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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프리다'를 보고

내 인생의 꿈은 계속 피어나리라. Viva la Vida!

by 도시락 한방현숙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뮤지컬 마니아인 막내딸 덕분에 1년에 서너 번 뮤지컬을 보게 된 지 어느덧 여러 해가 되었다. 전혀 모르던 세계가 어느새 나에게 환호와 감동과 눈물을 주는 특별한 세상이 된 것이다. 더욱이 막내딸이 미리 본 작품 중에서 나에게 꼭 맞는 맞춤형 뮤지컬만을 엄선해 눈앞에 제시하니, 복 중의 복, 이런 기쁨이 없다.

뮤지컬 작품 덕분에 딸과의 대화도 연일 이어진다. 김우진과 윤심덕의 애절한 사랑, 이상과 김환기의 연인과 그들의 예술과 사랑, 우리나라 최초의 일테노레를 통해 일제강점기 청춘의 꿈과 독립, 좌절과 희망에 대한 이야기가 끊이지 않는다. 시간이 흐를수록 뮤지컬 음악과 이야기, 배우와 노래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었는데 특히 이번에 관람한 뮤지컬 '프리다'는 그중 이야깃거리와 감동과 눈물이 가장 넘쳐나는 작품이다.


내 인생의 꿈은 계속 피어나리라. Viva la Vida!, 프리다의 마지막 작품을 응용하여 무대를 꾸몄다.

영화와 그림으로 이미 친숙한 유명한 화가, 프리다 칼로! 멕시코, 강렬한 색채, 고통과 운명에 몸부림친 비극적 인물로 알려진 프리다를 뮤지컬에서는 어떻게 그렸을까 매우 설렜다. 뮤지컬 프리다는 2025.06.17~09.07까지 상연된 EMK 뮤지컬 컴퍼니의 네 번째 창작품이다. 그간 대형극장에서만 선보였기에 올해 대학로 소극장에서의 첫 공연(삼연)은 많은 팬들을 더 들뜨게 했을 것이다.

가상의 토크쇼 'The Last Night Show'에 프리다가 출연하여 자신의 삶과 인생을 들려준다. 프리다 포함 4명의 등장인물 중 레플레하, 데스티노, 메모리아는 1인 2역으로 남편인 디에고 리베라, 프리다를 평생 괴롭히는 고통과 죽음, 프리다가 소망했던 이상적인 프리다 모습 등으로 때때로 변신하며 뮤지컬을 다채롭게 이끌어 간다.

이 매력적인 배역을 그야말로 끝장나게 연기한, 김소향(프리다), 장은아(레플레하), 이지연(데스티노), 허윤슬(메모리아) 배우에게 기립 갈채를 보낸다. 어쩜 이리 멋지게 뭉클하게 연기를 잘할 수 있는가!

뮤지컬이 끝난 후 커튼콜데이 혜택으로 무대 위 배우를 촬영할 수 있었다. 여전히 멋진 카리스마 넘치는 여배우들! 자랑스럽다.

샹송을 부르며 프리다에게 다가가는 장은아 배우는 그냥 디에고 리베라였다. 그녀의 감칠맛 나는 노랫소리에 마음이 움직이지 않을 프리다가 과연 어디 있을까? 레플레하 역을 맡은 배우마다 프리다를 유혹하기 위해 보여주는 쇼가 다르다고 한다. 누군가는 탭댄스로, 누군가는 스캣과 춤으로! 유명 댄서 아이키는 그녀의 대단한 춤 실력으로 리베라를 연기했다고 한다.

화가이며 혁명가인 프리다 칼로! 고난과 역경의 파란만장한 삶을 어찌 지탱할 수 있었을까? '그림은 유일한 내 삶의 거울이고 용기이다'라는 프리다의 말을 통해 그녀의 삶을 끝까지 멋지게 이끈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6살에 마비된 다리, 18살에 교통사고로 구멍 난 허리, 30여 차례의 수술로 평생 짊어진 육체적 통증, 결혼으로 마주한 불 같은 사랑과 믿을 수 없는 배신, 이어지는 유산과 불임 등 그 고통의 터널을 화가가 아니었다면 어찌 지나올 수 있었을까?


프리다 칼로의 작품이 뮤지컬 무대에 등장할 때마다 그녀의 인생만큼이나 강렬하고 화려한 색채에 압도당했다. 프리다의 마지막 작품으로 알려진 Viva la Vida(비바 라 비다-인생이여 만세)가 무대에 드리워질 때 푸른 하늘 아래 꽉 들어찬 수박을 상상하며 붉은 빛깔 속에 투영되었을 그녀의 고통과 절망을 찾아보려 애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Viva la Vida! 얼마나 멋지고 값진 인생의 마무리인가!


김소향 배우의 춤과 노래, 눈빛과 눈물을 통해 프리다의 인생이 고스란히 스며들어 아프게 다가왔다. 허리가 관통당하는 고통이 느껴지고, 뱃속의 아이를 잃은 어미의 울부짖음이 처절하게 느껴졌다. 눈물을 닦는 조용한 손짓이 객석 여기저기에서 느껴졌다. 김소향 배우는 프리다의 열정, 갈등, 고뇌, 사랑을 때로는 재치 있게, 때로는 심금을 울리며 무대에서 완벽한 프리다를 보여주었다.

배우들이 맡은 역할을 바꿔서 보여주는 서비스, 크로스콜! 리베라 역의 장은아 배우와 프리다 역의 김소향 배우가 각각의 역할을 바꿔 무대를 다시 한번 보여주고 있다.

비상한 두뇌와 뛰어난 재능으로 세상의 풍요로움을 가진 듯하나 혹독한 육체적 고통으로 눈물 흘리는 가엾은 여인, 프리다. 사랑으로 감싸 안아도 기구한 운명일 텐데, 정작 그 사랑에 버림받아 흘리는 눈물은 그림에 칠해진 빨간 물감처럼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붉은 상처였던 것이다. 침대에 누워 천장 거울 속 자신을 바라보며 이겨냈을 고통, 수많은 자화상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며,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주체적으로 삶을 되살리고자 몸부림친 그녀의 아우성이 들리는 듯했다.


유산으로 잃어버린 아기를 향한 프리다의 절규가 객석을 가득 메울 때, 배와 허리를 쥐어짜는 듯한 육체적 고통이 전율처럼 흐를 때, 나도 모르게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프리다의 쓰디쓴 초콜릿 같은 인생 위에 고통으로 일그러진 생전 엄마 얼굴이 오버랩되었기 때문이다.

기구한 결혼 생활, 생때같은 아들의 죽음, 잃어버린 다리의 힘, 온갖 병마가 덮친 말년의 삶 등 엄마와 프리다의 고통이 하나로 이어져 몹시 서럽고 마음이 아팠다. 그래서 결국 무대 앞에서 펑펑 울어 버리고 말았다. 딸은 딸대로, 나는 나대로 각자의 서사에 프리다를 얹어 눈물 흘리고 감동하며 위로를 받고 있었던 것이다.


프리다가 좌절과 고통을 극복하며 얻은 게 그림이라면, 마지막까지 인생이여 만세를 담아 Viva la Vida를 외칠 수 있었던 것이 그녀의 작품이라면, 굴곡진 엄마 인생의 작품은 바로 나란 말인가!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주체할 수 없는 감정에 휩싸였다.

나와 내 딸들이 엄마가 마지막까지 사랑하고 지키고 싶었던 사람이라면, 역경과 고난 후 얻은 보람이라면, 엄마 인생의 작품이 바로 우리들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소중한 작품답게, 지금보다 더 사람답게 잘살아야 함을 문득 깨달았다. 우리를 키운 것은 온전한 엄마의 사랑이었음을, 뮤지컬을 보는 내내 사랑이 가슴에 충만되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프리다를 외치는 이들이 많아지는 것은 시대를 앞서간 프리다의 주체적인 삶이 예술과 페미니즘의 아이콘으로 부상하며 우리를 충분히 위로하기 때문일 것이다. 멕시코 민중의 토속 예술을 사랑하고 멕시코의 정신을 일으켜 과거 식민지의 잔재를 극복하려 앞장서는 멋진 여자, 여성을 억압하는 전통과 관습을 분명히 거부했던 혁명가, 프리다!


프리다 칼로의 평생소원은 단 세 가지 '디에고와 함께 사는 것, 그림을 계속 그리는 것, 혁명가가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녀의 강렬한 삶을 통해 이제 나의 남은 삶의 소원은 무엇인지 생각해 본다. 그것이 무엇이든 그녀처럼 열정적으로, 그녀처럼 깨어있으리라. 그리고 내 인생의 꿈 또한 계속 피어나리라. 'Viva la Vida(비바 라 비다-인생이여 만세)!'를 외치며 나도 씩씩하게 전진하리라!


이 글은 방금 2025.09 15일자 오마이뉴스 기사로 채택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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