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도시락 한방현숙 Jul 27. 2018

제발 떠들지 맙시다.-무례한 소음공해

조용히 좀 해주실래요.-다음 이미지

너무 시끄러워요

 세상이 소문 공해로 뒤덮인 지는 꽤 오래되었다. 양측의 의견이 서로 팽팽히 맞서는 ‘층간 소음’은 물론이고 도시개발과 공사로 이어지는 소음, 학교 울타리 옆 아이들 떠드는 소리까지 다 사람 사는 세상에서 부비며 나는 소리라고 생각하며 지내왔다. 불편하고 때론 얼굴 찡그리며 짜증이 나지만 그래도 얼마간은 이해되는 부분이 있기에 참을 만했던 것 같다. 우리 모두 비슷한 환경에서, 비슷한 처지로, 비슷한 생각으로 소음공해를 이겨내기도 하고 때로는 이해하기도 하면서 도시 생활을 하는 듯하다.

 그런데 요즘 겪은 ‘예의 상실 소음’ 앞에서는 도저히 납득이 안 되어 정말 참을 수 없는 스트레스가 치밀어 올랐다.

다음 이미지
'예의'상실 소음

1.

 퇴근 후 엄마가 계신 추모 공원을 찾았다. 비바람이 몹시 부는 6월 마지막 주 화요일이었다. 봉안당 방문 시간이 저녁 6시까지여서 시간이 촉박했지만, 이틀 후가 엄마 생신이기도 하고, 찾아뵌 지도 한 달이 넘어 폭우가 쏟아지지만 다녀오기로 했다.

 가족공원 입구에 도착하면 늘 그렇듯이 꽃 한 송이 사서 두 손에 모아 쥔다. 이때부터 마음은 경건해지고, 슬픔이 몰려와 목젖이 달아오르기 시작한다. 애도의 마음이 시작되는 것이다. 주차장에 차를 주차시키고, 입구를 지나 계단을 오르고……. 이 모든 발걸음에 경건함이 묻어나 저 마음 끝 그리움과 슬픔들이 모아진다. 그러면 눈물이 고여 떨어지기도 하고, 돌아볼 새 없이 지나쳐 온 요즘을 돌아보기도 하고, 다시 또 엄마 앞에서 새로운 결심을 다짐하기도 하고…….  나름의 추모의 시간을 갖는 것이다. 짧은 시간이지만 엄마 앞에 이러고 있다가 봉안당 문을 나서면 마음이 편해지고 다시 내일을 맞이할 용기도 얻게 된다. 그래서 이 시간이 슬프지만 엄마에게 자주 가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마음이 모아지다가 산산이 흩어져 버렸다. 도넛 모양의 원형으로 된 봉안당 저 끄트머리에서 웅성웅성 한 무리의 가족들이 등장하기 시작하면서부터이다. 유치원생부터 노인까지 3대로 보이는 가족들이 돌아가신 분의 위치를 찾느라 나누는 대화가 마치 대형 마트에서 쇼핑하는 것처럼 거리낌 없었다. 왁자하게 여기저기 탐색? 중인 사람들은 이곳이 추모 장소라는 생각은 아예 없는 듯 심지어 웃음소리까지 내며 아직도 찾지 못한 고인의 위치에 대해 설왕설래 중이었다.

 부산스러운 그 가족들 때문에 도저히 내 마음을 엄마에게 집중할 수가 없었다. 보다 못한 다른 추모객이 좀 조용히 해 달라고 요구를 하자 그 후에 반응이 더 가관이었다. 별 일 다 보겠다는 눈빛을 자기들끼리 교환하더니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없이 다시 웅성거리며 자리를 이동했다. 60대 어른과 30대 젊은이와 아직 어린 유치원생이 있는 가족들에게서 ‘예의’나 ‘상식’을 찾아볼 수 없는 것이 기가 막힐 지경이었다.

 그들이 아직도 찾지 못한 ‘조상’을 찾아 떠나고 다시 잠잠해질 때쯤 요란한 전화벨 소리가 울렸다. 두 번째 몰지각의 시작이었다. 두어 칸 앞에 흰 옷 입은 중년의 여자 2명이 보였다. 그 후로 난 그들의 통화를 무려 3분 이상이나 들어야 했다. 참다못해 용기를 내어 좀 조용히 할 것을 요구하자 나에게 돌아온 말은 ‘죄송합니다.’의 메시지가 아니었다.  한번 흘낏 보더니 당당한 목소리로

 “아~ 네~~~~~~~~~~에”라고 하더니

 “조용히 하란다.”

 “누가?”

 “저 여자가.”

 “뭐야?” 하는 소리가 계속 들렸다. 보니 서너 명의 여자가 가려진 채 더 있었다.

 어쩜 이런 추모 장소에서 몰염치와 몰상식의 소음들이 판을 치는지, 남에 대한 배려나 장소에 걸맞은 예의에 이리 둔감한지, 자신의 실수를 부끄러워하기는커녕 오히려 어깃장을 놓아서 자존심이라고 지키려 하는지 씁쓸하기만 하였다. 제대로 추모의 시간도 갖지 못 한 채 퇴장을 알리는 방송을 들으며 발길을 돌려야만 했다. 이 빗속을 달려온 정성이 모두 헛수고가 되어버렸다. 이해할 수 없는 ‘무례한 소음공해’로 인해서…….


2.

 대전 발 인천행 고속버스를 타고 오는 2시간 30여분 동안 또다시 ‘무례한 소음공해’에 시달려야만 했다. 1초도 쉬지 않고 통화하는 뒷좌석의 어느 젊은이 때문에 듣고 싶지 않고, 알고 싶지 않은 그들의 잘난 연애 사를 꼬박 들어야만 했다. 시답잖은 농담과 오글거리는 애정표현으로 고속버스 안을 자신의 안방쯤으로 만들어 버리고는 2시간 이상 연신 떠들어대는 그 여자아이를 정말 때려주고 싶을 정도로 불편했다.

 ‘조금만 더 참아보자……. 좀 있다 끊겠지.’

 하며 버텨 본 승차시간이 억울해 내릴 때 째려보았으나 이미 ‘공공장소에서는 통화만 간단히!’를 알만한 상식인은 아니었다.


3.
 냉면집 같은 오래 머물지 않은 가벼운 먹거리 식당에서 뛰어다니며 소란스러운 아이들은 여전히 드물지 않다. 우리 아이들이 어린아이일 때가 벌써 20여 년 전인데  아직도 의자에 앉아 조용히 식사하는 아이들이 칭찬거리 대상이 되는 것을 보니 식당에서 식사예절을 지키는 일이 참 어려운 일인가 보다. 아니 예절을 가르치는 일이 어려운 일인가 보다. ‘노 키즈 존’이 사회적 이슈가 된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노 키즈 존’의 의미는 ‘무 개념 부모 출입금지’로 해석하는 것이 맞다. 어린아이들의 특성상 뛰고 돌아다니는 행동이 어쩔 수 없다고 다 같이 자식을 키우는 넓은 마음으로 이해한다 하자. 그러나 옆에 있는 어른이 부모라면 최소한 한 마디 정도는 해야 한다.

 ‘이곳은 뛰어다니는 장소가 아니다.’
 ‘공공장소에서 남에게 피해를 주는 무례한 행동은 하면 안 된다.’

 라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 부모의 교육적 의무라고 생각한다. 마치 무례함과 당당함을 구분조차 못 하는 표정으로 그저 아이들을 자랑스럽게 바라보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한다. 아이들에게 원하는 대로 해 주는 것이 귀함을 뜻하는 것은 아니잖은가!

 부모가 제지하는 말 한마디 정도만 들어도 그렇게 화가 나지는 않을 텐데, 모든 식당 안 사람들이 쳐다보아도 아랑곳하지 않고 내버려 두는 몰상식한 부모 때문에, 여전히 활개 치고 떠들어 대는 그 자식 때문에 음식이 도대체 어디로 들어가는지 모르게 급히 먹고 그 ‘무례한 소음공해’ 장소가 되어버린 식당을 탈출하였다.

제발 조용히 말합시다.
필리핀 어느 관광지에 이렇게 붙어 있다한다-다음 이미지

 세상이 너무 시끄럽다. 할 말은 해야 하고, 목소리를 높일 때는 높여야 되겠지만 제발 지킬 것은 지키면서 떠들었으면 좋겠다. 때와 장소만 가릴 줄 알면, 개인적 장소와 공공의 장소만 구별할 줄 알면, 이기적인 나의 편리와 내 자식 사랑이 누군가에게는 심각한 불편과 스트레스를 줄 수 있다는 당연한 사실을 모른 척하지 않는다면……. 제발 떠들지 맙시다.

 ‘추모 공간에서 조용히 추모하고 싶다.’
 ‘남을 배려하는 속삭이는 휴대전화 통화 소리를 듣고 싶다.’
 ‘식당에서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주위 어린이를 보면서 식사하고 싶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