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짧은 생각

가면

나를 나답게 해주는 것

by 심내음

아침 회사로 출근을 한다. 집 문 밖을 나가기 전 꼭 잊지 말아야 할 것이 가면이다. 회사에 가면 상사에게 반골로 보이면 안 된다. 동료들에게 허술하게 보이면 안 된다. 후배들에게 꼰대처럼 보이면 안 된다. 나는 반골이고 허술하며 꼰대지만 회사에서는 그런 모습을 보이면 안 된다. 그런 모습을 감추기 위해 가면을 꼭 써야 한다. 가면을 쓰면 적의 화살이 쏟아지는 전쟁터에서 큰 방패를 든 것 같이 안심이 된다. 가면 뒤에 내가 누구든 가면을 쓸 수 있어서 나를 나답게 해 준다.


회사에서 퇴근하기 전 또 하나의 가면을 챙긴다. 집에 가면 회사에서 있었던 일로 가정의 분위기를 망치면 안 된다. 나의 스트레스가 없어도 이미 집은 부동산 시장 때문에 상심한 아내와 사춘기로 예민한 중 3 큰 딸, 학교 친구와의 신경전으로 지친 중 1 막내딸이 무거운 공기를 만들고 있다. 여기를 뚫고 들어가려면 능력 있고 유쾌한 남편과 아빠의 가면을 써야 한다.


아내와의 합동 신세타령, 큰 딸 학원 픽업, 막내딸 사기진작 기분 맞춰주기 대화가 끝나면 잠시 침대에 좀 누워본다. 눕자마자 가면을 갈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부모님께 전화를 드려야 할 때가 왔다. 병원에 입원 중이셔서 이미 아픈 몸 때문에 많은 것들이 힘드신 어머니, 그런 어머니와 나, 형, 친척 분들의 대소사로 항상 걱정이신 아버지는 또 그렇게 서로의 상황 때문에 서로에게 불만이 있으신 것들 때문에 맨얼굴로 전화를 하기가 힘들다. 성격 급하고 독선적이신 아버지를 같이 험담할 수 있는 어머니의 아들, 몸이 힘드셔서 그런 짜증을 남편에게 쏟아내는 어머니를 같이 원망할 수 있는 아버지의 아들 그리고 이런 두 분을 항상 만족시켜드릴 수 없어 부족한 며느리, 나의 아내에 대해 같이 투정할 수 있는 아들의 가면을 써야 한다.


예전 '변검'이라는 중국의 가면극을 본 적이 있다. 짧은 시간에 배우가 얼굴에 붙어 있는 가면을 계속 바꾸어 쓴다. 눈 앞에서 가면이 바뀌는데도 도저히 믿기지가 않는다. 배우는 마법을 쓰는 것처럼 눈을 깜박이면 계속 가면을 바꾸어 쓴다. 나도 변검의 배우 못지않다. 예전에는 가면을 쓰는 것도 계속 바꾸어 쓰는 것도 힘들었다. 그런 생활이 반복되는 것에도 지쳐갔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가면이 여러 개인 것도 성공의 척도이며 그런 가면을 빨리 바꾸어 쓰는 것도 그리고 무엇보다 바꾸어 쓰는 것에도 환멸을 느끼지 않는 나 자신의 멘털을 만들었다는 사실에 스스로를 자랑스럽게 여겨야 했다.


나를 나답게 해주는 것은 나를 나답지 않게 하는 것이다. 나다움을 잠시 가면 뒤에 놓고 내가 있는 환경과 주변 사람들에게 나를 맞추는 것이 진정 이 사회에서 나를 나답게 해주는 것이다. 앞에서 쓴 나의 생활은 삶이 힘든 것을 비꼬려는 것도 아니고 누구에게 동정을 받으려고 한 것도 아니다. 그리고 나만 그런 것도 아니며 나보다 훨씬 힘든 삶을 사는 사람도 많다. 항상 눈으로 보는 것은 아니더라도 그런 사람들이 있으니 나는 그나마 나은 거라고 스스로를 위로하고 다잡는다.


나를 나답게 해주는 것은 나의 가면과 나의 복합성이다. 나는 이런 나의 삶을 사랑한다 그리고 사랑하려고 이렇게 애쓰는 나의 모습도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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