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The Koo Aug 27. 2021

낫 놓고 기억

치매안심센터 임상심리사의 일상 기록


떠돌고 또 떠도는 먼지.

이 사회에서 낯설지 않은 존재가 되기 위한 기록들을 시작하려고 한다.


익숙해지지 않아도 괜찮다.

익숙해지면 곧 떠날 테니 말이다.


병원 밖으로 뛰쳐나와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꾸린 공간을 들고 사회 속에 머물기를 꿈꾸었다.

작은 동네에서 임상심리사가 운영하는 심리 전문서점이 문을 열었고, 책과 커피 그리고 맥주가 있어서 멍때리며 있기도 좋은 공간으로 색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지역의 개성 있는 서점을 궁금해하던 사람들도 있었지만 처음에는 기존에 없던 조합을 어색해하던 사람들도 많았다. 하지만 1년 2년 시간이 지나며 꾸준한 활동을 보던 사람들이 조금씩 내 공간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마음’이라는 주제에 참여가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3년차인 2020년이 되자 공간은 존재가 뚜렷한 개성있는 장소가 되었고 다음 달 월세걱정은 내려놓아도 되는 시점이 되었다.

뿌듯함도 잠시, 그해 1월 코로나19가 닥쳐왔고 매출은 곤두박질을 쳤다.


공간의 주인으로 장소를 이어가기 위해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었다.  외부 강의 등으로 근근이 1년 반을 견뎌냈지만, 결국……

영업중지를 공지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도래하였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뛰쳐 나왔던 제도권 안으로 기어 들어갔다.


50일이 지난 지금에서야 말하지만, 다시 기어들어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굴복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불과 얼마 전의 그 자유롭고 패기로웠던 나를 기억할까?

누가 기억할까?

그들이? 내가?


나는, 기억해야 한다.

아니, 기억하고 싶다.


문득,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른다.

는 속담이 떠올랐다.


그렇게 내 공간을 낫(not)하고 즉, 내려놓은 다음 날 기억과 인지 즉 뇌의 활동과 노화에 집중하는 치매안심센터 임상심리사로 지내게 되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임용이 되어 내 공간을 놓은 게 맞는 말일 테다.


코로나19는 닥쳤지만, 나는 쉼 없이 내 역할을 해내고 있다.

그러므로 N번째 직장인 치매안심센터에서 임상심리사로 일하며 경험된 감정과 사색을 꺼낸 이 기록들은 나의 존재함을 기억하는 일이다.


낫 놓고 기억. 놓지않고 기억하기 위해 기록한다.

나의 경험된 감정과 사색들이 뭉쳐진 떠돌이 먼지는 이제 어떻게 될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