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짧은 생각

병원과 미로

겸손하자

by 심내음

몇 달 전 수술을 받은 병원에 갔다. 다행히 수술은 잘 끝나 경과를 보기 위해 한 달만에 방문한 병원이다. 입원을 하고 1주일쯤 지나자 병원이 집과 같이 익숙해져서 어디에 뭐가 있고 이걸 하려면 어디를 가야 하고를 바삭하게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지금 눈 앞에서 병원 구조가 익숙하지 않아 두리번두리번거리고 있는 사람들을 보며 묘한 우월감이 느껴졌다.


'난 그대들보다 여기를 너무 잘 알아. 어디를 언제 가야 하는지는 물론 어떻게 루트를 짜야 검사와 진찰 시간을 최소화할 수 있는지 나에겐 너무 쉽지'


이런 말도 안 되는 느낌이 들다니 나는 미친 건가? ㅎㅎ. 아무튼 병원 앱을 통해 능숙하게 도착 신고를 한 후 검사, 진료 시간에 최적화된 코스를 짜서 1시간 만에 일정을 끝냈다.


'휴 너무 쉽군'


난 농구 천재 강백호가 레이업을 성공시키고 나온 것처럼 콧대 높고 병원 문을 나섰다. 5분쯤 되었을까 갑자기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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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님, 병원인데요 적외선 채열 검사받으실 시간인데 안 오셔서 전화드렸어요"

" 예? 뭐라고요? 그럴 리가....(저는 그 병원에 입원도 했고 누구보다 병원에 대해서 잘 아는 사람인데요...) 제가 검사를 빼먹었다고요? 오늘 분명히 3D 엑스레이도 받고 다 했는데요 뭔가 착오가 있으신 거 아니에요? 적외선 채혈이요?"

"000님 맞으시죠? 11:30분까지 여기 오셔야 해요. 그리고 적외선 채혈이 아니고 적외선 채. 열. 검사예요. 지금 안 받으시면 나중에 따로 예약하고 오셔야 해요"


으윽... 분명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다. 적외선 채. 열. 이라니..


"아 네 그렇군요. 지금 병원 근처라서 금방 가겠습니다.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얼굴이 벌게졌다. 병원으로 달려가 검사받는 곳을 가는데 도대체 어디에 있는 곳인지 모르겠다. 아까 말한 채혈자가 생각나 채혈실에 가서 간호사에게 검사를 받으러 왔다고 했다.


"000님 오늘 검사 없으신데요?"


검사가 없다니 이건 무슨 말인가. 아까 전화는 누가 건 것이란 말인가 귀신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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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조금 전 분명히 전화를 받았는데요. 적외선 채혈받으러 오라고 하셨는데요"

"아... 적외선 채혈이 아니가 채열이겠죠. 여기가 아니고요 B동으로 가셔야 해요"


맞다. 채혈이 아니라 채열이라고 했는데... 당황했나 보다.


난 적외선 채. 열. 실을 물어물어 찾아갔고 원래 예약시간을 넘겨 2시간이 넘게 병원에 있었다.


휴 제발 겸손하자. 제발 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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