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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칼

무채를 만들다가도 또 엄마 생각

by 도시락 한방현숙

무겁고 뭉툭하던 무 하나가

사박사박 눈송이처럼 내려

스테인리스 양푼에 네모지게 쌓여간다.

소복이 올라오는 눈송이를 허물고

다시 사박사박 반 토막의 무를 간다.

손 조심해라~ 엄마 말이 들린다.

채칼이 아주 맘에 들어~ 엄마 말이 또 들린다.

무엇이 그리 좋다 했는지

채칼 들어 가까이 살펴보니

스무 개 네모진 문이 연달아 이어져 있다.

그 문을 지나가면 소복한 예쁜 눈이 되나 보다.

우리 엄마는 어느 문을 지나 예쁜 그 무엇이 되었을까?

좋다 하시던 그 채칼은 아직 내 손에 여전히 있는데…….

쌓여있는 눈송이에

빨간 꽃가루를 뿌리고

초록색의 이파리를 넣어

새콤달콤 꽃씨들을 흔들어 섞어

예전 엄마가 하던 대로 따라 해 보니

아름다운 채 장아찌가 양푼 속에 가득하다.

나는 또 내 딸들을 불러 모아

한 입 가득 맛을 보이며

엄마랑 똑같이 웃음 지어 본다.

어느새

스무 개 문을 지나 엄마가 내 옆에 와 계신다.

나도 이 채칼이 참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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