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 부자를 꿈꾸듯 근육 부자를 꿈꾸기
"필테? 그게 뭐야"
"아, 필라테스요."
"그래, 별다줄(별 걸 다 줄여)!"
딸과 우스갯소리를 나누던 그 필라테스를 배우기 시작했다. 지난여름 허리를 다쳐 2주간 병가를 낸 적이 있는데, 그때부터 급격하게 다리 근육이 빠진 듯하다. 나름 튼실한 허벅지라 여겼건만, 나이를 속일 수 없는 데다 꼼짝없이 눕거나 앉아 소파 생활을 이어가니 병가 중 눈에 띄게 근육이 사라져 걱정이 되었다.
요즘 모임 때마다 자주 듣는 '연금보다 근육'이란 말은 우리 나이에 퇴직 후 밥벌이만큼이나 중요한 게 근육 관리임을 드러내는 문장이다. 일주일에 2~3회 셔틀콕을 치는 유산소 운동으로는 근력 운동이 부족한가 보다. 게다가 책자나 TV 방송 등 여기저기에서 근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정보를 흔하게 접하다 보니 불안감마저 생겼다. 건강한 중, 노년 생활을 위해서 지금부터 근육 만들기에 최선을 다할 용기를 내야 한다.
유엔은 전 세계 인류의 체질과 평균 수명에 대해 측정한 결과 사람의 평생 연령(120세 기준)을 다섯 단계로 나누어 미성년자(0세에서~17세까지), 청년(18세에서~65세까지), 중년(66세에서~79세까지), 노년(80세에서~ 99세까지), 장수 노인(100세 이후)으로 분류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나는 한창 근육 만들기 좋은 나이, 청춘인 것이다. 연금 부자를 꿈꾸듯 근육 부자를 꿈꾸기 딱 좋은 이 시기를 놓칠 수 없다.
그래서 용기 내어 필테 상담실 문을 두드렸다. 전에 1:1 필라테스 레슨 수강 경험이 있는 딸이 옆에 있어 든든했다. 후다닥 상담과 접수, 등록을 마치고 필테를 시작한 지 벌써 2개월이 흘렀다. 아직도 자세는 허둥지둥, 천방지축 말 그대로 어설프기 짝이 없지만 필라테스 매력에 점점 빠져들고 있는 중이다.
사실 처음에는 필라테스의 의미도 몰랐다. 창시자인 독일의 체조 선수 요제프 필라테스(Joseph Pilates), 그 이름에서 어원이 유래된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다. 체조와 스트레칭이 주를 이루는 운동으로 본래 제1차 세계대전 당시 포로수용소에 수감된 남성 군인들을 재활 치료하기 위한 목적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미국으로 건너간 필라테스 운동이 활성화, 대중화되어 주로 여성들의 건강과 몸매 관리를 위한 운동으로 유명해진 게 21세기부터라고 한다. 요제프는 신체 기능 장애 개선, 부상 치료, 체력 향상 등의 효과를 위해 운동 기계를 발명했는데 대표적인 것이 ‘유니버설 리포머’이다. 최초의 리포머로 불리는 이것은 요제프의 운동 요법을 향상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고 한다.
필테 학원 곳곳에 마련된 기구에 대한 호기심으로 미리 검색 후 첫 수업을 받았다. 기구 필라테스는 보통 리포머, 바렐, 체어, 캐딜락 등이 있는데, 다양한 동작과 기구 별 효과 등으로 지루하지 않게 운동할 수 있어서 매력적이다.
리포머는 말 그대로 몸을 리폼하기 위한 기구로 스프링의 저항성을 이용해 움직인다. 몸에 맞춰 100가지 이상의 운동을 할 수 있다니 역시 필라테스의 꽃으로 불릴 만하다.
바렐은 사다리 형태의 레더와 곡선형의 배럴로 이루어진 기구인데, 스프링이 없는 게 특징이다. 몸에 맞게 사다리의 높이를 조절하여 오로지 내 몸의 근육만을 이용하여 버티는 동작으로 근력 강화 효과가 크다.
체어는 손잡이 봉과 페달이 달린 의자 형태 기구로 페달을 밀거나 손으로 잡는 동작으로 아름다운 하체 라인을 만들 수 있다. 특히 체어만으로 60여 개 이상의 운동 루틴이 가능하다니, 비좁은 공간에서 활용할 수 있는 최고의 기구이다.
캐딜락은 병상에 누워 있는 환자의 근력과 유연성을 위해 고안된 기구라고 한다. 프레임이 움직이지 않아 리포머보다 안정적으로 동작을 할 수 있다. 10여 차례 레슨 중 리포머를 가장 많이 이용하고, 캐딜락은 아직 이용 전이다.
필라테스가 매트와 기구 운동으로 구성되어서 예전에 받은 요가 수업이 도움이 되었다. 요가처럼 매트를 쓰는 운동이지만 근육을 사용하는 방법이 전혀 다르다고 한다. 유연성이 주가 되는 요가와 달리 필라테스는 호흡과 복부의 쓰임을 중시한다. 특히 아랫배와 엉덩이 부분을 에너지의 원천이라 여기고 반복된 운동과 연속 동작을 통해 근육을 운동시키며 통증 없이 근육을 강화할 수 있다.
제대로 호흡하며 코어 근육을 강화하면 몸의 균형과 정렬을 맞출 수 있고, 심폐 및 순환기 능력을 강화하고, 긴장과 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다는 효과를 굳게 믿으며 학원으로 향하지만 몇 가지 정리할 사항이 있다.
필라테스 레슨비는 절대 가볍지 않다. 1:1이 아닌 다대일 레슨을 받는다 해도 한번에 목돈을 내야 해서 부담되기는 마찬가지다. 집중도와 개인 레슨의 세밀함을 고려한다면 오히려 50분 내내 나만을 위한 1:1 레슨이 낫지 않을까 생각도 했으나 시간당 8만 원 이상을 감당할 엄두가 선뜻 나지 않았다. 그렇지만 저속노화로 유명한 교수님의 말, 필요하면 돈을 투자해 제대로 운동하라는 조언을 따르기로 했다.
매주 금요일 21시에 다음 주 레슨 시간을 등록하는 것도 쉽지 않다. 정해진 요일이나 월별 시간표가 있는 게 아니라 스마트 앱을 이용하여 매번 클릭을 해야 한다. 물론 불참으로 수강권을 날리지 않아 경제적이나 매번 느린 클릭으로 원하는 시간을 놓쳐 아쉬울 때가 있다. 나이 많은 우리 세대에 해당하는 고충이다. 알람을 잘 설정하여 잊지 않고 미리 준비하도록 좀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할 일이다.
매 수강 때마다 느끼지만 수강생 중 내가 아마 최고령자인 듯싶다. 30~40대가 주류를 이루는 수업 시간에 선생님의 설명을 잘못 알아들어 혼자 다른 동작을 취하거나, 기구의 다른 곳을 만질 때가 있다. 필라테스 초보자라서도 그럴 수 있지만 괜히 나이가 부끄러울 때가 있다. 허허 웃으며 넘기지만 살짝 기죽을 때는? 그래, 나는 아직 청춘이다. 유엔이 인정한 파릇한 나이 청춘임을 굳게 믿고 나가자.
3개월 가까이 필라테스를 한 결과, 앞으로 꾸준히 할 나의 인생 운동이란 생각이 들었다. 지난 폭염 속 빵빵한 냉방 속에서도 땀을 비 오듯 흘렸다. 차분한 동작이지만 정말 속근육을 찾아내어 쓰는 듯 조용하면서도 열정적인 운동이었다. 운동 후에는 뭉친 어깨가 풀리고, 뻐근한 허리가 유연해진 느낌으로 하루 종일 기분이 좋았다. 수업 후에는 의도적으로 바른 자세를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나는 무게 중심이 앞으로 쏠려 있었다. 선생님 말씀에 따라 몸이 앞으로 경사진 모습을 거울로 확인하고 헛웃음을 짓고 말았다. 또한 어깨가 둥글게 말리고 거북 목 직전까지 턱을 빼고 있었다. 습관적으로 다리를 꼬고 앉는 것도 큰 문제였다.
이제는 의도적으로 귀와 어깨 사이를 되도록 멀리, 턱을 집어넣고 정면을 응시, 뒤꿈치에 힘을 주어 앞으로 쏠림을 방지, 불편하지만 다리 꼬기 금지 등을 열심히 실천하고 있다. 아랫배에 힘을 주고 늘어지는 팔다리를 딱 모으고 걸으면 근육이 붙는 듯 힘이 생긴다.
필라테스 호흡법을 제대로 익히고, 코어 근육을 강화하는 등 아직 갈 길이 멀지만, 수업 중 선생님의 많이 좋아지고 있다는 격려와 칭찬 한 마디에 뿌듯한 마음으로 의지를 다진다. 꾸준한 운동과 식단 관리로 건강한 사람들의 아름다운 자세를 보는 것도 즐거움 중의 하나다.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는 말을 믿는다. 세로토닌, 도파민, 엔도르핀 등 듣기만 해도 기분 좋은 행복 호르몬이 운동할 때 많이 분비되고, 코르티솔 같은 스트레스 호르몬은 수치가 낮아진다니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나이 드는 세월이야 막을 수 없지만 어떻게 늙어가야 하는지는 고민할 수 있지 않은가!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자연스러운 조화로움 속에서 저속노화의 길을 따라야겠다. 식단 관리와 필라테스! 저속노화를 위한 나의 선택이다.
이 글은 방금 10/13일자 오마이뉴스 기사로 채택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