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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환 Jan 13. 2019

글쓰는 노숙자

목수J 작가K(13회)

내가 J에게 물었다.

형, 사람들이 글을 왜 쓴다고 생각해?”

“말하고 싶어서지. 보여주고 싶어서.”

“그렇지? 그걸로 영향력을 높이고 싶고, 매력을 발산하고 싶고 응?”


J가 말했다.

“물론 글을 쓰고 있는 동안의 만족감도 있겠지.”

“그런가... 나무는 그럴지도 몰라. 형이 나무를 만질 때...”

“나무를 만질 때 얻는 행복감이 있지. 말할 수 없이 좋을 때가 분명히 있어.”


“그런데 글은 말야. 그것만으로 글쓰는 이유를 설명하는 건 불완전하지 않아?”

가령 평생 아무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은 글을 쓴다는 게 가능할까?

어떤 글을 쓰면서, ‘이글은 내가 죽을 때까지 아무도 읽으면 안 돼.’ 이렇게 말야.”

“글쎄...그런 거라면 일기가...”

나는 J의 말을 듣지 못하고 이어 말했다.

“잠실역에 노숙자가 한분 있거든? 오래전부터 봐온 사람인데, 오늘 여기 오는 길에도 봤지. 그분이 종종 노트에다 글을 써. 정말로 열심히 몰두해서... 그런데 그걸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드는 거야. 아무도 보지 않을 글을 쓴다는 게 가능할까. 그런 글을 쓴다면 왜 쓸까.”

“너는 일기를 안 쓰는구나.”

“응.....?”


“네가 말한 글이 일기잖아. 넌 일기를 안 쓰는구나. 안 써봤거나.”

“아닌데... 나도 써논 일기가 없는 건 아냐. 근데 그게,,습작 메모 같은 일기라서,

언젠가 그걸 꺼내서 써먹을 때가 많아.”

“네 글은 상품밖에는 없는 거로구만? 이거 장사꾼이 다 됐구만.”

나는 말문이 막혔다.

“그렇네. 난 제대로 된 일기를 써본 적이 없었네.”


그때 J의 눈빛이 기분나쁘게 또 반짝였다.

그가 말했다.

“근데 말야, 넌 왜 그 사람이 쓴 글을 아무도 읽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어?”

“응?”

“노숙자가 쓰는 글이라서?”

“이 사람이 날 또 쓰레기로 만들려고.”


오랫동안 글을 쓴다는 일은

우리 사회의 권력에 가까운 일이었다.

십여 년 전만 해도 책이라는 물건 또한

아무나 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책을 출간했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권위를 가진 사람이란 의미였다.


그로부터 많은 게 달라졌지만 여전히,

글을 쓰는 노숙자가 너무나 낯설고

아이들의 낙서에서는 아무 것도 읽을 게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책을 가진 사람의 권위 앞에 납작 엎드릴 수밖에.

입 닥치고 살아갈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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