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면교사, 타산지석
어릴 때부터 항상 기 센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남들이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그래서 대학 신입생 때에는 앳된 얼굴에 어울리지 않는 스모키 화장을 하고, 사회초년생 시절에는 신입을 마냥 어리게 대하는 거래처 사람들의 태도가 싫어 머리를 빨갛게 염색하기도 했습니다. 메일은 일부러 딱딱한 문투에 어려운 한자용어를 섞어 쓰기도 했어요. 효과가 있었는지를 지금에 와서 생각해본다면 전혀 아니지만요.
기가 센 사람이 되고 싶다는 바람은 지금도 품고 있습니다. 다만, 어릴 때와 지금 생각하는 ‘기 센 사람’의 의미가 달라졌습니다. 아니 그 의미를 더 명확하게 규정했다고 해야겠지요. 마냥 어려 보이는 것이 싫어 기가 세어 보이려고 노력했던 그때로부터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을 만나다 보니 이 건 ‘기가 센 것’이 아니구나 하는 깨달음이 있었어요.
회사를 다니다 보면 저와 같은 바람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신의 연차나 직급을 맥락 없이 과시하는 사람. 회의시간에 건설적인 비판이 아닌 비아냥을 뱉는 사람. 초면에 통성명 없이 대뜸 요구사항을 말하는 사람. 불필요할 정도로 정색하며 빨간 글씨에 노란음영으로 자신의 요청을 강조하는 사람.
이러한 유형의 사람을 마주할 때면 아무래도 편하게 대하기보다는 한 번 더 생각하고 커뮤니케이션하게 됩니다. 아무래도 함부로 대하기 어렵죠. 그렇기에 당사자의 대부분은 ‘나는 이런 존재야. 회사에서 나의 입지는 이러해.’라며 스스로를 기가 센 사람이라고 포지셔닝 하려 하는 것이 보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압니다. 겉으로 드러내는 날카로움만으로 센 기가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주관적이지만 이 세 가지가 없으면 기 센 사람이 되기 어렵다고 정리해보았습니다.
첫째, 자연스러움이 없습니다. 겉으로 드러내는 날 선 말과 태도가 어색합니다. 내실이 단단하지 못해서 인지, 오히려 남의 시선을 많이 의식해서인지 강하게 뱉어내는 언행 어딘가에 어색함이 묻어납니다. 이 부자연스러움은 대부분 사람에 따라 다른 처세를 보이는 데에서 옵니다. 상대적 약자 혹은 뉴페이스에게 보이는 강한 태도와 본인 판단에 기가 센 사람 앞에서의 작은 모습 사이에서 보이는 괴리가 부자연스러움을 만듭니다. 경험 상 정말 기가 센 사람은 모두에게 같은 스탠스를 보이거든요.
두 번째 특징은, 예의가 없습니다. 기 센 것과 예의 없는 것의 차이를 모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건들거리는 태도와 두서없이 강한 말투는 예의가 없는 것이지 기가 센 것이 아닙니다. 상대의 기분만 나쁘게 하고 무시받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리스펙이 없습니다. 태도와 말투에서 힘이 느껴질지언정 그로부터 전해지는 메시지에는 힘이 없습니다.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왜 이런 식으로 말하지?’라는 생각이 들게 할 뿐, 그 말을 귀담아듣게 할 수 없습니다.
<출처: mbc>
10년 전, 어릴 적의 나는 어쩌면 이런 사람이 되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부끄러운 사람이 될 줄도 모르고. 지금도 기가 센 사람이 되고 싶다는 바람은 품고 있습니다. 하지만 바깥으로 날이 서있기보다는 메시지에 힘이 있고, 무례하기보다는 상대에 대한 존중이 있고, 세어 보이려고 애쓰기보다는 자연스럽게 리스펙을 받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