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1.03 (토) - 첫째 날
오대산 월정사(팔각구층석탑, 석조보살좌상, 월정사 부도) ➜
➜상원사 (관대걸이, 동종, 목조 문수동자 좌상)
➜선교장 (활래정, 열화당, 안채, 행랑채)
➜객사문(강릉 임영관 삼문 )
➜신복사지 (삼층 석탑, 석조보살좌상)
➜굴산사지(당간지주, 승탑)
➜진전사지(삼층석탑, 부도)
2018. 이번 가을 답사는 남편과 함께
오대산 월정사
평창 오대산 월정사 8각 9층 석탑
오대산은 침엽수림이 가득한 곳으로 문수보살의 성산이라 불린다.
월정사는 신라 선덕여왕 때 자장율사가 창건했다. 중국 유학 중 자장율사가 산서성 오대산 태화지에서 부처님의 사리와 가사를 받으며 문수보살을 친견했는데 그 후 신라에 와서 오대산을 찾았다 한다.
오대산 월정사 8각 9층 석탑은 다각다층 석탑으로 고려 초기 10세기경 작품이다. (국보 제48호)
머리장식은 아랫부분은 동으로, 윗부분은 금동으로 고려시대 금속공예 수법을 알 수 있다. 아래층 기단에는 안상이, 탑신에는 감실이, 각 층 귀마다 청동으로 된 풍경이 달려 있었다.
월정사 석조보살좌상
월정사 부도군
오대산 상원사
신라 성덕왕이 창건했다는 상원사는 세조가 이곳에 행차했다가 문수보살을 배알한 후 고양이 덕분에 자객으로부터 목숨을 건졌다는 일화가 전해지고 있다.
상원사 관대걸이
문수보살을 만나 세조의 피부병이 깨끗이 나았다는 이야기가 신비롭고, 세조가 동자에게 “ 임금의 옥체를 씻었다고 말하지 말라.”는 당부에 동자 역시 “ 문수 동자를 만났다고 말하지 말라.”했다는 이야기가 재치로 가득하다.
상원사 동종
이곳으로 오는 버스 안에서 답사 대장님이 들려준 ‘상원사 동종’의 소리를 현장에서 다시 간절히 듣고 싶어진 이유는 무엇일까?
평창 상원사 목조 문수동자 좌상
강릉 선교장
선교장(중요 민속자료 제5호)은 강원도 지역에 남아 있는 가장 품위 있는 사대부 가옥으로 배다리 마을(강릉시에서 경포 쪽으로)이라 불리는 곳에 있기에 선교장(집터가 뱃머리를 연상)이라 이름 지었다 한다. 조선 영조 때 효령대군의 후손인 이내번이 지은 집으로 그 후손이 현재에도 살고 있다. 총 건평 300여 평으로 긴 행랑에 둘러싸인 안채, 사랑채, 동별당, 가묘 등이 있고 문 밖에 연못과 활래정이라는 정자까지 갖춘 최고 상류층 가옥이다. 선교장의 사랑채는 열화당이라 이름 지어졌는데, 용비어천가, 고려사 등 수천 권의 책과 글, 그림 등이 소장되어 있다 한다.
강릉 객사문(국보 51호)
원기둥의 배흘림은 우리나라의 현존하는 목조건축물 중 가장 뚜렷한 것으로 기둥 중앙부가 가장 굵고 올라갈수록 기둥 상부가 가장 가늘어 약 4치 이상의 차이를 보인다고 한다.
신복사지 삼층 석탑
신복사는 통일신라 때 범일국사(梵日國師)가 창건한 절이다. 신라의 한 처녀가 우물에 비친 햇빛을 보고 그 물을 마신 후 임신하여 아이를 낳았는데, 집안사람들이 아이를 내다 버렸으나, 아이의 주위로 빛이 맴돌아 이상하게 여겨 다시 데려와 길렀다. 그 아이 이름을 범(梵)이라 하였는데 범이 출가하여 승려가 된 후 고향에 돌아와 창건한 절이 신복사와 굴산사(掘山寺)라고 한다.
강릉 신복사지 석조보살좌상
굴산사지 당간지주
진전사지 삼층석탑
둔전리 마을 서북 편에 솟은 관산 남쪽 기슭에 자리 잡은 진전사지 터에 서있다. 신라식 일반형으로 2층 기단을 갖추고 상륜부는 노반석까지만 남아 있고 그 이상은 없어졌다. 노반석은 탑의 최상부 옥개석 위에 놓아 복발/앙화/상륜 등을 받치는 장식이라고 한다.(국보 제122호)
진전사지 도의선사(부도) 탑
진전 사는 통일신라시대 때 창건된 사찰로 도의선사가 오랫동안(40년) 은거하던 곳이다. 도의선사는 당나라에서 선종을 공부하고 교종 불교가 절대적이던 신라에 선종을 소개한 스님으로, 신라불교가 교종에서 선종으로 교체되는 시기가 이 진전사 터에서 싹텄다고 한다.
하루 답사를 마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