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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시락 한방현숙 Aug 24. 2022

오랫동안 같이 하고픈 정태춘, 박은옥 콘서트!

섬세하고 여린 마음으로 시를 쓰고 부조리한 세상에 맞서 버틴 사람!

 사실 잘 몰랐다. 대학 2학년 동아리 축제 때 정태춘, 박은옥의 노래를 불러놓고도 그들과 멀리 있었다. 윙윙윙윙~ 고추잠자리를 되뇌면서도 박은옥과 연결하지 못했다. 수십 년이 흐르고 그들의 천재성을 남편의 LP 음반을 통해 간간이 확인할 뿐, 그런데 지금 일주일 내내 그들의 노래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난 토요일, 그들의 공연을 본 이후에 '시대, 아픔, 시인, 노래, 자연'에 이어 '투사'라는 단어까지 떠올리며 곱씹는 중이다.

 엄청난 재능을 가진 예술가이며, 대단한 실천가인 정태춘과 박은옥!
공연일 하늘은 맑고 푸르렀다.
1부 공연 후 쉬는 시간(공연 내내 오른쪽에 보이는 틈 때문에 공연에 집중할 수 없었다. 지나가는 스텝까지 보이고, 옥에 티, ㅜㅜ)
♡ 8/21(토), 인천문화예술회관에서 정태춘 박은옥의 공연이 있었다.
♡ 공연 관람자 대부분이 나보다 연배(50대 이상이 주류)가 높아 보였다.
♡ 포토존 대기줄도 길지 않았고 요란스럽게 사진 찍는 이도 드물었다.
♡ 무대와 가까운 E열에서 관람하였다. 노래의 울림이 가방까지 떨리게 할 정도로 강렬했다.
♡ 무대에는 음악밴드와 가수만 있을 뿐, 어떤 화려함도 기교도 없었다.
♡ 무대 조명보다 빛나는 노래의 울림으로 가슴이 말랑해지다 먹먹했다.
♡ 익히 들어 친숙한 멜로디의 노래들이 시대의 아픔과 그때의 청춘을 데려다 놓았다.
♡ 무심한 듯, 툭툭 던지는 부부의 애정 표현이 귀엽고 푸근했다.
♡ 나이는 들었어도 목소리는 그대로인 그들은 정말 히어로였다.
♡ 노래한 지 40년이라는데 그들의 목소리와 신념과 믿음은 늙지 않은 채, 청춘 그대로라니!
♡ 5.18 광주를 노래할 때는 묵직한 것이 가슴에 내려앉았다.
♡ 마무리 앙코르는 '사랑하는 이에게'를 부르며 우리의 마음을 말랑하게 해 주었다.
팜플렛 판매대도 소박하다. 굿즈는 당연히 없고...(젊은 세대로 가득했던 데스노트 공연장과 대비되었다.)

 정말 대단했다. 어쩜 그리 놀라운 음색을 지닐 수 있을까? 박은옥은 박은옥대로, 정태춘은 정태춘대로.... 참으로 놀랍고 드라마틱한 환상의 커플이다.

 지난 5월에 개봉한 다큐멘터리, 음악인생 40년을 담은 < 아치의 노래, 정태춘>을 배경으로 영상과 노래가 어우러진 공연이었다. 그가 왜 음유시인으로 불리는지, 왜 그의 삶을 뜨겁다는 형용사로 설명하는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밥 딜런 Bob Dylan에 대해서 잘 모르지만, 왠지 공연을 보면서 한국의 밥 딜런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노래로 불의에 저항하고, 노랫말로 시대의 아픔에 공감하는 멋진 사람! 우리에게 좋은 길을 보여주며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 노래만 잘하고, 잘 만드는 이가 아니라 더 나아가 대중 음악사에, 한국 현대사에 큰 획을 긋고 지금도 변화하는 사람, 우리의 인생 리더로서 손색없는 모습이 자랑스러웠다.

♡ 고영재 감독의 음악영화 <아치의 노래, 정태춘>은 정태춘 데뷔 40주년을 기념하는 작품으로 여러 상(제13회 DMZ 국제다큐멘터리 영화제 예술 공헌상 등)을 수상했다.
♡ 정태춘 박은옥의 데뷔 때 모습부터 전국 투어 콘서트 실황을 담아 완성했다.
♡ '아치'는 정태춘이 기르던 잉꼬의 이름 '양아치'에서 따온 말이다.
♡ '새장 주위로만 그저 뱅뱅 도는' 가사를 통해 세상에 절망한 정태춘의 심정을 읽을 수 있다.
♡ 영화에도 나오고, 포스터로도 활용한 정태춘의 옆으로 누워 있는 사진(아치의 노래- 가사가 담겨있음)은 박은옥이 직접 찍어 인화한 사진이라고 한다.
♡ 정태춘은 스스로 장르가 된 뮤지션이라고 영화는 말한다.
이미지 출처-다음 이미지

 남편과 모처럼 한가한 데이트라도 할 요량으로 공연장을 찾았는데, 가벼운 마음은 어느새 단단해져 묵직한 집회 현장에 와 있는 듯했다. 2006년에 와서야 가요사전심의제가 폐지되었다니... 당연한 자유와 권리를 위하여 그가 얼마나 애를 썼으며, 지난한 투쟁 과정에서 얼마나 힘들었을지... 그 장한 일을 이루었음에도 결국 불이익을 당하고 노래 현장에서 떠날 수밖에 없었다니!

 우리가 지금 당연하게 누리는 것이 누군가의 피땀 눈물로 이루어졌으며 그 고생에 대한 감사의 상장은커녕 블랙리스트로 또 고초를 겪게 했다니... 그래도 그는 멈추지 않았다.

 '아, 대한민국, 92년 장마, 종로에서, 정동진과 5.18'을 노래하며 우리의 잠든 의식을 깨웠다. 치열하고 처절했던 진실된 그의 삶 속에서 생각(의식)이 빠진 노래는 이미 노래가 아닐 것이다. (누군가는 정태춘의 공연장에서 나는 당신의 노래를 들으러 왔지, 이념을 들으러 온 것이 아니라며 따졌다고 한다.) 정태춘, 박은옥은 그렇게 40년을 채웠다.

평택에서, 광주에서 또 다른 현장에서 끊임없이 '정의'를 노래했다.
이미지 출처-다음 이미지

 20대 딸들은 정태춘, 박은옥을 모른다. 40대 직장 후배도 모른다고 한다.(정태춘, 박은옥보다 대충 10년 아래인 나도 잘 몰랐으니) 일주일 내내 그들의 노래를 찾아 듣고, 노래의 가사를 음미하니 이 고운 가락을, 이 특별한 음색을 딸들에게, 후배에게 알리고 싶다. 가슴에서 우러나는 이 진심을, 더불어 올곧게 살고자 애쓰는 이 가락을 함께 하고 싶다.

 섬세하고 여린 마음으로 시를 쓰고 부조리한 세상에 맞서 버틴 사람, 하늘이 준 목소리와 감각으로 노래하는 이 위대한 능력자와 오랫동안 함께하고 싶다.

건강하게 다음 공연에서 또 만나요.
가슴이 벅차오르는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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