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학살된 유럽 유대인을 위한 기념관 방문기
독일인들은 유럽에서 참 독특한 입장을 갖고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넓디넓은 유럽 땅 한가운데에 자리 잡았기에 다양한 상황을 자처하거나 휘말릴 수밖에 없었으며, 전쟁에 대한 책무감을 가져야만 했으니 아마도 내가 독일인이 아니라 전부 알 수 없으리라.
프로이센 개선의 상징 브란덴부르크 문을 보고 너무나도 상반되는 성격의 이 기념물로 발길을 옮겼다.
수많은 콘크리트 구조물들이 방문객들을 반겼다. 이내 친절한 직원분의 안내를 받고 보안검색을 마친 후에 지하에 있는 기념관에 입장할 수 있었다.
1933년부터 1945년까지 나치가 자행한 유대인 절멸 시도의 과정이 상세히 설명되어 있다.
오디오 가이드도 있고, 독일어와 영어로 설명이 잘 되어있다. 주요 인물이나 장소 등에 주황색으로 하이라이트가 되어있어 영어가 짧은 나도 빠르게 이해할 수 있었다.
이들이 피해자들을 기억하고 기리는 방법이 매우 인상 깊었다.
나치 집권 후 국가 사회주의가 지배한 독일에서 철저하게 짓밟힌 개인이었던 유대인들을 다양한 시선으로 기억하려는 노력이 그것이었다.
가장 먼저 개인의 일기나 서신을 통해 당시 그들이 어떤 상황에 처했는지 뿐 아니라 그때의 감정까지도 생생하게 전했다.
그리고 벽면에는 유럽 각국에서의 희생자 수가 적혀있었다.
이를 통해 당시 나치가 점령했던 유럽 각국 정부와 주민의 유대인에 대한 태도를 유추해 볼 수도 있었다.
네덜란드의 행정 관리들은 유대인의 정보를 점령 당국에 제공했을 뿐 아니라 경찰은 나치 친위대를 도와 유대인 포획 작업을 함께 했다.
반면 덴마크 정부의 경우 유대인 문제에 대해 비협조적이었고 되려 유대인에게 정보와 시간을 주어 중립국으로 피신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다.
두 번째 공간에서는 유럽 각국의 유대인 가족들에 대한 기록들을 다채롭게 보여주며 그들을 기렸다.
개인보다 큰 단위의 개인이 가족이고, 유럽 내에서 사회적 소수자로 버텨야 했던 그들이 가장 의지했던 커뮤니티가 가족이었으리라.
세 번째로는 희생자들에 대한 생애를 차분히 읽어주는 공간이 있었다.
여러 세대의 다양한 케이스를 해당 인물의 이름과 함께 만나볼 수 있었다.
네 번째로는 유럽 전역에 있었던 학살 장소에 대한 콘텐츠 큐레이션이 있었다.
대표적인 장소별로 독일어와 영어로 된 설명뿐 아니라 전화기처럼 생긴 장치를 통해 설명을 들을 수도 있었다.
사람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내보이는 것이 가장 어렵다고 생각하는데, 독일인들은 이러한 태도가 준비되어 있는 듯 한 느낌이었다.
타자에 탓을 돌리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나 담담하게 잘못을 인정하고 설명하다니…
아마도 전후 유럽 질서에 편승하여 재기하기 위해 필요한 스텐스였겠지만, 인간적으로나 외교적으로나 인정할 건 인정해야.. 지…
마지막으로는 생존자의 증언들을 디지털 자료로 큐레이션 해둔 별도의 방이 있었다. 자유롭게 틀어져있는 비디오 자료를 볼 수 있었고, 개별적으로 원하는 자료를 태블릿을 통해 찾아볼 수도 있었다.
외관의 콘크리트 구조들만큼이나 간결한 구성의 기념관은 관람객의 다양한 감상을 담을 여백을 내어주고 있는 느낌이었다.
이곳을 떠나기 전 방명록에 “모든 개인의 행복을 간절히 기원하며”란 메시지를 남겼다.
건축가가 품은 뜻이 있겠지만, 나는 이 콘크리트 구조물들 하나하나가 유럽에서 버텨내야 했던 개인으로서의 유대인의 존재감을 의미한다고 생각했다.
국가 사회주의에 의해 개인의 색채를 잃고 일렬로 열차에, 게토에, 절멸 수용소 가스실 앞에 줄을 서야 했으며, 그 사이사이 빛이 드는 듯 행복을 꿈꾸면서도 일관되게 절망적이었을 상황이 느껴졌다.
‘수도니까 방문해 봐야지’라는 가벼운 생각으로 온 베를린에서 예상외로 ‘개인의 존재와 기억’이라는 화두를 얻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