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표정, 다정함이 빠진 자리

불편함을 기록합니다.

by 왕태일


무표정, 다정함이 빠진 자리


아침에 커피를 사러 들어갔다. 늘 가던 곳은 아니었고, 그렇다고 완전히 처음 보는 공간도 아니었다. 동네를 오가다 몇 번쯤은 스쳐 지나간, 언젠가 한 번은 들어가 보게 되는 그런 카페였다. 사실, 그 자리는 이미 카페를 운영했던 자리이기도 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작은 종소리가 났고, 카운터 뒤에 서 있던 직원이 고개를 들었다. 눈이 마주쳤다. 딱 거기까지였다. 웃음도, 인사도 없었다. 그냥 눈만 마주쳤다. 나는 잠깐 멈췄다가 메뉴판을 바라봤다. 이 상황에서 내가 먼저 “안녕하세요”라고 말해야 하는 건지, 아니면 주문부터 해야 하는 건지 헷갈렸다. 그래서 괜히 메뉴판을 한 번 더 훑었다. 사실 이미 마실 건 정해져 있었는데도 말이다.


“아메리카노 한 잔 주세요.”

내가 먼저 말을 꺼냈다. 직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아무 말 없이 버튼을 눌렀다. “뜨거운 거요?”라는 질문도 없었고, 결제 금액을 말해주는 목소리도 없었다. 카드 단말기가 내 쪽으로 밀려왔고, 나는 아무 말 없이 결제를 했다. 그 사이 우리는 몇 초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침묵이 아주 길었던 건 아니지만, 묘하게 길게 느껴졌다. 무표정은 공격적인 태도는 아니었다. 그렇다고 친절하다고 말하기도 어려웠다. 감정이 빠진 얼굴. 그 무표정이 이상하게도 나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나는 바로 앞에 놓여진 테이블 자리에 가서 커피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카페 안에는 음악이 흐르고 있었고, 다른 손님들도 몇 명 있었다. 모든 것이 정상적으로 돌아가고 있었지만, 방금 카운터에서 느꼈던 공기는 계속 마음에 걸렸다. ‘서비스가 나쁜 건 아니잖아.’ 스스로에게 그렇게 말해보기도 했다. 주문은 정확했고, 커피는 곧 나올 것이고, 가격도 합리적일 것이다. 그런데도 마음 한쪽이 계속 찜찜했다. 내가 뭘 기대했던 걸까. 웃음일까, 인사일까, 아니면 그냥 사람다운 반응일까.


이럴 때마다 늘 헷갈린다. 무표정한 서비스가 정말 문제일까, 아니면 내가 괜히 예민한 걸까. 요즘은 다들 바쁘고, 감정을 관리하는 것도 노동이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 서비스직에게 친절을 강요하는 건 또 다른 폭력일 수 있다는 의견에도 고개가 끄덕여진다. 나 역시 누군가에게 항상 웃으라고 요구하고 싶지는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표정한 응대 앞에서 느껴지는 이 애매한 불편함은 분명 존재한다. 분노도 아니고, 실망도 아니고, 그렇다고 명확한 불쾌감도 아닌 감정. 설명하기 어려운 그 애매함이 마음에 오래 남는다.


그런데 커피를 기다리며 가만히 생각하다 보니, 내 안에서 하나의 관점이 자연스럽게 고개를 들었다. 나는 광고업에 종사하는 사람이고, 기획자다. 브랜드를 만들고, 브랜드의 태도를 설계하는 일을 한다. 수많은 마케팅 전략을 세우면서 늘 반복해서 말해온 문장이 있다. “브랜드라면 친절할 필요가 있다.” 정확히 말하면, 친절은 선택이 아니라 태도이고, 태도는 브랜드의 성격이다. 다정한 브랜드, 배려하는 브랜드, 말 한마디의 온도가 느껴지는 브랜드. 그건 거창한 캠페인이 아니라, 아주 사소한 접점에서 완성된다고 믿어왔다.


다시 오게 만드는 가장 쉬운 방법

특히 동네에서 장사를 한다면 더 그렇다. 친절은 의무는 아닐지 몰라도, 분명 책임이 따른다. 손님과의 대화는 단순한 거래가 아니라 관계의 시작이고, 그 관계는 지속 가능해야 한다. 단골은 광고로만 만들어지지 않는다. 다시 오고 싶게 만드는 가장 쉬운 방법은, 사실 아주 단순하다. 기억에 남는 표정, 말 한마디, 짧은 인사. 그 작은 감정의 교환이 반복되면서 브랜드는 생활 속으로 들어온다. 나는 그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고, 수많은 브랜드에게 그렇게 말해왔다.


그래서 더 복잡해졌다. 무표정한 서비스를 마주했을 때의 불편함은, 단순한 소비자의 예민함이 아니라 내 업에서 비롯된 감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 공간을 ‘카페’가 아니라 ‘브랜드’로 보고 있었고, 그 브랜드의 태도를 무의식적으로 읽고 있었던 건 아닐까. 그 무표정은 나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당신은 손님이지만, 굳이 다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 메시지가 틀렸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마음에 들지도 않았다.

커피가 나왔다. “아메리카노 나왔습니다.”


그 말도 여전히 담담했다.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감사합니다”라고 말했다. 직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전부였다. 나는 커피를 들고 자리에 앉아 첫 모금을 마시며 다시 생각했다. 이 브랜드는 지속 가능할까. 내가 기획자라서 이런 생각을 하는 걸까, 아니면 정말 중요한 지점을 건드린 걸까. 이 공간은 다시 오고 싶어지는 곳일까, 아니면 그냥 한 번 들렀다 지나가는 장소로 남을까.


어쩌면 무표정한 서비스는 당장의 문제는 아니다. 커피는 팔리고, 손님은 들어온다. 하지만 브랜드는 그렇게 조금씩 감정을 잃는다. 그리고 감정을 잃은 브랜드는 오래 기억되지 않는다. 나는 그 사실을 너무 많이 봐왔다. 그래서 이 불편함을 단순히 개인적인 기분 문제로 넘기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고 누군가를 평가하거나 비난하고 싶지도 않다. 다만 이 장면이 내게 남긴 질문은 분명하다. 우리는 어디까지 무심해져도 괜찮은 걸까.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다시 처음의 감정으로 돌아온다. 무표정한 서비스 앞에서 내가 잠시 작아졌다는 사실. 괜히 말 한마디 더 붙이지 못하고, 괜히 눈치를 보고, 괜히 나만 예민한 사람처럼 느껴졌다는 그 감정. 나는 그 감정이 싫다. 그래서 더 오래 곱씹게 된다. 이 글이 정리되지 않는 이유도 아마 거기에 있을 것이다. 나는 아직 이 불편함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브랜드든 사람이든, 다정함은 비용이 아니라 투자다. 그리고 그 투자는 생각보다 빠르게 돌아온다. 오늘의 무표정한 서비스는 나에게 커피 한 잔을 팔았지만, 다음 방문에 대한 이유를 주지는 못했다. 그 차이를 나는 업으로서, 그리고 개인으로서 동시에 느꼈다. 아주 오래전의 일이었다. 소상공인들을 위한 마케팅 재능나눔을 꽤 수년간 기획했고, 운영했다. 그 때마다 기업도, 자영업자에게도 동일한 기준을 내세웠다. '친절해지세요'. 세상이 아무리 빠르게 움직이고, 변한다해도 절대 변치않는 단 한 가지라면 '인간의 마음'이다. 진심. 동네에서 화려한 인테리어도 사람들을 묘하게 끌어당기는게 아니라면, 가장 쉬운 고객 관계 유지 방법은 '진심어린 인사 한 마디'가 시작이 될 것이다.


친절을 강요하지도 않고, 무심함을 단죄하지도 않는다. 다만 기록한다. 나의 업이 나의 감정을 어떻게 예민하게 만들었는지, 그리고 그 예민함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불편함은 때로 나를 까다로운 사람이 아니라, 더 많은 것을 감지하는 사람으로 만든다. 오늘의 무표정한 서비스는 그렇게 내 하루에 남았다. 답은 아직 없고, 질문만 남아 있다. 가끔은 프랜차이즈가 반가울 때가 있다. 최소한의 기계적인 '인사'는 해주니까. 웃픈 현실이다.


「불편함을 기록합니다」

EP. 06 무표정, 다정함이 빠진 자리


왕태일DRE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