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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시락 한방현숙 Sep 21. 2018

뮤지컬 '마틸다'

 뮤지컬 전성시대

 뮤지컬을 마다할 여자들이 있을까 싶다. ‘뮤지컬’ 하면 자동으로 함께 떠오를 정도의 ‘뮤지컬 마니아’인 몇몇 지인들 얼굴도 스쳐간다. 취향의 차이도 있겠으나 관건은 ‘시간’과 ‘돈’ 일 것이다. 물론 최고의 강력한 망설임은 당연 ‘돈’ 일 것이다.

 뮤지컬 출신 배우들이 TV에서 인기를 차지하고, 고가의 공연이 순식간에 매진되고, 유명 배우 공연은 암표가 돌 정도라니 앞으로도 뮤지컬의 전성기는 계속될 것 같다. 수많은 공연들이 유명세를 타고, 주인공들이 대스타가 되었지만 현장에서 함께 하지는 못했다. 가끔 모임에서 수년간 모은 회비로 가뭄에 콩 나듯이 몇 번 다녀오긴 했으나…….

여자 넷이 단체관람

 그런데 남편이 티켓 4장을 가져왔다. 역삼동 LG아트센터에서 공연 중인 ‘마틸다’ 초대권이었다. 평일 공연이라 부여에서 근무 중인 남편은 아쉽게도 함께 할 수 없었지만, 대전에서, 도서관에서, 학교 야자에서 딸들은 각자 일정을 조정하고 목요일 저녁 공연 관람을 위해 무사히 모였다.

 얼마만인가? 아니 뮤지컬 단체 관람은 처음이었다. 아주 어릴 적 호두까기 인형 발레 공연이 어슴푸레 떠올랐지만 그것도 막내가 태어나기 전이라 모두는 아니었다. 어린 딸들이 자라니 이제 친구 같고, 자매 같고 늘 활기차고 정다운 여자들 모임이 가능해졌다.

딸만 있어 무작정 위로받던 시절에서

 막내가 태어난 2002년만 해도 올망졸망 어린 세 딸들을 데리고 엘리베이터라도 타면 안쓰러운 표정으로 무리한 위로를 건네는 노인 분들이 있었다. 심지어 혀를 ‘쯧쯧’ 차면서 ‘아들 없음’이 대단한 결격사유인 듯 불편한 눈빛을 보내왔었다.
 그리고 누군가는 "괜찮아! 나중에 더 좋아." 라며 함부로 위안을 건넸다. 지금 딸만 있어 불행할 거라는 동정은 사회가 가져다 놓은 인습의 결과였다. 그런데……. 세상이 바뀌었다. 남아선호 취향은 갈수록 퇴색해지고, ‘딸 바보’가 판치는 세상이 되었다. (난 절대적으로 양성평등을 지지하는 사람이다.)

 터울이 4살, 8살이라 어릴 때는 뭐든지 차이가 심해 거리감이 컸으나, 이제는 조화롭게 잘 어울려 사이좋게 지내고 있다. 키도 비슷해서 마치 딸 세 쌍둥이를 키우는 착각이 들 때도 있는데 서로 다정하게 어울려 밤새 하하호호거릴 때는 자매 없이 자란 나의 아쉬움을 한방에 물리칠 만큼 보기 좋아 부러울 때가 많다. 커갈수록 딸들은 공연이나 전시회를 보러 갈 때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친구들이 되어가고 있다.

역삼동 LG아트센터

 아무튼 우리는 8시 공연에 늦지 않도록 서둘러 인천 석천사거리역에서 출발했다. 주안, 신도림에서 각각 환승하여 1시간 넘게 승차한 후 역삼역에 도착하였다. 역삼역에서 도보로 7분 거리에 있다는 목적지는 역에서 지하통로로 바로 연결되어 있어서 보다 쉽게 찾을 수 있었다.   

 공연 시간을 확인한 후 저녁을 먹기 위해 1층 로비를 통해 밖으로 나오니 세련된 GS타워가 한눈에 들어왔다. 인천 구월동에 갇혀 지내다 넓은 대처로 나온 느낌이 들어 인천 촌사람이 맞는 듯해 웃음이 나왔다.

뮤지컬 '마틸다'

 초대권이 생기는 바람에 보게 된 공연이라 그냥 밀리듯 공연장까지 왔다. 그동안 바빠 어떤 공연 정보도 찾아볼 시간이 없었기에 ‘마틸다’라는 제목의 어린 주인공 사진만으로 무작정 ‘빌리 엘리어트’ 류의 이야기가 아닐까 하는 하는 짐작으로 의자에 앉아 공연을 기다렸다.


 공연 시작 전 막내가 귓속말로 나에게 말했다.

 “ 엄마, 제가 하고 싶은 일이 바로 저런 거예요."  아이가 가리키는 것은 무대 전체를 감싸고 있는, ‘마틸다’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무대 장치였다.
  “ 저렇게 설치해서 무대를 디자인하고 꾸미는 일을 하고 싶어요.”

 얼마 전까지도 방황하던 막내의 입에서 나온 목소리이기에 감동이 컸다.


 공연 중간 쉬는 시간에 첫째가 나에게 말했다. “

 엄마, 감동이에요. 어떤 교사가 되어야 하는지 저에게 계속 질문하는 공연이에요.”

 임용시험을 준비하며 하루 종일 도서관에서 살고 있는 첫째에게서 진심을 읽을 수 있는 간절함이 묻어나는 목소리라 또 감동이었다.

공연 시작 전 촬영 가능 -2층에서 바라 본 무대

 우리는 그렇게 2시간 40여 분을 음악과 노래에 빠져들며 ‘마틸다’를 응원하고 아이들을 이해하며 뮤지컬을 즐겼다. 일주일이 지난 오늘도 아이들은 노래를 흥얼거리며 ‘마틸다’의 뒷이야기를 찾아가며 감동을 되살리고 있는 중이다.

“어른이 되면~”(When I grow up)
이라고 내가 흥얼거리면
막내는
“침묵!”
이라고 대꾸한다.
그리고 우리 네 여자는 소리 맞춰
“옳지 않아~, 옳지가 않아~!”
라고 합창하며 그날의 감동을 되새긴다.
'마틸다'와 사람들
내가 본 마틸다 역은 누구였는지...추측뿐 아직도 모른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찰리와 초콜릿’의 작가 로알드 달(Roald Dahl)의 원작을 뮤지컬화한 작품이다.
주인공 ‘마틸다’는 책 읽기를 즐겨하는 어린 천재 소녀로 부모로부터 사랑받지 못해 불행하지만 집에서나 학교에서나 불의에 당당히 맞서며 바르게 성장해 가고 있다.
‘마틸다’의 부모 ‘웜우드 부부’는 대단히 속물적이고 부도덕한 부모로 ‘마틸다’를 학대하거나 방치한다. 게다가 아들이 아닌 딸이라는 이유만으로 비난하고 무시한다.
교장 ‘미스 트런치불’ 역시 ‘마틸다’를 괴롭히는 인물로 모든 아이들을 ‘버러지’라고 여기며 학대하고 조카 제니 선생님을 위협한다.
사서 선생님 ‘미스 펠프스’는 도서관을 자주 찾는 ‘마틸다’의 이야기(공중 공예사와 탈출 마술사) 독자가 되어주고 ‘마틸다’를 좋아하지만 ‘마틸다’의 불행을 눈치 채지 못해 불행한 ‘마틸다’에게 도움을 주지는 못 한다.
‘제니’ 선생님은 ‘마틸다’와 겹치는 인물로 ‘마틸다’의 불행을 눈치채고, ‘마틸다’를 구원하려고 애를 쓰는 학교 선생님이다.

“ 넌 선생이잖아! 잊지 마. 모른 척하면 안 돼! 도움이 필요할 거야, 강인하게 싸워 줄 사람…….”


 제니 선생님의 이 독백이 내 가슴에 꼭 박히었다.

 교사로서 난 용기 낸 적이 있는가?
 아이들을 위해서 강인하게 싸워 도움을 준 적이 있는가?
인상적인 무대

 책을 좋아하는 ‘마틸다’의 이미지답게 온통 무대는 알파벳과 책으로 채워져 있다. 블록 하나하나에 불이 들어오며 알파벳으로 단어의 의미를 되새기는 장면인 ‘블록 스쿨 송’, 관객 모두의 탄성을 자아낸 ‘어른이 되면’의 그네 장면, ( 관객석으로 날아오르는 장면은 보고 또 보고도 또 보고 싶어진다.) 투포환 던지듯 학생을 던져버리는 교장에게 아이들이 저마다 책상 위에 올라가 외쳐대는 Revolting Children 장면, 무대와 객석을 가리지 않고 쏘아내던 레이저 빛과 자연스럽게 무대를 오고 가는 움직이는 책상까지 어느 것 하나 사소한 장치가 없었다.

명장면 그네 씬 - 객석으로 날아들어 오를 때 숨이 멎는 듯!
의자가 어떻게 움직일 수 있나 유심히 보았다.
뮤지컬 배우들

‘마틸다’를 연기한 어린 배우는 천재였다. 목소리며 노래 실력이며 감탄이 저절로 나왔다. 나머지 어린 배우들도 도저히 타고난 끼와 재능이 없다면 불가능한 연기를 참 잘도 해냈다. ‘마틸다’의 엄마 역할 배우의 갈라진 거친 음성이 초반에는 거슬렸지만 역시 유명 배우답게 마지막을 잘 마무리했다. ‘마틸다’의 아버지 역할 배우 역시 인터미션 타임에 공지사항을 알릴 때의 사람과 정말 같은 사람일까?라는 의문이 들 정도로 능청스럽게 속물적이면서 아무 개념 없는 캐릭터를 잘 소화해냈다. 친절한 목소리의 제니 선생님은 얌전한 태도와 고운 목소리가 정말 제니 선생님이었고, 혹 유명 배우 홍○○일 수도.... 있겠다 라며 본 사서 선생님 펠프스 역할 배우는 캐릭터에 맞게 푸근하게 ‘마틸다’를 안아주었다. 가장 인상 깊은 배역은 역시 교장 선생님 ‘미스 트런치불’이었다. 폭압적으로 아이들을 학대하는 독단적이고 독선적인 부정적 인물이나 연기력은 빛을 발하여 정말 매력적인 배우로 거듭났다. 풍자와 유머가 어울려진 뮤지컬 ‘마틸다’라면 그 중심에 ‘미스 트런치불’이 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그래서 커튼콜 때 ‘마틸다’와 함께 가장 많은 박수를 받지 않았나 싶다.

교장 '트런지불' 이름 앞에 분명 '미스'라고 칭했다. 그러면....여성?
공연이 끝나고 난 후

 공연이 끝나고 다시 또 긴 여정을 밟아 밤 12시가 훨씬 넘은 시각에 집에 도착하였다. (우리나라의 편리한 지하철 운행에 새삼스레 감탄하며, 이 시각 집에 돌아갈 어린 배우들의 건강을 걱정하며) 지치고 힘들었지만 마음만은 풍성해졌다. 아이들은 오는 내내 영국 공연을 찾아보기도 하고 오늘의 어린 ‘마틸다’ 캐스팅은 누구였는지 찾아보고  공연 사진을 공유하는 등 ‘마틸다’에 빠져들어 있었다.

https://m.youtube.com/watch?v=e0tRDhEmdO4#


마틸다야! 널 응원해.
 어린이가 없는 곳에 천국은 없다.- A.C 스윈번
 어린이는 하늘을 나는 새이다. 마음에 들면 날아오고, 마음에 안 들면 날아가 버린다. -뚜르게 네프
 어린이는 신이 이 땅에 대하여 절망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이 땅에 보낸 사신이다. - R 타고르
제니 선생님은 분명 널 따스하게 안아주며 서로 치유할 거야.

 마틸다! 조금씩 조금씩 앞으로 계속 행복해지렴. 제니 선생님과 함께 하는 삶은 너를 더욱 빛나게 할 거야. 더 이상 엄마 아빠에게 사랑받는 어린이인 척하지 않아도 된단다. 모두 너를 사랑하고 아끼는 곳에서 마음껏 웃으렴. 넌 사랑받을 권리 가득한 어린이니까... 좋아하는 책 많이 읽고, 더 이상 '옳지 않아!'를 외칠 필요 없는 옳은 곳에서 친구들과 행복해지기 바란다. 어른들이 많이 반성할게. 태어나줘서 고맙다! 사랑스러운 마틸다!

당당한 마틸다의 상징적 포즈! 라스트 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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