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동환 Jan 13. 2019

책이라는 책

목수J 작가K(14회)

“슬슬 책 제목도 지어야 할 텐데...”

우리는 이걸 무조건 책으로 만든다는 전제를 하고 썼기 때문에,

초반부터 책제목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쉽사리 답은 나오지 않았다.

쓰다보면 어느 순간

떠오르게 될 거라는 게 J의 생각이었지만,

지금까지 J가 떠올린 건 없었다.

나는 누군가의 머릿속에서 제목이 떠오르게 된다면

그건 나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지금껏 몇 권의 책을 내면서

최근 출판계의 트렌드 정도는 알고 있다고 자신했으니까.


“요즘은 구어체로 된 제목이 유행이라지.

아마 일본 출판업계에서 그대로 따온 것 같긴 한데,

사람들한테 잘 먹히는 건 사실인 것 같아.”

그러고는 각각의 논리를 담고 있는

몇 개의 제목들이 우리에게 왔다가 갔다.


‘통 뭘 모르는구만’

‘소설 쓰고 앉아 있네’

‘어디서 약을 팔아?’

‘인문학 같은 소리 하고 자빠졌네’

‘불온 서적’

‘벗들에게’

‘이것은 가구가 아니다’


이것들 중에서 실제로 이 책의 제목이 나올지 모르겠지만,

사실, 내 입에서 나온 말대로,

제목이란 건 ‘책의 얼굴’이라...

이것에 지나친 공을 들이는 건

J를 불쾌하게 만들지도 모른다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얼굴은 상품의 포장이 아닌가.

웃기지 않으면서도 얼굴이 잘생겼다는 이유로 유명해진 어느 개그맨이 떠오른다.

그는 자주 방송에 출연하지만 늘 웃기지 않는다는 댓글에 시달린다.


제목 짓기에 좀처럼 흥미가 없었던 J가 어느날 말했다.

“책.”

“응?”

“그냥 ‘책’ 어때?”

“제목 말이야? 아놔, 그건 형...”

“왜, 우리가 예전에 읽었던 ‘천 개의 고원’에서도 앞 부분에 ‘책’에 대해서 끝도 없이 이야기하잖아.

이미 완결된 지식, 더 이상 변화할 여지가 없고 영원히 죽어 있는... 그런 걸 그만두자는...적어도 우리에겐 의미가 있지.”

“그건 그런데... 그건 거장이라 불리는 사람들도 쉽게 입에 올리지 못할 제목인데?”

“훗. 거장...”

J는 이 말을 하면서

입에다 똥을 한가득 문 표정이 되었다.

“내가 그 의자를 만들 때 주변에서 사람들이 하던 말이 그거야. 생각나?”


생각나고 말고...

수십 번도 더 들었던...

그건 좀 대단한 이야기였다.

나는 그 이야기를 정말로 좋아한다. 그렇지만...


“응, 알지.”

“왜 그렇게 만드냐는 거야. 그건 거장들이나 하는 방식이래.”


J는 가구를 만들 때

한옥건축의 방식을 차용해 만든다.  

그가 한때 그 바닥에 몸담았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의 말을 들어보면,

한옥건축에 담긴 철학은

그대로 가구에 적용하더라도 전혀

모자람이 없을 뿐만 아니라,

그의 가구철학을 구현하기에

매우 적절한 방식이었다.


그런데 사람들의 생각은 달랐다.

그의 방식대로 가구를 만들면,

특별한 장식이나 디자인 없이도

이름값 때문에 비싸게 거래되는

말그대로 거장들의 디자인에 가까워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는 언제나

그토록 오해받기 쉬운

그 방식을 고집했다.


“너도 나한테 사람들과 똑같은 말을 할 거야?”

“알았어, 알았어. 일단 그것도 후보에 넣자.”

나는 적당히 그를 달래고는 생각했다.

그래도 절대 ‘책’은 안 돼.

매거진의 이전글 글쓰는 노숙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