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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시락 한방현숙 Jun 08. 2021

덕수궁, 정동길, 돌담 그리고 미술관!

뜻밖의 관람 '호민과 재환' - 서울시립미술관

뜻밖의 기쁨

 뜻밖의 발길이 가져온 기쁨은 크다. 더욱이 깊은 의미까지 동반했다면 금상첨화가 따로 없을 텐데, 일요일의 서울 나들이가 그러했다. 코로나로 인한 어려운 시기임에도 다녀올 수밖에 없는 중요한 결혼식이 있었고, 그 결혼식장 위치가 서울 시청 부근이었고, 예식이 끝난 후 아쉬운 마음에 헤어지지 못한 우리 일행이 향한 곳이 근처 덕수궁이었는데 그곳에 서울시립미술관이 있었던 것이다.

 한낮의 따스한 여유로움이 좋았기 때문일까? 집으로 향하는 지하철역 대신 덕수궁 돌담길을 거슬러 올랐다. 일행과 헤어진 뒤에도 우리는 마냥 그곳에 머무르고 싶었나 보다. 차 없는 거리가 좋았고, 담벼락이 좋았고, 버스킹하는 젊은이와 그들을 응원하는 사람들의 기운이 좋았다. 그렇게 모처럼의 햇살을 즐기다 발견한 것이 ‘호민과 재환’의 전시회를 알리는 펄럭임이었다.
40년생 아버지와 81년생 아들!

 이곳에 미술관이 있었던가? 교육과정 평가원을 가기 위해 이 길을 걸었던 것이 언제였지? 녹음이 우거진 아름다운 길을 찾아 들어서니 서울시립미술관이 떡 하니 나타났다. 오~~ 횡재한 기분이었다. 4시에는 예약 없이 관람(보통은 서울시 공공서비스 <yeyak.seoul.go.kr>를 통해 예약해야 함)이 가능하다니, 뙤약볕 아래였지만 감사한 마음으로 대기 줄에 합류했다.  

잠깐이었지만 엄청 뜨거웠다.
호민과 재환, 천경자 팜플릿
호민과 재환
♡  ‘호민과 재환’은 주호민 작가와 그 아버지 주재환 화가를 이른다.
♡ 영화 ‘신과 함께’를 통해 알게 된 주호민 작가는 나에게 낯선 이다. (그의 유명한 웹툰이나 활발하다는 방송도 잘 접하지 못했기 때문에)
♡ 부자가 나란히 함께 전시회를 열다니, 아버지의 소감이 어떨까?(얼마나 대견하고 뿌듯할까!)
♡ 주호민이 유명해 들어갔으나, 나올 때는 주재환 화가에 빠진 느낌이다.
♡ 시대를 반영하고, 현실을 잊지 않는 주재환 화가의 모습이 감동적이다.
♡ 기발하고 번뜩이는 재치 앞에서 모든 것이 의미 있었다.(웃기지 않았다.)
♡ 겉멋, 겉치레가 아니라 작가의 진심이 느껴졌기에 장난이라는 단어는 떠오르지 않았다.
♡ 검은 비닐, 단무지, 달걀 껍데기, 문구용 핑크 집게, 페트병, 돌멩이, 양은냄비 등이 기억에 남는다.
♡ 부전자전이라는 아름다운 말, 예술과 창의성이 부자지간에 흐른다.    
호민과 재환, 부모님의 피(미술가 집안)를 이어받은 아들! 부럽다.
아버지는 아들을, 아들은 아버지를 그렸다한다.
단무지 - 단순, 무식, 지랄!
누가 무엇을 훔치고, 누가 도둑이고, 누가 죄인이란 말인가!
'계단에서 뭐하는 거지?' - 아들 주호민 작품, 아버지의 작품 '계단을 내려오는 봄비'를 재구성한 작품이라 한다.
웃음소리 하하하-색감이 너무 예쁘다. 며칠 간 나의 프사가 되었다.
너무 귀찮아서 이, 목! 구, 비, 머리를 집게로 닫았나? 자신감이 대단하다. 글씨가 참 예쁘다.
나도 당장 포스트잇으로 따라 하고 싶다.
오! 세상에~~검은 비닐로 표현하다니! 비닐보이! 작품을 완성할 때 사용한 비닐은 몇 장이었을까? 설마 단번에 한장으로 완성했을까?
우리 집에 모두 있는 것들이다. 아버지와 아들이 약국이나 슈퍼를 다니며 직접 수거했다고 한다. 메시지가 좋다.
탈권위적이고, 자유분방한, 그러면서 비판, 풍자적인 주재환 작가님! 포장 안에 어떤 작품이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
집으로 돌아오는 전철 안에서 쇼핑백을 볼 때마다, 이 작품이 떠올랐다.
돌밥! 예전 배고픈 우리 엄마도 허기진 나를 위해 돌밥을 지었으리라. 빈부차이, 8,000 여 개의 다이아몬드로 제작했다는 데미안 허스트의 작품<신의 사랑을 위해>이 인쇄된 엽서!
작품 안을 벗어나, 작품 밖에서 미술세상을, 작품세상을 보고 있는 주재환 화가님!
고개를 비스듬히, 한참을 감상했다.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작품을 연상해야 제대로 감상한 것일까?

아래는 주호민 작가의 작품 전시들이다. '신과 함께'에서 나온 작품들과 다른 웹툰 관련 작품들이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전시회 이름의 앞 자리를 내어 주었다. 호민과 재환!
천경자 컬렉션

 천경자 컬렉션은 사진 촬영이 금지된 전시회라 갤러리에 담을 수 없었다. 이름만 들어도 단번에 그림을 떠올릴 수 있을 정도로 유명한 화가의 그림은 말그대로 대단했다. 예전에 살아 빛을 발했을 화구와 물감들이 인생이란~~~ 뭔가 말을 건네는 듯했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허스토리 리뷰’

‘허스토리 리뷰’ 전시도 매우 인상적이었다.

1980년대를 배경으로 한 여성 미술 전시회인데, 불평등한 사회 속에서 어떤 모습을 살아냈는지 이미 다 알고 있다 생각했는데도 마음이 아팠다. 감각적이고 센스 있게 부당한 현실의 모습을 반영한 화가들의 의식이 존경스럽다. 앞선 이들의 고군분투가 있었기에 오늘날 세상이 조금이라도 좋아진 것일 텐데,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언제쯤 우리는 진정 남자든, 여자든, 부자든, 아니든, 젊든, 늙든, 어리든 차별받지 않고 차별하지 않고 생긴 대로 자유롭고 기쁘게 살 수 있을까? 영원한 우리의 희망일 뿐일까 오늘도 폭력과 차별과 싸움이 가득한 세상 속에서 한숨만 나올 뿐이다.
할머니, 외갓집이 떠오르는 그곳!
하이힐과 핸드백을 들고 바다 한가운데서 둥둥 떠있는...나는 세월호를 떠올렸다.
마른 나뭇가지, 확성기, 줄지어선 나무들 사이마다!
윤석남의 작품 '손이 열개라도', 이렇게 살아왔고 지금도 살고 있으니! 대단하다 여성이여~~30년 세월 동안 많이 줄어들기는 했다.
아프고 화나고 분하다.
아주 오랜만의 데이트

 기분 좋은 발걸음으로 미술관을 나왔다.

 정동길 거리는 노래 속 가사에서처럼 여전히 설레고, 덕수궁 돌담은 그대로 아름다웠다.

 예상하지 못한 모처럼의 데이트로 나와 남편의 마음은 아주 많이 말랑해졌나 보다. 평소에는 하지 않은 행동(유명 와플집에서 줄 서서 기다리기 등)까지 하며 그 길을 벗어나지 못하니, 한참 후에 얻은 와플을 덕수궁 돌담을 배경으로 길거리에서 먹으며 시시덕거렸다. 아마 그때, 그 사람들 중 우리보다 나이 많은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TV 프로그램 '생활의 달인'에 나왔다는 수식어에 걸맞게 와플은 맛있었다. 테이크아웃점이라 먹을 곳도 없는 그곳에서 그렇게 기다린 것은 그날은 좀 따라 하고 싶었나 보다.

그 거리의 청춘들을,
덕수궁 주변의 특(턱)별시민들을...ㅎㅎ

 이미 청춘이 부러워졌기에, 늙어감에 당황하고 있었기에 그날이 그렇게 더디게 가길 바랐나 보다. 서로 낄낄거리며, 와플의 시럽을 줄줄 흘리며, 다른 이들의 시선을 살피며 그날 그렇게 거기에 있었다. 잠시 철없어지고 싶어서, 잠시라도 집 밖의 공기를 쐬고 싶어서... 좋은 날이었다.

 덕수궁, 돌담, 정동길 그리고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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