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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시락 한방현숙 Jul 11. 2022

복작복작 다녀온 6월의 강릉, 정동진 여행!

이제부터는 따라다니는 여행, 시작!

 알면서도 덤빌 때가 있다. 결과가 뻔히 보이는데도 오기를 부릴 때가 있다. 모든 것이 맞아떨어지는데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그러다 역시나 실망한 적이 얼마나 많았던가!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마음을 다독여본다. 괜찮았다고, 참을만했다고... 이번 연휴의 여행도 그러했다.

 코로나19 전 강릉 여행 때, 호텔을 이고 있는 미술관을 관람한 후 다음에는 꼭 이곳에서 묵어보리라 약속 아닌 다짐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 아쉬움이 쉬이 가시지 않아 틈만 나면 엿보고 있었다. 그러나 코로나 시절, 몇 번의 예약을 취소하면서 여행은 아예 물 건너 가버려 세상 누구나처럼 답답한 시간을 보내왔다.

 그러다 이번 6월의 연휴를 맞이한 것이다. 진즉에 이 호텔을 숙소로 예약하고 강릉여행을 계획했다. 다섯 명, 온 가족이 떠나는 모처럼의 여행이었다. 아이들은 우리가 묵을 숙소의 후기를 검색한 후 걱정 어린 메시지를 공유했으나 나는 말로만 걱정할 뿐 취소하지 않았다. 내가 직접 가 보면 뭔가 다를 것이라는 생각이라도 했던 것인가! 아니 도대체 왜?

흐린 하늘과 바다가 아쉬웠다.
♡ 예술품은 예술품이었다. 생활의 편리성을 함께한 예술품은 글쎄... 여간해서 만나기 어려울 것 같다.
♡ 예술과 생활은 끝과 끝에 있어야 오히려 조화로운 듯하다.
♡ 호텔과 어울리지 않는 냉장고 뒤에서 흘러내린 오물 흔적이 아직도 기억에 선명하다.
♡ 1인당 추가비를 3만 원씩이나 더 받으면서 가져온 이부자리 수준은 꼭 몇 천 원 수준 같았다.
♡ 조명도 예술품이라지만 너무 어두웠다.
♡ 새벽에 프런트에 연락하여 난방을 요구할 정도로 따끈한 온돌이 그리웠다.
♡ 예술품인 침대 역시 드나들기 쉽지 않았다.
♡ 인파에 지친 카페 직원은 얼굴이 찡그려진 채 펴질 줄 몰랐다.(매우 친절한 고마운 직원분도 있었다.)
♡ SNS에서 유명해진 그 장소는 2시간이나 기다려야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엄청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2시간 넘게 줄을 서서 신나게 찰칵!
모서리, 저 꼭대기!
수조도 침대도 전등도 모두 예술작품!
아이들이 들어서자마자 환호를 질렀던 그곳
시원한 파도소리 들리고...

 그러나 가보고 싶은 곳을 와 봤다는 성취감과 시원하게 펼쳐진 동해바다의 물결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환상적이었다. (여행 내내 날이 흐려 뜨거운 햇빛은 피할 수 있었으나 푸른 하늘과 바다는 결국 보지 못했다.) 밤이 깊을수록 선명하게 들리는 파도소리는 그간의 피로를 풀어내기에 충분했다. 맛있는 먹거리와 가족, 그리고 유리창 너머 바다... 아주 많이 행복했다. 감사했다. 즐거웠다.


 그리고 또 하나, 우리를 당황하게 한 것은 인천에서 강릉까지의 이동 시간이었다. 10시간이면 북유럽까지 날아갈 시간인데 우리는 새벽 6시 30분에 출발해서 오후 2시가 넘어서야 겨우 강릉에 들어설 수 있었다. 연휴라고 하지만 막혀도 너무 심한 혼잡에 이유 모를 고개만 젓다가 '단오제'라는 말을 듣고 탄식이 나왔다. 말로만 듣던 '단오제',  전국 최고의 축제라는 '단오제'가 전국의 인파를 강릉으로 끌어들이고 있는 와중, 우리는 하필 그 무리에 올라타게 된 것이다.

 10시간 가까이, 성인 5명이 자동차라는 한 공간에서 꼬물거리는 맛이라니... 체구가 가장 작은 이유로 뒷자리 가운데 앉은 첫째의 허리는 끊어지기 직전이고, 운전하는 남편의 허벅지 또한 서다 가다를 반복하느라 이미 경직된 지 한참 지났고, 선잠에 자다 깨다를 반복하다 눈을 떠도 아직도 아까 그 도로 위인 듯 온몸이 뻐근하고 답답하기 그지없었다.
휴게소 라면은 언제나 맛있다.

 그나마 휴게소마다 취한 소소한 주전부리가 우리를 달래주고, 이제는 다 컸다고 이 상황을 유머로 승화시킬 줄 아는 딸들의 수다가 짜증과 답답함을 내몰아 웃을 수 있었다. 찐득한 오징어 다리 하나와 커피 한 잔으로도 우리 마음을 씻어낼 수 있었으니 아마 여행길, 여유로운 마음이라 가능했을 것이다.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가족 여행을 자주 갔었다. 바글바글 다섯 명이 잘도 돌아다녔다. 이제는 세 자매 모두 성인이 되었고, 큰딸은 내년에 서른이 된다.

 이번 여행도 코로나가 주춤하는 사이 후다닥 다녀온 가족여행쯤이라고 생각하겠지만 나에게는 다른 의미의 여행이었다. 내가 주도하고 예약하고 계획하는, 아마 마지막 여행이지 않을까? 다 큰 딸들의 스케줄을 조정하고, 장소를 물색하고, 경비를 온전히 부담하는 여행에 딸들을 초대하는 상황이 이제는 거꾸로 바뀌지 않을까 싶다. 세대 간의 교체가 우리 집 안에서도 서서히 시작되고 있으니...

 

 그래서 이번 여행에서는 조금 다른 모습을 보였다. 여행지에서도 늘 알뜰 소비를 미덕으로 삼아온 나지만 평소보다 매우 비싼 숙박 장소를 예약했고 식당에서도 여유로운 마음으로 음식을 주문했다. 정동진 바닷가 횟집에서는 광어, 우럭이 아닌 돔을 주문하며 대게를, 유명 맛집 생선구이 밥집에서는 돌문어 숙회를 추가하며 푸짐하게 먹었다. 나름의 원대한 의식을 치르는 것처럼 딸들과 나의 자리 바꿈을 서서히 기념하듯이... 큰 식당 한번 다녀오면 몇 십만 원, 카페 한번 들렀다 나오면 몇만 원, 소소한 한 끼 식사도 십만 원이 훌쩍 넘었으나 마지막 잔치를 치르듯 호기롭게 지갑을 열었다.

강릉 인생 네컷!
남편의 꿈이 한때 기관사였다는 것을 이번에 처음 알았다.
접질리고 긁히고...고생한 나의 발에게 휴식을!
 이제는 남편과의 단출한 여행을, 친구와의 가뿐한 나들이를, 혹은 딸들이 주도하는 여행에 손님인 듯 슬며시 함께하는 여행을 자주 하려 한다. 자연스럽게, 초라하지 않게, 보람 있게 나의 자리를 바꾸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인생이 깊어질수록 누구나 단순하고 가벼운 삶을 지향할 것이다. 저마다 왕성한 시절을 보내고 있는 딸들을 보며 지난날 나를 떠올린다. 친구들과 즐거운 여행과 만남과 공연을 즐기는 모습에서 나도 따라 삶의 활력을 느낀다. 그런 나를 보며 엄마를 떠올려 본다. 그때의 엄마의 모습이, 마음이 이러했음을 이제야 끄덕이며 그날 전하지 못한 미안함과 죄송함에 입술을 다물어 본다.


 인천으로 오는 길, '단오제'가 열리고 있는 강릉 시내 남대천 주변을 방문했다. 말로만 듣던 유명 축제를 눈으로 확인하니 정말 대단했다. 씨름대회, 그네 타기 대회는 물론이고 전통 단오굿, 서커스 공연과 각종 먹거리 시장, 플리마켓 등으로 인산인해를 이루는 대단한 행사였다. 김홍도의 풍속화가 잘 어울리는 전통적인 단오축제라 더 의미가 깊어 보였다. 남대천을 따라 휘날리는 휘장들과 늘어선 마켓들이 우리들의 시선을 끌어 한참을 머물렀다. 게다가 어른만의 축제가 아닌, 강릉 청소년과 어린 초등생들이 참여하는 코너가 함께 마련되어 있어서 더 인상적이었다.

주변의 강릉중앙시장도 사람들이 들끓기는 마찬가지였다. 속초의 닭강정만큼이나 유명한 가게 앞은 몇 미터의 대기줄이 이어져 있었고, 유명 연예인이 먹고 갔다는 각종 먹거리 가게들은 비집고 들어갈 수 없을 정도로 흥성거렸다. 몇 가지 안주와 마실거리를 사서 야외 테이블에 앉으니 넘어가는 석양과 한눈에 펼쳐진 남대천의 모습과 어우러진 우리의 모습이 더 그럴듯하게 카메라에 담겼다. 강릉에 온전히 스며든 느낌이 참 좋았다.

 복작복작 다녀온 6월의 강릉여행! 또 하나의 가족사진으로 남아 흐뭇한 미소를 자주 짓는다.

 앞장서 다니던 나의 가족 여행, 이제는 다른 모습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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