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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양연화 Jan 18. 2021

한국어교원이라는 직업

- 외국인에게 한국어를 가르친다고요?


외국인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한국어 교원

외국인들이 한국어를 배운다. 세계 곳곳의 세종학당에 학생들이 넘쳐난다. 자기네 나라 고등학교에서 배우고, 대학교에서는 전공을 한다. 2017년 12월에 작은 뉴스가 나왔다. 토픽(TOPIK : Test of Proficiency in Korean) 누적 응시자가 212만 168명을 기록한 것이다. 토픽은 한국어를 모국어로 하지 않는 외국인·재외동포가 치르는 한국어 능력 시험이다. 1997년에 시작하여 2017년에 시행 20년이 되었다. 첫해에는 응시자가 2천692명이었는데 지난 2017년 11월 제55회 시험에서 누적 응시자 수 200만 명을 넘겼다. 2017년에만 73개 나라에서 29만여 명이 시험을 봤다. 


주변에 외국인들이 참 흔하다. 홍대 앞은 그야말로 상전벽해(桑田碧海)다. 홍대 앞에 오래 살았다. 상수동에서 초등학교(국민학교)를 다녔다. 중고등학교 때에는 홍대 앞 독서실에서 공부하고 신촌에 숨어 술을 마셨다. 대학은 홍대입구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다녔다. 그 시절, 홍대와 신촌을 싸돌아다니면서도 외국인을 본 적은 없다. 홍대 앞에는 ‘후반기’를 비롯하여 미술학원들뿐이었고, ‘응답하라 1994’에도 외국인이 나오지 않는다. 그랬던 홍대, 신촌에 요즘은 한국 사람보다 외국 사람이 더 많을 지경이다. 홍대만이 아니다. 이태원, 강남은 물론이고 서울 곳곳이 외국인 천지다. 


방송에도 자주 나오는데 한국말을 참 잘들한다. 처음은 ‘미녀들의 수다’였고 ‘비정상회담’이 바통을 이어받았다. 이다도시, 로버트 할리는 이제 조상급이고, 샘 해밍턴, 크리스티나를 뒤따라 샘 오취리, 장위안, 알베르토 몬디 등 손가락이 부족할 정도다. 다들 한국말을 잘한다. 우리가 영어 연수를 가듯, 한국에 와서 한국어를 배웠다. 대부분이 대학 부속 한국어교육기관(어학당)에서 배웠다. 호주 사람 샘 해밍턴은 고려대학교에서, 미국 사람 타일러는 서울대학교 언어교육원 한국어교육센터에서, 프랑스 사람 파비앙은 이화여대 언어교육원에서, 가나 사람 샘 오취리는 서강대학교에서 한국어를 배웠다. 그리고 그들을 가르친 이들은 한국어 교사이다. 


국어교육과 한국어교육

국어와 한국어는 같고 또 다르다. 국어라고 하면 친숙하지만, 한국어라고 하면 어딘가 모르게 새삼스럽다. 중고등학교에서도 국어 선생님께 국어를 배웠고, 수능에서도 국어 시험을 봤다. 대학에도 국어국문학과, 국어교육과가 있다. 하지만 엄밀하게 보면 국어라는 표현은 정확한 지칭은 아니다. 국어는 말 그대로 ‘나라의 말’이란 뜻으로 국가를 전제로 하는 일반명사다. 일본의 국어는 일본어고, 중국의 국어는 중국어다. 그래 한국 사람끼리라면야 국어라고 해도 한국말이라고 찰떡같이 알아듣지만, 외국인과 함께 있을 때 국어라고 하면 대상이 다를 수도 있다. 국어는 가리키는 대상이 상대적인 데 반해 한국어는 그 자체로 한국의 말이고 고유명사다. 우리가 한국 사람이기에 자연히, 당연히, 별다른 생각 없이 국어(language 또는 national language)라고 쓰면서 한국말(Korean language)이라고 여겨 왔을 뿐이다. 요즘 고등학교에서는 국사라고 하지 않고 한국사라고 하는데 비슷한 이유일 터다. 


이런 차이에서 국어 교육과 한국어 교육이 갈렸다. 통상 국어 교육은 한국 사람에게 한국말을 가르치는 것으로 대학에서 국어 교육을 전공한 후 중등학교 임용고시를 거쳐 중고등학교에서 국어 선생님으로 일한다. 한편 한국어 교육은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국어를 가르치는 것으로 대학이나 대학원에서 외국어로서의 한국어(Korean as a foreign language) 교육을 전공한 후 한국어 교원 자격을 취득하여 한국어 강사로 일한다. 그뿐만 아니라 국어 교사는 교육부 관할이고 한국어 교원은 문화체육관광부 소관이다.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한국어 교원 자격을 부여하며 국립국어원에서 자격증을 발급한다. 그래 국어 (정)교사라고 해서 한국어 교원이 될 수 없으며, 한국어 교원 자격증이 있다고 국어 교사 자격을 받을 수는 없다. 둘은 샴 쌍둥이다.


한국어 화자는 다 한국어 교사?

초중등학교의 원어민 영어 교사를 생각해 보자. 보통 미국을 비롯한 영어권 출신으로 대학교를 졸업하고 한국에 와서 영어 선생님으로 일한다. 원어민(native speaker)이면 누구나 영어(English as a foreign language) 선생님이 될 수 있을까? 우리는 한국어 원어민 화자다. 한국인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고 한국인 가정에서 컸으며 한국인 친구들, 지인들과 살았고, 살고 있다. 한국어가 모국어(母國語, mother tongue)이기에 한국어만큼은 자신이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한국어 문법을 잘 알고 있을까? 여기서 ‘알다’의 의미를 한 번 더 생각해 보자. 만약 ‘알다’를 ‘이해하여 설명할 수 있다’는 뜻으로 새긴다면 한국사람 99%는 한국어 문법을 모른다. 


a) 비가 오니까 택시 탈까? 

b) 비가 와서 택시 탈까?     


읽는 순간 답이 나온다. a)는 아무 문제가 없지만, b)는 어색하다. 우리는 a)를 쓰지 b)를 쓰지 않는다. a)를 쓸지 b)를 쓸지 고민하지도 않는다. 왜 우리는 b)로 말하지 않을까? 뭐라 설명은 못 하지만 우리는 당연히, 습관적으로 a)를 사용한다. 이렇게 딱 보면 아는, 그냥 답이 나오는 것을 직관(直觀, intuition)이라 한다. 한국어를 모어로 하는 사람이면 한국어를 직관적으로 사용한다. 어려서부터 한국어 환경에서 살면서 자연스레 한국어 어휘와 문법을 습득(習得, acquisition)했고 그렇게 습득한 것을 내재화(內在化, internalization)한 덕분이다. 방송에 출연한 외국인의 한국말을 들으면서 뭔가 어색하다고, 한국 사람이 하는 말 같지 않다고 순간적으로 느끼고 판단하는 것도 바로 이 내재화된 언어 능력 덕분이다. 


문제는 a)가 맞고 b)가 틀린 이유를 설명할 수 있는가이다. a)와 b)의 차이라면 ‘오니까’와 ‘와서’다. 나머지는 다른 데가 없다. 더 자세히 보면 ‘오다’라는 동사도 같다. 차이는 ‘-(으)니까’와 ‘-아/어서’뿐이다. 그렇다면 ‘-(으)니까’를 사용한 a)는 왜 괜찮고, ‘-아/어서’를 사용한 b)는 왜 어색할까? ‘-(으)니까’와 ‘-아/어서’는 무슨 차이가 있나? 한국어 네이티브 스피커(native speaker)인 우리로서는 이미 내재화하여 아무 문제 없이 잘 사용하고 있는 한국어 문법을 하나하나 알아서 이해해야 할 필요도, 설명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외국인들이 한국어를 배울 때면 ‘-(으)니까’와 ‘-아/어서’를 이유(理由, reason)를 나타내는 문법으로 배우고, a)는 되는데 b)는 안 되는 이유를 궁금해한다. 한국어 선생은 외국인 학생의 저 질문에 답해 주어야 한다. 


영어로 바꿔보자. 예전에 영어를 배우면서 동의어를 많이 외웠다. 가령 ‘때문에’는 because, as, since, due to, owing to, thanks to ……. 독해를 할 때야 대충 ‘때문에’로 옮기면 별문제가 없는데, 영어로 말하고 영어로 글을 쓸 때면 어떤 경우에 무슨 표현이 적절한지 고민스럽다. 다 ‘때문에’니까, 크게 다르지 않아 의미는 통할 거니까 그냥 아무렇게나 대충 써도 괜찮을까? 비슷하기는 해도 차이가 있어서 각각 사용하는 경우가 다르지는 않을까? 영어 원어민 화자라면 이런 경우에 since가 맞고, 저런 경우에는 due to가 좀 어색하다고 알려 줄 수는 있겠으나, 왜 그런지를 명확히 설명해 주기란 그들도 쉽지 않다. 내재화된 언어 능력이 직관적으로 작동하기에 그것을 밖으로 끄집어내서 객관화하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한국어가 모국어인 한국 사람이라고 해서 누구나 외국인에게 한국말을 가르칠 수 있는 것도, 한국어 교사가 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추신:

한국어교육, 한국어교원과 관련하여 궁금하신 점이 있으시면 댓글로 남겨 주십시오. 글로 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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