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날 아침 숙소 한화콘도에서 꽤 괜찮은 아침 조식을 먹고 승일교로 출발했다. 승일교 위에서 사진도 찍고 다리 이쪽저쪽 끝으로 왔다 갔다 하며 감탄도 하였으나 사실 대장님의 설명을 놓치는 바람에 부끄럽지만 무슨 다리인지도 모르고 다녀왔다. 이 글을 쓰며 찾아보니 6ㆍ25 전쟁 때 큰 공을 세운 박승일 연대장을 기리기 위해 지어진 다리라고 한다. 북한과 한국의 합작품으로 전쟁 전 후 철원의 어지러움이 느껴졌다. 그래서 이승만과 김일성의 이름 한자씩을 따서 다리 이름을 지었다는 설도 전해지는 듯하다. 북한이 먼저 건설을 시작해서 러시아식 아치형이 반쪽을 이루고, 전쟁 후 철원이 남한 땅이 되자 남한이 완성한 다리이다.
쭉 뻗은 승일교
승일교 아치형 교각-다음 이미지
차가 다닐 수 있는 한탄대교와 나란히! 또한 아름다운 강변.
고석정
1억 년 지질시대를 만날 수 있는 고석정은 아름다움과 고고함을 지닌 채 우리를 맞아주었다. 화강함과 현무암이 공존하며 주변에 주상절리도 볼 수 있는 절경이다. 대장님의 숙제 벽초 홍명희의 ‘임꺽정’을 읽으라시는 주문을 꼭 실행해 보리라 다짐하며고석정에서 임꺽정을 떠올려 본다.역시 아름다운 철원의 절경이다.
고석정에서 상주하는 전문 해설사님의 설명을 들을 수 있다.
정말 고고하면서 외로워 보이는 고석정(화강암)
고석정으로 내려가는 계단에서도 화강암과 현무암의 뚜렷한 차이를 확인할 수 있다. /현무암에 새겨진 두루미 암컷 모습 -수컷은 화강암에 새겼다한다.
직탕폭포
철원의 직탕 폭포를 한국의 나이아가라 폭포라 이른다는 말을 들었을 때 사실 별 믿음이 안 갔었는데, 직접 가보니 왜 그런 별칭이 생겼는지 이해가 되었다. 처음 보는 세로 아닌 가로로 시원하게 긴 폭포였다. 물소리 또한 대차고 맑아 멀리서 미리 터진 감탄사는 폭포 가까이 갈수록 더 커져만 갔다.
시원한 직탕폭포의 물소리가 드리는 듯 하다.
나란히 보면 더 나이아가라 폭포스럽다. 아쉽게도 사진으로만 배운 나이아가라지만...
아기자기 귀여운 돌다리와 예스러움이 느껴지는 소박한 기둥의 또 다른 다리는 직탕폭포에 아름다움을 더하고, 이 물살이 얼음이 되는 겨울에는 이 물길 따라 한탄강 트래킹 코스가 펼쳐진다니 꼭 체험해 보고 싶어졌다.
귀여운 앉은뱅이 다리 밑을 지나
소박한 기둥의 다리를 지나면 폭포가 된다.
폭포가 되어 흘러내리기 전 강물은 참으로 고요하고 얌전하다.
도피안사
화개산 도피안사
‘도피안사’는 대웅전에 ‘철조 비로자나불 좌상’(국보 제63호)이, 대웅전 앞에 ‘삼층석탑’(보물 제223호)이 있는 절이다. 피안으로 가는 길은 어떤 길일까? 한 달 뒤쯤이면 만개할 연꽃들을 품은 연잎들이 뜨거운 햇빛 아래 빛나고 있었다. 단청이 없는 서까래와 처마 밑이 가볍게 느껴져 시원하였고, ‘대적광전’ 처마와 오랜 수령의 나무들이 이루는 하늘 모습은 청정하였다. 6ㆍ25 전쟁 때 불타버린 ‘도피안사’의 ‘대적광전’ 안에 묻혀있던 ‘철조 비로자나불 좌상’이 극적으로 세상에 나오게 된 이야기도 매우 신비롭기만 하다. ‘이명재’ 장군의 꿈에 나타나 철불의 존재를 알렸다 하니 참으로 신기하기만 한 일이다. 예전에는 지금과 달리 민간인 통제 구역 안에 있다 해서 출입이 자유롭지 못했다 한다.
도피안사 철조 비로자나불 좌상 - 다음 이미지
철원 노농 당사
국어 교과서에 통일을 염원하는 시가 나올 때마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발해를 꿈꾸며’ 가사도 늘 함께 실려서 아이들에게 노래 뮤직 비디오를 보여 주곤 했었는데, ‘서태지와 아이들이’ 노래하던 그곳이 이곳 철원 ‘노동당사’인 줄은 정말 몰랐다.
6ㆍ25 전쟁으로 철원 전체가 쑥대밭이 되었을 정도로 모든 것이 다 무너졌다는데, 이곳 ‘노동당사’만이 이렇게 멀쩡히 서 있다니....... 얼마나 공들여 지어진 건물인지 짐작이 되었다. 해방 후 5년 동안 북한 노동당은 이곳에서 양민 수탈은 물론 애국인사 체포 등으로 고문, 학살의 악명을 높였다 하니 이곳이 얼마나 무서운 곳이었는지 짐작이 된다.
건물 온 벽면이 성한 곳 없이 총탄의 흔적으로 처참해진 모습을 보니 전쟁의 비극과 아픔이 소름 끼치게 느껴지며 이곳이 얼마나 치열한 전투지였는지 실감되었다. 우리의 간절한 바람으로 그날의 상처가 조금이라도 어서 빨리 아물었으면 좋겠다.
파주 보광사
보광사의 하늘도 역시 아름답다.
점심을 먹고 도착한 파주 ‘보광사’는 영조의 어머니 숙빈 최 씨의 영정과 신위가 모셔져 있는 절이라 한다. 대웅전 마당이 오색연등으로 덮여 있어 지난 초파일 행사를 알려주고 있었다. 전각의 벽체는 보통 흙이나 회를 바르는 것이 보통인데, 이곳은 모두 판자를 끼워 그 위에 그림을 그려 놓았다.
목어가 걸려있는 ‘만세루' 툇마루에 앉아 대장님의 설명을 함께 들어야 하는데, 나는 대웅전에 먼저 들어가 불공을 드리느라 아쉽게도 놓쳐버렸다. 대장님을 따라 대웅전 안으로 들어가 우리나라 종에 대한 설명을 한참 자세히 들었다. 전혀 모르는 분야에 대한 설명이라 어려웠지만 종에 대한 관심과 궁금증이 생겼다. 관심이 생기면 곧 이해하려 하고, 이해하려면 공부를 해야 할 것이니 그것만으로도 대단한 발전이라 여긴다. 대웅전을 한 바퀴 뒤로 돌아가며 판자벽에 그려진 그림들을 감상하고 ‘만세루' 뒤쪽으로 가 왕실이 기거했을 공간들을 살펴보았다.
만세루 툇마루에 앉아 경청
대웅전 안의 종
판자벽으로 된 대웅전
만세루 뒤쪽 왕실 거주지
용미리 마애이불입상
용미리 ‘장지산’에 위치한 ‘용암사’를 찾아간 것은 파주 용미리 ‘마애이불입상’을 보기 위해서이다. 거대한 천연 암반에 2구의 불상을 우람하게 새겼는데, 불상에 전해 내려오는 전설 또한 그럴듯하다. 꿈에 나타난 이야기대로 이곳에 불상을 새기고, 절을 지어 불공을 드려서 그렇게 소원하던 왕자를 얻었다 하니 탄생설화가 진짜인 듯 다시 불상을 올려다본다. 자연석을 그대로 이용한 것이 이전 안동답사 때 본 ‘제비원’ 불상을 떠올리게 하였다.
장지산 용암사를 지나 마애이불입상 뵈러 오르는 길
왼쪽 둥근 갓을 쓴 원립불은 손에 연꽃을 들고 있고, 오른쪽 모난 갓을 쓴 방립불은 합장을 하고 있다.
불상 앞에서 올려다보기만 하던 우리는 대장님이 이끄는 대로 뒤편으로 올라가 불상 머리께 서서 불상이 바라보는 곳을 함께 응시해 보기도 하였다.
눈길 머무는 곳은 저기 어디일까?
구전에 의하면 둥근 갓은 男상을, 모난 갓은 女상을 나타낸다고 한다.
답사 1박 2일 동안 양주, 철원, 파주 일대를 다녔다. 충청도, 전라도보다 인천에서 훨씬 가까운 곳인데도 처음 가보는 유적지나 처음 들어보는 답사지가 오히려 더 많았다. 두물머리의 아침과 용미리 불상은 하루 종일이라도 바라보고 싶을 정도로 편하고 아늑하고 소박해서 좋았다. 수종사, 회암사, 보광사, 도피안사, 용암사 등을 돌며 정성껏 축원을 올리기도 했다. 열심히 살게 해 달라고, 지금처럼 건강하게 무탈하게 지내게 해 달라고 불공을 드리며 임용시험을 준비하는 큰애를, 타지에서 고생하는 남편과 둘째를, 사춘기로 방황하는 막내를 그리고 나날이 노쇠하기만 해지는 시부모님들을 떠올렸다.
아름다운 하늘과 환한 빛으로 맞이한 6월의 답사를 마음속에 잘 포개어 놓으며 다음 가을 답사를 기다려 본다. 안전하게 답사를 마치고 무탈하게 일상으로 복귀함을 다시 또 감사드리며 철원, 양주, 파주를 다시 둘러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