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을 밭의 병정들
갑과 을의 관계로 세상이 이루어진 것 같았던 때가 있었다. 시간이 지나 세상의 때가 묻어(경험이 쌓여) 내가 갑이 되는 상황보다 을로 사는 경우가 더 많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얌전히 묵묵히 조용히 세상을 욕하며 지낸 시절도 있었다.
지금은 갑도 을도 아닌 병? 아니다 병도 아닌 정? 그 어디메에 있으려나 싶은 생각이 든다.
사회에서 내 위치는 어디에 있는지 생각하지 않기로 한다.
가끔은 이런 외면이 사실 편하다.
티브이를 틀어도 인터넷을 열어도 가장 눈에 띄는 자리에는 오늘의 확진자 수가 있다. 4차 유행으로 확진자수는 매일 천명을 넘고 있는 2021년의 8월.
코시국 보건소의 모습은 일터로 발을 담그지 않았다면 전혀 몰랐을 모습들로 매우 다채롭다. 뭐 어디든 어떤 인생이든 다 그러하겠지만 말이다.
바로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이곳의 실상에 대해 궁금해하지 않았다. 그저 숫자만 보며 한탄을 했다.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외면하며 지냈던 게 사실이다.
내가 속한 보건소 한 켠에는 코로나19 선별 진료소가 9시부터 6시까지 운영되고 있는데, 대체로 많은 날은 검사받고자 하는 사람들의 줄이 보건소 담벼락을 따라 꼬리를 물고 선을 그리듯 잇고 있다.
우린 명시된 직무별 업무 외 명시되지 않은 코로나 대응 업무를 추가로 해야 한다. 입사 전 어렴풋이 예상은 했지만, 막상 눈앞으로 다가오니 다른 느낌이었다.
예방접종센터 업무와 코로나19 선별 진료소 업무 등 오늘의 확진자 수가 발표되기 이전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노고가 있는지…….
코로나19 선별 진료소는 직원들이 돌아가면서 당번처럼 근무를 서는데 한 달에 5,6번은 차례가 온다.
언론에서는 검체 채취 장면만 나오는데 현장은 여러 단계로 나뉘어 있다.
검사를 받으러 온 사람들의 인적정보와 역학조사에 필요할 기본정보들을 기록해야 하는 자리에 앉으면 또 다른 내가 된다.
방호복에 장갑을 끼고 모자는 귀를 덮어쓰고 마스크에 정면 쉴드까지 장착하면 상대방의 말소리는 잘 들리지 않고 내 시야는 흐리게 보이고 세상은 웅웅거린다.
인적사항을 비롯하여 질문사항이 많고 검체 채취 후 안내사항까지 말씀드려야 하기에 4시간 근무를 하고 나면 온몸은 땀으로 범벅이 되어 냄새가 말로 표현하기 힘든 수준이 된다. 땀도 땀이지만 소리를 질러대서인지 목이 너무 아프다.
아이들과 함께 오는 경우에는 미리부터 겁을 먹기도 해서 문진에 해당하는 내 물음이 끝나기도 전에 우린 순식간에 눈물 고함 바다에 빠지게 되기도 한다.
서로가 마스크를 쓰고 있는 환경이기에 발생하는 오해도 있다. 몇 번을 물어도 기본사항을 웅얼거려 못 알아듣는 경우에는 어쩔 수 없이 내 소리도 커진다. 그러면 자연스레 상대방의 짜증은 증가한다. 기본사항 외 동선 파악을 위한 질문이 들어가면 버럭 화를 내거나, ‘그것까지 내가 왜 말해야 돼요?’라며 경계를 받아야 하기도 한다.
검사받으러 온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잠시도 쉴틈이 없는 어떤 날에는 점심시간 전 알림을 위해 양해를 구하면 ‘내가 여기 줄 서서 기다린 게 얼마인데!’라며 폭언이 쏟아지는가 하면, 끝나기 5분 전 느긋하게 들어오는 모습에 조금이라도 재촉을 하면 ‘정각까지 아직 남은 거 아니냐? 공무원들 일 설렁설렁하네?’라며 역정을 내기도 한다.
하지만 대체로 많은 사람들은 불안한 모습이기에 안심을 주고 싶게 하며, 또 몇몇은 불편한 모습으로 일하는 우리를 염려해주며 감사의 말을 남기기도 한다.
‘갑을 밭에 병정도 아닌 나부랭이가 왜 여기에 있지?’라는 물음이 내 속에서 툭 하고 나온 날이 있었다. 그날은 너무 많은 사람들이 검사를 받으러 오기도 했지만, 너무 다양한 홀대를 받았던 날이기도 했다.
소상공인으로 지내다 코로나19를 피해서 왔는데 더 큰 산을 만난 나는 그만 다 던지고 나가 버리고 싶어 졌던 순간이었다.
코로나 시국에 많은 사람들이 힘들어하고 있다. 터널이 끝난 것 같은데 또 다음 터널로 진입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그건 우리 무두의 공통 감정일 것이다.
어찌 되었든 간에,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다. 그게 나인 것일 뿐. 지금 박차고 나가도 또 남은 누군가는 이유도 모를 역정을 받아야 한다.
그래서 나는 또 그들의 사정을 그리고 나의 사정을 외면하고 다음분에게 안내를 한다.
그저 소망이 있다면, 2년 임기제로 보건소에서 일을 하고 있기에 내 임기가 종료되기 전에 이곳이 철거되는 것이다.
임기 안에 임상심리사의 직무로 채워야 하는 것들이 있는데 쉬지 않고 채워도 힘든 달성 표인데, 이렇게 한 달에 4-6번 코로나19 업무지원을 해야 하는 상황으로는 감당해 낼 수 없는 분량이다. 그리고 그렇게 고된 업무에 잦은 욕받이로 지내기엔 내 멘탈의 자정능력이 감당할 수 있을런지가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내 임기안에는 끝나라 제발!’
갑을 밭에 병도 아니고 정도 아닌 그 어느쯤에 있는먼지나부랭이가 부려보는 희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