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한준 Apr 29. 2023

나는 여전히 달리고 있다.


지난 주말, 저녁을 먹은 후 갑자기 평소에 잘하지도 않았던 야외 달리기를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늘 가던 헬스장을 가지 않은 탓에 스스로 죄책감 같은 것이 밀려왔던 것 같다. 야외 러닝을 한건 작년 10월, 7km 러닝 대회에 참가한 이후에 한 번도 없었다. 욕심부리지 말고 '딱 30분만 달리고 오자'라는 생각으로 주섬주섬 옷을 입기 시작했다. 운동하면서 더워질 것을 고려하여 복장은 반팔에 반바지로 골랐다.

코스는 집 근처 아파트 단지. 평지가 아니라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기에 썩 달리기 좋은 코스는 아니었다. 그래도 차도 옆 도보보다는 훨씬 나은 선택지가 있다는 것이 다행이다. 러닝 기록을 위해 핸드폰 앱을 켜고 달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채 1분도 되기 전에 포기하고 싶어졌다. 가빠져오는 숨에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게다가 시작부터 오르막이다.


신은 왜 나를 시험에 들게 하는가


30분 달리기 목표는 세 바퀴만 돌자는 목표로 바뀌었다.

오르막이 끝나고 평지가 되니 조금 살만했지만 심장은 쉽게 멈추지 않았다. 날씨도 살짝 추운 것이 복장 선택도 뭔가 잘못된 것 같았다. 일교차가 큰 요즈음 감기 걸리기 딱 좋은 날씨였다. '감기 핑계를 대고 다시 집으로 들어갈까'라는 생각이 잠시 머리를 스쳤다.

내리막길은 오르막보다는 나았지만 꽤 가파른 경사에 가속도가 붙으니 스스로 컨트롤이 살짝 힘듦이 느껴졌다. 적은 힘으로 추진력을 얻어 가고는 있는데 안정감은 떨어졌다. 그렇게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왔다.

두 바퀴 째는 확실히 수월했다. 그래도 '세 바퀴만 돌자'라는 목표를 변경할 생각은 없었다. '내가 왜 사서 고생일까'라는 생각과 함께 문득 '인생과 닮았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르막처럼 처음 시작하는 것은 많은 노력과 시간을 소모하게 된다. 그러다 평지와 같이 수월하게 일이 진행되는 순간이 오고 마감일이 임박하면 내리막길을 가듯이 삐걱거리기도 하지만 어떻게 해서든지 마지막 스퍼트를 올려 결과물을 완성하게 되는 인생 말이다.

'스포츠와 인생이 닮았다'라고 느낀 건 사실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내가 야구라는 스포츠를 좋아하게 된 것도 비슷했다. 대학교 도서관에서 잠시 올림픽에 출전한 한국 야구 대표팀 경기를 본 적이 있다. 패색이 짙던 9회, 홈런으로 단번에 역전시켰다. 짜릿했다. 덕분에 시험공부 중이던 나의 계획에는 조금 차질이 생겼지만 당시 야구 캐스터가 꺼낸 한마디가 나를 깨웠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사실 이 말은 미국의 유명한 야구선수 요기 베라가 남긴 명언이다. 결과는 아무도 모르니 끝까지 최선을 다하자는 의미이다. 야구에서는 특히 예측할 수 없는 반전이 많이 일어난다. 축구, 농구와 같이 시간의 스포츠가 아니라 1회부터 9회까지 각각 3개의 아웃카운트를 잡기 전까지 수많은 일이 일어날 수 있다. 투수가 공을 던져서 타자를 잡아내지 못하면 끝나지 않는 게임이다. 그리고 공을 쳐서 안타를 만들어도 다 똑같은 것이 아니다. 어떨 땐 1루까지 타자가 가고 다른 때는 2루, 거기에 수비의 실책으로 3루까지 가기도 한다. 구장을 넘기는 홈런의 경우도 우리 팀의 타자가 몇 명이 나간 상태에서 치느냐에 따라 몇 득점이냐가 달라진다. 인생에서도 이와 같은 경험을 한 적이 있다. '전화위복' 혹은 '호사다마'와 같은 상황이 그렇다.

이런 부분에 매료되어 야구를 좋아하게 되었는데 러닝에서도 비슷한 감정을 느끼게 된 것이다.

"인생은 긴 마라톤과 같다. 항상 전력 질주를 하는 것이 아니라 페이스 조절을 잘해야 한다."와 같은 명언도 갑자기 의미 있게 다가왔다. 이렇게 러닝의 매력에도 빠져버리는 것일까.

마지막 세 바퀴째는 훨씬 쉬웠다. 살짝 아쉬운 마음에 한 바퀴를 더 돌까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오랜만에 뛰는 상황에서 무리하지 않기로 했다. 진짜 감기에 걸릴지도 모를 일이다. 최종 기록은 3.5km, 25분. 결론적으로 처음 목표였던 30분 달리기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았다. 집에 도착하여 샤워를 한 후에도 뛰는 가슴은 진정되지 않았다. 10분 이상 침대 위에 누워 눈을 감고 휴식을 취했다. 그래도 무언가 해냈다는 생각 때문이었을까. 힘든 와중에도 뿌듯한 감정이 샘솟았고 묘하게 기분이 좋았다.

최근에 회사에서 업무 변경이 되어 새로운 것을 배우게 되면서 많은 스트레스가 있었다. 부서장에게 말을 해서 다시 이전 업무로 돌아갈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다행히 약 3개월이 지난 지금은 적응이 되어 이전보다는 훨씬 편해졌다. 오르막을 지나 평지를 만난 느낌이다. 우리의 인생이 늘 평탄할 수는 없다. 때론 오르막 혹은 내리막을 만나게 된다. 이럴 때마다 생기는 어려움은 일종의 넘어지지 않기 위한 몸부림과 같다. 이 과정을 잘 넘기면 편안한 평지를 만나게 된다. 이러한 진리를 잠시 망각하고 나는 또 스트레스를 받은 것이다. 잊지 말자. 나는 여전히 달리고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당연한 사랑은 없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