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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시락 한방현숙 Apr 19. 2016

꽃반지 끼고


냉이 따던 길을

따라따라 가다보면  어딘가 그곳 나올까

산 그림자 포근히 내려앉은 그곳에

울 엄마 여전히 냉이 따고 있을까


어릴 때 아이들 뛰놀며

웃음소리 울려 퍼지던

푸른 냄새 한가득 나던

곳 나올까.

 

할머니 주변 맴돌아 아무 풀 뜯어

냉이라고 전해주며

할머니 함박웃음 만들어주던

아름다운 그곳.

 

건강한 울 엄마 뒷모습 맴돌며

여기저기 웃음 기운 가득했던

아름다운 시절

 

봄이 오고 꽃이 피고

그 계절 다시 오면

냉이 따던 그 길 따라

울 엄마 보러 가고 싶다.

엄마 부르며 안기고 싶다.



봄바람 살랑살랑 부는 계절이 고맙게도 또 왔다. 겨울 끝 봄바람은 따뜻하고 솜털처럼 가볍다. 덩달아 가뿐해진 나는 하늘거리는 원피스를 꺼내 입고 출근 준비를 했다. 8년 동안 입은 원피스라 나이 들어가며 나날이 살이 찐 탓에 매우 타이트해진 옷이다. 원피스를 넉넉한 겉옷으로 보기 좋게 가리고 마음도 상큼하게 하루를 보냈다. 나풀거리는 원피스 치마의 하늘거림만큼이나 하루는 가뿐하고 경쾌하기까지 했다.

 퇴근을 하고 집에 와 보니 아무도 없다. 중2짜리 막내도 오늘은 조별 발표 준비로 매우 늦는단다. 고3은 물론이고, 시험이 코앞에 닥친 대학생 큰딸은 거의 자정 전에나 들어온다.

 그러려니 하고 옷을 갈아입으려 하는데, 조금도 내 몸에 여유분이 없는 원피스의 뒷 지퍼는 절대로 내려가지 않았다. 아무리 팔을 뒤로 내빼 손목을 요리조리 위아래로 돌려 가며 지퍼를 내리려 했으나 할 수가 없었다.

 은근히 몸에 땀이 밸 정도로 애를 썼건만 난 하릴없이 원피스를 그대로 입은 채, 퇴근 후의 활동들을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화장을 지우고, 세수를 하고, 밥을 퍼서 식탁에 앉아 밥을 먹기 시작했다. 원피스를 그대로 입은 채…….

 이미 원피스 목 주변은 세수하느라 물에 젖어 축축해졌고, 식사 후 더 타이트해진 옷 때문에 숨을 쉬기가 불편했지만, 화장을 말끔히 지운 상태로도 계속 외출복을 갖춰 입은 채 난 계속 있을 수밖에 없었다.

 보기에 따라서는 얼마나 웃기고 웃긴 상황인가! 코미디의 한 장면이건만 아까부터 내가 외면해 왔던, 모른 척했던 내 감정은 더 이상 숨길 수가 없었다. 세수하느라 앞머리를 한껏 올려붙였던 욕실용 헤어밴드를 풀어 결국엔 눈물을 훔치고 말았다.

 아! 엄마! 엄마! 나의 엄마! 엄마의 그 가냘프고도 창백한 손가락을 떠올리고 난 울 수밖에 없었다. 12년 병상에서 모든 진이 빠져 결국엔 자식 키우느라 억세고 강인한 힘을 지녔던 손가락은 어느새 수저를 겨우 들 수 있는 연약한 손으로, 마비로 온전하지 못 한 손으로 바뀌었던 것이다.

 그러나 충분히……. 엄마는 침대에서 팔을 들어 나의 원피스 뒷지퍼를 내려 주셨고, 가냘프지만 따뜻했던 그 손으로 나를 만져 주셨고, 내 앞머리를 넘겨주셨었다.

 엄마가 가신 후 수 없이 엄마가 지금 함께 계셨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되뇌고 되뇌고 또 되뇐 말이지만 이렇게 안타깝고, 이렇게 슬프고, 이렇게 아픈 마음이 이 상황에서 나타날 줄이야.

 몇 분 전까지 이 상황을 가족 단체 채팅방에 중개를 하며, 아이들과 남편의 웃음을 이끌어내던 내가 몇 분 후에 이렇게 슬픈 감정으로 엄마를 떠올릴 줄이야. 엄마가 계셨으면 벌써, 벌써 옷을 갈아입을 수 있었을 텐데……. 엄마의 마지막 병실에서의 장면도 언제나 엄마의 손가락으로 떠올려진다. 오로지 엄마손의 따뜻함만으로만 엄마의 곁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어느 봄날 유치원에서 돌아온 막내가 들꽃 꺾어 할머니 손에 꽃반지 만들어 드리던 그날을 떠올려 본다. 이렇게 소소한 일상에서 떠올리는 크나큰 엄마 부재는 나를 몹시 슬프게 한다. 사랑을 잃어버린 이들의 아픔은 크나큰 데서 느끼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사랑을 잃은 후에야 안다. 일상의 행복이 얼마나 소중하고,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를 그때서야 안다.

 그래서 더 마음이 아프다. 그래서 후회를 한다. 가까이 있을 때 더 잘해 주지 못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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