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야속함에 대하여
10년 만에 다시 피렌체에 왔다.
2000년대 초반 개봉한 “냉정과 열정 사이”라는 영화의 열성 팬으로 10년 전엔 영화와 비슷한 느낌을 받았던 좋은 추억이 있었다.
영화 OST를 들으며 아침 일찍 조토의 종탑을 올랐고, 카페 질리의 존잘 바리스타의 에스프레소를 받아마시며 눈이 휘둥그레지기도 했으며 중앙시장에서 갓 구운 피자를 들고 집으로 귀가하기도 했었다.
에어비앤비 호스트 할머니의 추천으로 한 소셜클럽의 저녁식사에도 참가했었고, 슈퍼마켓에서 샐러드와 파스타 거리를 풍족하게 사서 식사를 해결하기도 했다.
그 추억이 다시 이곳으로 이끌었는데… 많은 것이 바뀌었다.
일단 너무 오른 숙소비는 차치하더라도 명색이 연인들의 성지라는 도시의 광경이 이젠 ‘명동 뒷골목’의 모습이었다.
이젠 영원한 사랑을 약속하러 오기엔 너무나도 정신없는 관광지가 된 느낌이다.
옛말에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변치 않은 모습이길 바라는 마음이 이기적인 것일까?
하긴 영원한 사랑이 없듯 이곳 역시 시간이 흐르는 만큼 낡고 소모되어가고 있으니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10년 전처럼 눈물 짜며 도시를 돌아다니던 어린 내가 더 이상은 아니기에 상대적으로 실망감이 큰 것 같다.
그래도 카페 질리의 커피와 디저트는 너무나 훌륭했고 엄청난 비가 내리는 동안 피렌체와 관련된 내용의 책을 읽었던 시간은 매우 소중했다.
10년 후의 나는 이제 자리값을 내고 편안히 마시니 가능한 것. 시간이 야속하지만은 않다. 여유로움이 더해지기도 하니까.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동안 “도시는 기억이다”라는 책을 읽었다. 도시사학회에서 기획한 이 책은 공공기념물을 중심으로 도시를 들여다본다.
유명한 랜드마크가 포함되는 경우가 많으니 유럽여행을 역사적으로 파고픈 분이라면 읽어보기 좋을 책일 것 같다. 물론 내 여행지에 맞춰 챕터를 골라볼 수 있으니 부담도 없고 말이다.
피렌체 부분을 요약해 보자면 지난 10년 간 시간의 야속함은 야속함 축에 끼지도 못할 정도로 많은 변화를 겪어온 도시가 이곳이었다.
아르노강을 통제할 수 있고 로마와 포 Po 강 유역을 연결하는 전략적 요충지이기도 한 도시인 피렌체 지역은 기원전 2세기말 로마 카시아 도로의 종착지로 제국의 주요 도시로 부상한다.
이전 에트루리안이 건설한 인근의 피에솔레 지역이 민중파와 귀족파의 내전으로 파괴된 이후 민중 파였던 술라가 이곳을 로마군단의 도시로 만들고 “플로렌티아”라고 명명을 한다.
로마군단이 머무르는 일종의 신도시는 사각형의 표준화된 모습으로 각 블록이 만나는 곳에는 광장(포름)이 설치되었고, 극장과 원형경기장 및 목욕탕 등의 ‘로마화’된 시설들이 조성되고, 로만 시티답게 상하수도 시설도 구비되었다고 한다.
3세기경 제국을 멱살 잡고 끌어올리려고 노력했던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는 제국을 4 분할하고 피렌체 지역을 투시아 관구의 수도로 선정하였다.
(그는 제국을 네 개의 대관구로 쪼갰고, 두 명의 정황제, 두 명의 부황제가 각각 다스리도록 하였다. 물론 그는 가장 잘 나가는 동로마 지역을 다스렸고, 공동 정황제였던 막시미아누스에게 피렌체가 속한 이탈리아 지역을 맡겼다.)
그렇게 잘 나갈 것만 같았던 이 도시는 로마제국이 멸망(476)하고 중세가 찾아오며 쇠락의 기운이 낭낭해졌다.
북쪽에서 밀려들었던 게르만족 중 랑고바르드 인들이 장악하는 듯했지만 그들의 세력권 밖으로 벗어났고, 카롤링거 왕조 시기에도 역시나 아웃 오브 안중이었던 것은 마찬가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때 중세의 성인들이 다수 등장했고, 피렌체 곳곳에는 그들을 기리는 성당들이 오늘날까지도 전해지고 있다고 한다.(산 로렌초 성당, 산미니아토 성당 등)
이렇게 중세 유럽의 세계관 그 자체였던 가톨릭과의 관계로 입지를 구축한 피렌체 지역은 그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는데, 그 관계가 11세기가 되어서야 빛을 발한다.
11세기엔 신성로마제국 황제와 교황의 경쟁이 격화된 시기였다. 성직자 서임권을 갖고 다투었지만 보이지 않는 것보단 눈에 보이는 영역 싸움이 어쩌면 더 치열했을지도 모른다.
신성로마제국 황제는 실질적으로 본적지였던 독일 쪽보다는 이탈리아를 탐냈다. 왜냐하면 독일왕이 아닌 “찐 로마제국 황제”가 되려면 로마가 있는 이탈리아 지역을 가져야 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그곳은 교황의 나와바리였던 것. 그리고 생판 모르는 독일남자가 이 동네를 먹는 꼴은 보기 싫었던 토스카나 지역의 여후작 마틸데는 당연 교황을 지원했고, 그녀가 바로바로 카노사의 굴욕의 등장인물이기도 하다.
알프스에서 맨발로 오돌오돌 떨던 황제를 교황과 중재해 준 그녀의 위용은 영지 내에 휘날렸을 것이고, 이는 자존심 상한 황제와의 대결이 다가옴을 의미하기도 했다.
결론적으로 머리채 잡고 싸우다가 마틸데는 후사가 끊겼고, 황제는 하인리히 5세 사후 제위 계승문제로 정치적 공백이 이 지역을 엄습했다.
[예상외로 길어진 글은 다음으로 이어집니다… 총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