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교역 백화점 지하에 있던 서점에 들른 날이었다. 요미우리 문학상 수상작이라는 대대적인 홍보 문구와 함께, 신간 코너의 매대 하나를 같은 책들이 가득 채우고 있었다. 푸른 숲 사진으로 꾸며진 킨포크 풍의 책 표지와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라는 서정적인 제목의 조합. 왠지 간지러운 기분이 들어 가까이 가지는 않았다. (책의 원제는 '화산 자락에서'다. 담백하지만 다소 밋밋했던 문장이 적절한 msg를 통해 다시 태어난 셈이다.)
몇 주가 흘러 여름도 끝나갈 무렵, 서점에 다시 들르게 된 나는 두 번째 만남이라는 반가움에 누그러진 마음으로, 선입견을 내려놓고, 가운데 책장을 펼쳐 몇 개의 문장을 빠르게 읽어 내려갔다. 그리고는 금세, 두근거리는 마음이 되어 책을 사들고 돌아왔다.
이야기는 국립 현대 도서관의 설계 경합을 준비하는 '무라이 슌스케'의 건축 사무소에 운 좋게 합류하게 된 신입 사원, '사키니시'의 1인칭 시점으로 전개된다. 여름이면 도쿄의 더위를 피해 아사마 화산 자락, 아우쿠리 마을의 여름 별장으로 사무실 전체가 이동하는 전통을 따라,ㅡ존경해온 노 건축가가 직접 설계한ㅡ별장에서의 첫 여름을 맞이하는 '나'. 무더운 여름이라는 계절의 감각, 섬세한 목조 건축물이 주는 공간적 이미지가 이야기를 풍성하게 감싼다. 쇠딱따구리새 소리와 호반새의 소리를 구별할 줄 아는 주인공은 해발 1000미터 고지대의 화산 마을에도, 작은 규모를 고수한 채 오랜 세월을 지나오며 빈틈없이, 유기적으로 흘러가는 사무소의 일원으로도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가고, 훗날 그가 잊지 못할 여름의 시간도 흐르기 시작한다.
문득 나는 이 책을 만난 무렵, 2016년의 여름 끝에서 2017년의 여름 끝까지. 서판교에서 보낸 일 년을 생각한다. 산으로 둘러 싸인 마을과, 가리는 것 없이 어디서든 올려다볼 수 있는 하늘을 가진 것만으로도 이전의 삶과는 다른 공기를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삼십 년 간 '서울'이라는 꽉 찬 밀도의 주거지를 벗어나 본 적이 없던 나에게 의지해 온 부모님도, 가까운 친구도, 아무 연고도 없고 인적조차 드문 외곽 지역에서의 생활은 분명 매력적이면서도, 낯선 것이기도 했다.
당시 나는 이제 막 서른을 지나, 세 살에서 갓 네 살이 된 아이를 누구와도 어울리지 않은 채 키우고 있었다. 그 사실만으로도 물리적인, 정신적인 고립이었다.
이전까지는 어려움이 있으면 사람을 만났다. 이야기를 털어놓고, 진탕 술을 마시기도 했다. 아이를 키우면서는 이 세 가지가 모두 불가능했다. 직장 생활을 하는 친구들과는 시간대가 맞지 않았고, 서로 다른 관심사와 고민 사이에서 오랜 우정으로도 극복할 수 없는 간극이 생겨났으며, 술을 마신 컨디션으로는 다음 날의 육아를 감당할 수 없었다. 하원을 마치고, 이글대는 뙤약볕 아래 단 둘이서, 두 시간이고 세 시간이고 놀이터와 분수들을 순방하는 강행군이 이어진 뒤 누릴 수 있는 유일한 여가는 다음 날 오전의 쉼과 독서였다.
이야기는 잔잔하면서도 힘이 있었다. 허구이면서도, 어딘가에 정말 '아우쿠리 마을'과 '무라이 건축 사무소'가 존재하리라고 믿게 만드는 것은 작가가 가진 디테일의 힘이었다.
잘 만들어진 영화처럼, 모든 장면의 미장센을 정확하게 그리고 짚어가는 이야기의 견고한 짜임 위로 건축에 대한 작가의 해박하고 구체적인 지식이 유려하게 흘러들었다. 고객들을 배려해 관념적인 말, 추상적인 표현을 사용하지 않았던 선생님만큼이나 이야기는 일상적인 언어들로 아름답게 빛났다.
책 속에는 새와 꽃, 자연, 역사, 요리, 음악도 있었다. 이 책을 읽으며ㅡ여전히 건축에는 문외한이지만ㅡ프랭크 로이드와 탈리에신, 여름 별장과 건축가 '무라이 슌스케'의 모델로 알려진 요시무라 준조와 그의 작품, '숲 속의 집' 도 처음 알게 되었다.
의식을 잃고 병원에 있는 선생님을 위해, '둥근 음이 나는' 피아노로 마리코가 연주한 <슈베르트 피아노 소나타 21번>도 찾아 들어 보았다. 개인적인 감상이지만, 작가의 차분한 문체에는 바흐의 곡도 잘 어울렸다. 느릿하고 투명한 느낌의, 로잘린 투렉의 연주를 골라 골드베르그 변주곡을 틀어두고 천천히 책을 읽어나갔다.
아침이면 뜨거운 물을 부어 커피를 내리고 저녁에는 선생님을 위한 홍차를 준비하는 주인공을 따라 나도 무엇이든 우려 마셨고, 별장에서 매일 풍성한 저녁 식사를 준비하는 사무소 식구들을 묘사한 장면을 읽으면서는 그들의 레시피를 따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외로웠던 내 일상에 책은 지극히 현실적인 위안이었다.
완벽해 보이는 인품의 선생님에게도 드러내지 못할 개인사가 있었는데, 그건 유부남인 선생님의 애인, '후지사와' 씨였다. 선생님은 후지사와 씨를 위해, 그리고 가끔 그녀를 만나기 위해, 멋진 집을 짓고, 꾸준히 집을 보수하고 관리해 주었다. 누군가의 떳떳한 배우자가 되지 못한 채, 숨겨진 존재로 살아가야 했을 그녀는 언제 들를지 모르는 선생님을 기다리면서 정원을 가꾸고, 꽃을 돌보았다. 책 속에 이런 구절이 있다.
후지사와 씨는 사람과 떨어진 삶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나날을 보낼 수 있는 강인함을 어떻게 익혔을까." 275p
이 책에 가득한, 수많은 아름답고 수려한 문장들 중에, 다소 평범하게 지날 법한 저 한 문장에 나는 멈춰 섰다. 물음으로 끝난 문장이었지만, 물음 속에 이미 답이 있다고 느꼈다. 낯선 동네에서, 직업도 없이, 어디에도 마음을 의지하지 못한 채 '아이 엄마'로 지내던 그때의 나에게 울림을 주는 문장이었다.
선생님은 한창 생각에 잠겼다가 말했다. "혼자서 있을 수 있는 자유는 정말 중요하지. 아이들에게도 똑같아. 책을 읽고 있는 동안은 평소에 속한 사회나 가족과 떨어져서 책의 세계에 들어가지. 그러니까 책을 읽는 것은 고독하면서 고독하지 않은 거야."
180p
한 권의 책이 작은 물결이 되어, 막연하게 흘러가던 감정의 방향을 바꾸어 놓기도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 책을 만난 이후로 나는 외로움이라는 감정 대신, '혼자서 있을 수 있는 자유'를 누리게 되었으므로.
인터뷰에서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건축이 재미있겠다고 생각했지만 이과 과목에 자신이 없어 단념했다. 그렇지만 건축에는 계속 관심을 가지고 설계도집도 찾아보고 관련 서적도 곧잘 읽었기 때문에 이 소설을 위해 특별히 취재할 필요는 없었다. 오랜 세월 마음속에 축적해온 것을 끌어냈다고나 할까."
'오랜 세월 마음 속에 축적해온.'이라는 표현이 마음에 와 닿았다. 그래. 건축가가 되지 못하더라도, 건축에 대한 깊은 관심을 글로 풀어갈 수 있는 것처럼. 먼저 내 삶을 풍요롭게 하자. 마음 가는 것들에 대해 더 깊이 알아가고 기록하자. 그런 시간을 차곡차곡 쌓아가자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