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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수진 Mar 24. 2020

런던의 코로나 일상

안녕들 하신가요? 저는 안녕합니다.

안녕하신가요?

아마 어디에 계시든 이전과는 전혀 다른 일상을 보내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너무나도 달라진 삶에 적응하려 노력 중입니다.


남겨진 자의 슬픔

오늘도 양손 가득 짐보따리를 들고 기숙사 정문을 나서는 친구들이 보입니다. 창문 너머로 들리는 캐리어 바퀴 소리가 일상이 된 지도 일주일이 지났습니다. 학교 수업이 온라인으로 전환되고 굳이 런던에 있을 필요가 없어진 외국 학생들이 고국으로 돌아가는 모습입니다. 행여 바이러스에 노출되더라도 '내 나라'에서 치료를 받고 싶다는 마음도 이방인들의 발길을 부추깁니다. 충분히 이해합니다. 당장 저와 가까이 지내던 친구들 중에도 이미 작별인사를 고한 친구들이 있습니다. 주방을 공유하던 플랏 메이트(flat mate) 6명 중 2명이 방을 비웠습니다. 냉장고 공간이 넉넉해지고, 식사 준비 시간이 덜 붐비게 됐지만, 편리함보다는 공허함이 큽니다. 타지에서의 삶을 공유하던 이들을 하나 둘 떠나 보내며 그들의 건강과 행복을 빕니다. 하지만 마음 한 편에는 설명하기 힘든 이상한 감정이 똬리를 틉니다. 남겨진 자의 슬픔이라고나 할까요?


떠난 자에게도, 남겨진 자에게도 삶은 계속됩니다. 영국 정부가 사회적 거리두기(social distancing)를 권고하는 만큼 저와 나머지 플랏 메이트들은 기숙사 붙박이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덕분에 바깥의 삶과 멀어진 거리만큼, 나머지 플랏 메이트들과 더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예전처럼 자주 모여서 함께 음식을 해 먹고, 왁자지껄 떠들 수는 없지만 아침, 점심, 저녁마다 마주치며 서로의 안부를 묻습니다. '감금 생활' 일주일을 기록한 지난 주말에는 서로 약간의 거리를 유지한 채 보드게임도 했습니다. 덕분에 사회생활을 못해서 생긴 스트레스를 조금 덜었습니다. 역시 사람은 사회적 존재가 맞나 봅니다.


그러고 보면 제 처지가 참 감사하게 느껴집니다. 안전하게 머무를 공간이 있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친구들이 곁에 있습니다. 직장 문제나 재정 상태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도 아니고, 바이러스에 취약한 기저 질환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요. 더구나 어차피 해야 할 공부와 과제가 쌓여있어서 당분간 책상을 오래 비울 수 없는 처지입니다. 다만, 겨울 내내 춥고 비가 자주 오던 날씨가 서서히 봄을 알려오고 있는데 마음만큼 반갑게 맞이할 수 없다는 게 아쉽습니다. 어제는 이 아쉬움을 조금이나마 달래 보고자 기숙사 안 담장을 따라 걸으며 햇빛을 쑀습니다. 그날 밤 제 플랏 메이트는 단체 세탁실에 빨래를 하러 갔다가 저를 봤다면서, '담장 밖을 바라보는 눈빛이 너무나 아련했다'라고 킥킥대더군요. 제가 생각해도 불쌍해 보였을 것 같긴 합니다.  


떠나는 친구와 찍은 마지막 사진. 친구는 떠나기 전 기르던 선인장을 선물했다 / 남은 사람들끼리 주방을 더 자주 청소하고자 만든 표/  보드게임 나잇.


이전과는 달라진 세상, 적응하는 사람들  

슬픔은 잠시, 사실 지난 일주일은 달라진 삶에 적응하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돌이켜보니 그 시간이 무척 길었던 것 같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빨리 흐른다고 느끼는 이유가 점점 새로 경험하는 일이 사라지고 비슷한 일상이 반복되기 때문이라던데, 길게 느껴지는 시간은 새로운 삶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일단 모든 삶이 온라인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온라인으로 수업을 듣고, 교수님, 친구들과 하는 토론도 모두 온라인으로 진행됩니다. 온라인 수업이야 예전에도 경험해 본 적이 있지만, 10여 명이 참여하는 화상 온라인 토론이 어떻게 이뤄질지 무척 궁금했습니다. 결론은 '생각보다 괜찮다'입니다. 토론 초반 침묵이 이어지기도 했지만, 몇몇이 말을 꺼내고 금세 새로운 방식에 적응한 친구들은 일반 수업에서처럼 열띤 토론을 이어갔습니다. 오히려 오프라인에서는 쑥스러움 때문인지 말을 많이 하지 않던 친구들도 평소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저녁에는 꼭 시간을 내 온라인 영상을 보여 요가 수련을 하고 있습니다. 다니던 요가원이 결국 임시로 묻을 닫는 바람에 난처했는데 요 며칠 해보니 온라인 수련도 나쁘지만은 않더라고요. 제가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분위기를 연출한 상태에서 수련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습니다. 늦은 밤 조명을 어둡게 해 놓고 상큼한 아로마 오일을 방에 뿌린 뒤 요가로 하루를 마무리하면 온 세상이 평화로운 것 같습니다. 한 평도 채 안 되는 공간에서 할 수 있는 요가가 얼마나 겸손한 운동인지 새삼 감사하게 느껴집니다. 마음 안팎이 시끄러운 와중에 스스로에게 이런 시간을 선물한 제 자신이 고맙습니다.


위기 속에서 드러나는 진가

어려울수록 나와 타인에게 더 친절해야겠습니다. 스스로를, 그리고 주변을 잘 보살피는 것이 위기를 극복하는 길이라고 믿습니다. 그러고 보면 사람이든, 사회든 진가는 위기 속에서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실제로 이번 코로나 사태를 계기로 여러 사회가 안고 있는 다양한 문제점이 수면 위로 드러나기도 했죠. 한국에서는 수상한 종교 단체의 비이성적인 행동이 큰 파장을 일으켰고, 중국에서는 정보를 통제하려던 정부의 움직임이 포착됐고, 일본에서는 폐쇄적인 관료주의가 비판을 받았습니다. 바이러스가 널리 확산 중인 미국 그리고 영국을 비롯한 여러 유럽 국가에서는 아시아인에 대한 차별과 이에 따른 크고 작은 사고가 속속 나오고 있습니다. 전례 없는 상황에 닥치는 두려움과 당황스러움, 분노는 이해가 됩니다. 저도 화가 나니까요. 하지만 사회의 소수자를 감정의 분출의 표적으로 삼는 것은 비열합니다. 이기적인 사재기도 빼놓을 수 없겠네요.


지난 주말 '사피엔스' '호모 데우스' 등의 저작으로 유명한 유발 하라리가 파이낸셜 타임스(FT)에 이번 코로나 사태와 관련해 장문의 칼럼을 기고를 했습니다.


이 폭풍은 지나갈 것이고, 인류는 살아남을 것이며, 우리 대부분은 여전히 삶을 살아갈 것이다. 다만, 이전과는 다른 세상에서.
( Yes, the storm will pass, humankind will survive, most of us will still be alive — but we will inhabit a different world.)

무척 공감이 갑니다.

이 사태가 모두 지나고 나면, 우리는 어떻게 달라져 있을까요?

우리는 어떤 새로운 세상을 살게 될까요?

지금 우리가 위기를 대처하는 매일의 태도가 다가올 세상을 만들고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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