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택수 시인의 '나무의 꿈'을 배우며
3월의 학교, 국어 수업은 언제나 시(詩)로 문을 연다. 올해도 역시 손택수의 시 '나무의 꿈'으로 중2학년 첫 수업을 시작하였다. 나무의 꿈, 화자는 나무를 의인화하여, ' ~뭐가 되고 싶니?'를 반복하며 다정스레 말을 건넨다. 의자, 책상, 계단, 창문틀, 배, 목선 등, 나무의 꿈들이 연쇄적으로 이어진다.
꿈을 꾸는 이들을 응원하는 메시지, 얼마나 아름다운가! 특히 자라나는 새싹에게 무한한 가능성을 열어 그들의 꿈을 키우고 격려하는 일은 사회가 해야 할 당연한 의무 중의 하나이다. 새싹은 꿈을 꾸는 데 노력을 기울이고, 어른은 그들을 지지하고, 특히 어려움에 처했을 때 다독이고 위로를 건네는 사회! 우리가 꿈꾸는 이상이다.
그러나 우리는 세상이 그렇게 만만하지 않음을, 내 마음대로 돌아가지 않음을 안다.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이들이라 지칭하지만 15세 청소년들은 자신이 뭐든지 될 수 있음을 100% 신뢰하지는 않는다. 아니 심지어 그들은 꿈을 꾸지 않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겨우 떠밀려 마지못해 발표한 그들의 꿈이, 건물주! 그것도 놀고먹는 건물주라니... 로또 당첨이 대박 소원이라며 거리낌 없이 말하는 아이들과 무슨 말을 이어야 할지 멈칫할 때가 있다.
누가 그들을 꿈꾸지 못하게 하였는가? 누가 그들의 꿈을 돈, 돈, 돈이라는 비좁은 틈에 가둬버리고 말았는가!
시인은 꿈을 이루지 못한 아픈 상황을 '한 줌 재'와 '아궁이 속 장작'으로 표현한다. 아이들은 각자 실패의 경험을 떠올린다. 시험에 떨어지고, 회장 선거에 낙선하고, 수행평가를 망치고, 친구와 어울리지 못하고 등등, 학교 생활 곳곳에서 경험한 좌절의 순간을 함께 나눈다.
학교 너머 취업에 실패하고, 결혼에 이르지 못하고, 독립을 못하고, 주거비와 생활비에 시달리는 청춘의 삶이 즐비하다. 인생은 결코 꽃길의 연속이 아님을 아이들도 어른도 너무 잘 알고 있다. 나와 남의 실패, 좌절, 고통, 절망의 순간을 쉽게 끌어낼 수 있다.
나는 좌절을 경험하지 않는 것보다 좌절을 어떻게 맞이하느냐가 더 중요한 것이라고 아이들에게 역설한다. 꽃길이 아닌 자갈밭을 걸을 때 필요한 회복적 탄력성을 강조한다. 누군가는 사소한 돌부리에도 넘어져 지하 20층쯤으로 떨어지는 이가 있고, 누군가는 전화위복을 꾀하는 현명하고 강한 힘을 지닌 이가 있다고 이야기를 이어가며 건강한 좌절, 또는 바람직한 어려움이 주는 인생의 참의미를 함께 고민하기를 제안한다.
실패하지 마라가 아닌 실패 후 어찌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세계 자살률 1위가 말하는 섬뜩함을 우리는 외면하지 않아야 한다. 날카롭게 현실을 직시하며 귀한 생명, 소중한 새싹, 건강한 미래를 지켜야 한다.
아이들의 눈이 반짝거린다. 여기저기서 꿈을 가지라, 진로를 정해 서둘러 나아가라, 는 재촉에 허둥대고 불안하기만 한 아이들이다. 30대가 다 되어도 갈 방향을 못 찾는 이가 허다한데, 중2 아이들에게 너무나 어려운 일이다. 아이들 생기부 진로희망란에 '진로탐색 중임'이란 문구가 나날이 늘어나고 있다.
시인은 '한 줌 재'를 재해석한다. 꿈을 이루지 못했지만 누군가의 몸을 데워주고 춤을 추듯 피어오르는 모습은 얼마나 값진 모습인가! 타인에게 도움을 주고 하늘을 나는 재의 모습을 나무의 실패, 좌절로만 부를 수 없다며 다시 바라본다. 마음은 아프지만 그 나름의 의미가 충분하다고, 그 안에 인생의 참된 가치를 찾을 수 있다고 긍정적 시선을 당부한다.
한창 꿈을 꾸는 새싹들에게, 성공하지 못하면 어쩌지?라는 불안감은 꿈을 갉아먹는 가장 나쁜 괴물이다. 지난 3월 모의고사 후 '이생망'이라는 유행어가 다시 등장했다는 기사를 보고 마음이 아팠다. 이제 고작 17살인데, '이번 생은 망했다'를 입에 올리는 그들의 마음을 무엇으로 헤아려야 하는가! 토닥토닥 위로와 위안을 건네며 꿈에 설사 도달하지 못해도 괜찮다고, 그 과정만으로도 충분하다고, 그런 삶도 살만하다고 누군가는 보여줘야 할 것이다.
안심하라고, 그것으로 망한 게 아니라고, 천천히 다시 시작하면 되는 거라고, 나름 의미가 있다고!
시인은 우리에게 계속 위로를 건넨다. 그 목소리를 듣고 우리는 다시 시작할 용기를 얻는다. 아마 내가 시인이었다면 여기서 마무리했을 텐데, 역시 시인은 다르다. 시인은 한 발 더 헤아려, 지금 현재 모습 그 자체로 충분히 사랑받을만하다며 미완의 새싹들을 존중한다.
" 지금이 바로 너로구나"
질풍노도의 시기, 여기저기 흔들리고, 실수투성이로 되는 일 없이 하루를 마무리한다 해도 네 자체, 그대로의 모습만으로도 의미와 가치가 있다고 위로한다. 잘하지 않아도, 뛰어나지 않아도, 미성숙한 지금 순간 그대로의 모습만으로도 충분히 사랑받을만하다고 다시 강조한다.
2012년 스마트한 시대에 태어난 중2 아이들, 선진국의 풍요로움 속에서도 우리 아이들은 왜 행복하지 못한가! 교실마다 따돌림, 자해, 우울, 거부, 두문불출, 단절로 시들어 가는 아이들이 많은가! 그들의 고민과 좌절과 어둠의 원인은 무엇인가!
급변하는 세상 속에서 시민의식과 국가의 위상이 높아지며 이제는 살만한 나라가 되었다 여기며 경제적 풍요와 민주적이고 정의로운 사회로의 변화를 확인하며 살아왔다. 그러나 사회는 아직도 차디 찬 냉골의 모습을 때때로 드러내며 한기를 느끼게 하는 부분이 많다.
성공과 출세를 위해 돈의 노예가 되어가는 모습, 빈부의 격차는 갈수록 벌어지고, 생활수준은 노골적으로 드러나 조롱과 비하가 난무하고, 자랑질과 겉치레로 SNS는 제 기능을 잃고 거들먹거리며 우쭐함을 도배하는 일상을 견디며 우리는 각자 상처를 내고 있는 모습이 IT강국이 아니라 IT망국을 떠올릴 때가 있다. 특히 교육현장에서 이에 상처받고 힘들어하는 아이들을 보면 교사로서 걱정이 크다.
현재를 믿지 못하는 아이들, 건강함을 잃어가는 아이들, 어둠과 게임에 푹 빠진 아이들, 조화로움을 모르고 한 방향으로만 치닫는 아이들, 제대로 된 사랑을 받은 경험이 없어 불만과 불신에 남의 탓만 일삼는 아이들, 친구관계를 이어가기가 어려워 배회하는 아이들...
어떤 꿈을 꾸고 있니? 다정하게 말을 건네고, 꿈이 없다면 꿈을 꾸게 만들어 손잡아 주고, 꿈을 꾸든, 꿈을 이루지 못하든 지금 그대로 너는 사랑스럽고 가치 있다고, 너는 절대 쓸모없는 사람이 아니라는 믿음을 시인처럼 주고 싶다.
우리는 '괜찮아'를 되풀이하며, 두 팔로 자신을 감싸 안아 다독이는 동작을 연습하며 수업을 마무리했다. 우리의 믿음이, 문학의 힘이 온전이 발휘되기를 바란다.
퇴근 후 집에 오니, 올해 대학을 졸업한 막내가 집에 있다. 꿈을 꿔왔으나 아직 이루지 못한 청춘! 취준생이라는 이름을 달고, 자소서와 포트폴리오 작성으로 피로에 지친 막내 얼굴을 마주하니 불현듯 오늘 국어 수업이 떠올랐다. 아이들과 배운 시, 아이들과 함께 한 배움의 내용을 따라 할 차례이다.
괜찮아, 이 어려운 시기에 너무 조급하게 서둘다 상처받지 말고, 지금 잠시 멈춰 있다 해도 네게 절대 쓸모없는 시간은 아닐 거야. 이 과정을 통해 너는 더 단단해질 것이고, 겸손을 배울 것이고, 소중한 누군가를 얻을 수도 있는 귀한 시간일 거야.
겨울을 견딘 나무가 지금처럼 봄꽃을 피어내듯이, 곧 너의 계절이 시작될 거야.
너의 지금을 조용히 응원할게. 서두르지 않고, 비교하며 상처 내지 않고, 오로지 너 자체를 소중히 여기며 지지하고 격려할게. 그러니 두려워말고 마음껏 도전하고, 부딪히고, 쓰러지고, 다시 일어서렴. 엄마는 흔들리지 않는 마음으로 기다리는 자세를 연습할게! 인생은 분명 살만하단다, 막내야!
4월 1일, 오마이뉴스 기사로 채택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