말이 채 끝나기 전에 민재는 시럽을 수경에게 넘기고 바람같이 골목 쪽으로 달려갔다. 어딘가에 화장실이 있을 법했지만 쉽게 보이지 않았다. 심장은 더 빨리 뛰었고 발은 동동동동도리 동동동으로 급격하게 속도가 올라갔다.
민재는 이러다 대 참사가 날 것 같아 일단 가장 가깝게 보이는 커피샵으로 들어갔다. 매장 내 직원들은 주문이 밀렸는지 들어온 민재를 신경쓰지 않았다.
“저 화장실이 어딘가요?”
주문을 하지 않았다면 아마 먼저 주문을 하라고 할 수도 있었지만 매장 직원들은 민재가 이미 매장내 커피를 마시고 있던 고객으로 생각했던지 바로 대답을 해주었다
“옆 으로 돌아가시면 2층이구요. 출구 옆에 비밀번호 …”
역시 이번에도 매장 직원은 말을 끝맺지 못했다. 민재는 번개같이 매장을 나와 옆 쪽 2층으로 향했다. 생존을 위해 노안임에도 출구 옆에 있던 비밀번호 8463은 엄청 크게 보였고 보통 몇 번 숫자를 되내이면서 가던 민재였지만 이번에는 똑똑하게 각인되어 그럴 필요가 없었다.
민재는 유리로 된 출입문 너머 화장실이라고 써있는 것을 보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바로 문을 열고 화장실 쪽으로 갔다.
“엇”
민재는 자신도 모르게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이이 이건 사실이 아닐거야’
민재는 마음속으로 말하는 것인지 입밖으로 소리를 내고 말하는 것인지 순간 구별이 되지 않았다. 민재가 당황한 이유는 화장실 문이 열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비밀번호를 다시 확인했지만 틀리지 않았다. 순간 정신이 아득해 졌다. 손잡이 옆에 작은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비밀번호 입력 후 문이 열리지 않는 건 안에 이용자가 있어서 입니다’그렇다. 누군가 안에 있었다.
민재는 다시 몸을 꽈배기 처럼 배배 꼬았다. 눈 앞이 아득했다. 그냥 이 자리에 있을 수는 없었다. 민재는 몸을 틀어 다시 그 건물을 나오려고 출입문 손잡이를 잡았다. 그 순간 그냥 무언가 쏟아져 내렸다. 갑자기 눈 앞에 나이아가라 폭포가 보였다. 그리고 폭포가 떨어지는 소리도 들렸다. ‘환영/환청인가?’ 갑자기 혹한 이라고 일기예보에서 떠들던 날씨가 따뜻하게 느껴졌다. 귀에서 새가 지저귀는 듯했다. 눈 앞에 별도 보였다. 이건 참사 대참사 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