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한준 Apr 06. 2017

문턱 낮아진 은행에 대한 불편한 우려

2000만 원만 있으면 VIP 대접하는 진짜 이유는 뭘까?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 은행 계좌를 만드는 등의 이유로 은행에 방문할 일이 점차 생겨났다. 그럴 때마다 사람이 어찌나 많은지 기다리는 시간이 참 지루했다. 특히나 점심시간 즈음 방문하면 30분은 기본으로 기다려야 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 업무를 보는 것은 5분 내외임에도 말이다. 요즈음엔 인터넷 뱅킹이 있어 대부분의 업무를 지점에 직접 방문하지 않아도 되는 경우가 많지만 여전히 직접 방문해야만 처리가 가능한 업무도 꽤 있다.


  그때마다 참 부러웠던 장면. 마치 고속도로의 하이패스처럼 번호표를 뽑지 않고 굳게 닫혀 있는 별도의 문으로 직행하는 사람을 본 적이 있다. 처음엔 직원인가 싶었는데 얼마 안돼 다시 은행 밖을 나서는 모습에 손님임을 직감했다. 그렇다. 그들은 VIP 고객인 것이다.


  그런데 이른바 고액 자산가인 VIP 고객에만 제공되고 있는 PB(Private Banker, 개인 자산관리 전담 은행원) 서비스의 문턱을 점차 낮추겠다는 기사를 접했다. 적어도 1억 원 이상의 은행 잔고가 있어야 가능했던 것이 수협은행은 2000만 원만 넘겨도 PB 서비스를 제공한단다. KEB하나은행과 우리은행도 3000만 원 이상 보유 고객에게 PB 서비스를 실시한다고 한다.


  은행들이 보다 많은 고객들에게 일대일 자산 관리를 해준다는 점은 반길 일이다. 그러나 이들이 이렇게 변하는 진짜 이유는 뭘까? 마침 그것을 추측할 수 있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최근 은행들의 수익성은 점점 악화되고 있다. 특히 저금리 기조가 이어지면서 주 수익원인 예대마진(대출이자에서 예금이자를 뺀 나머지 부분)이 줄어들면서 흑자 폭이 줄어들었다. 이에 은행들은 수익성 개선에 대한 해법을 찾기 위해 필사적인 노력이 필요해졌다.


  은행들은 이미 작년 12월 미국 금리 인상을 이유로 대출 금리를 조금씩 올려왔다. 반면 예적금 금리의 인상은 더딘 모양새다. 씨티은행은 올 6월부터 소액 계좌 보유 고객에 한해 계좌 유지 수수료를 부과한다. 또한 KEB하나은행은 창구 이용 고객들에 한해 수수료 부과를 검토 중이라고 한다. 이미 2017년 9월부터는 은행의 통장 제작 수수료 부담 등을 이유로 원칙적으로 종이 통장을 발행하지 않는다. 점차 확대하여 2020년 9월부터는 종이통장 발행 요청 시 수수료를 내야 한다. 은행들의 살길 찾기가 고객들의 편의는 외면한 채 이뤄지고 있다.


  그런 와중에 PB 서비스를 확대한다니. 무슨 이유에서 일까. 어쩌면 이것도 은행들에게 유리한 행보는 아닐까. 반론의 여지가 있을 테지만 한번 적어보겠다. 은행들의 PB 서비스는 개인별 전담 자산관리를 핑계로 고객들에게 수수료가 높은 상품을 팔 기회가 될 수 있다. 이를 통해 고객에게 유리하기보다는 각 은행에서 밀고 있는 주력 펀드나 수수료를 많이 챙길 수 있는 연금 보험 상품 등을 팔 수 있는 가능성도 그만큼 커졌다. 물론 직원들이 자신들의 회사에 유리한 것들은 제시하는 일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PB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기쁨에 앞서 이를 통해 어떠한 상황들이 펼쳐질 수 있을지는 예측해볼 필요가 있다. 은행들의 생존이 위협받는 시기에 문턱을 낮추며 고작 2000만 원만 잔고로 가지고 있는 고객들을 VIP 대접하며 자산관리를 해준다는 진의에 대해서 말이다. 부디 내가 우려하고 있는 부분이 아니길 바라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정부가 추진하는 유연근무제, 실효성 있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