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n't get me wrong.
검사, Prosecutor, 혹은 Accuser.
변호사, Lawyer, 혹은 Comforter.
판사, Judge!
우리는 다 이 세 명의 Main player가 우리의 모든 것을 좌지우지하는 세상에 살고 있는 것 같다.
누구는 나를 accuse하고, 누구는 나를 protect, comfort 하며, 누군가는 나를 Judge한다.
내 행위는 그 accuser의 claim을 얼마나 공정하게 Judge 하는 사람이 있는지에 따라,
이재명, 송영길, 이화영 처럼 간주될 수도 있고, 윤석렬, 김건희 처럼 될 수도 있다. 아주 희망적인 시나리오 대로라면 예전의 경영권 승계 재판에서처럼 Jay Lee 처럼 간주될 수도 있겠지.
그렇다면 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것은 Judge의 힘인가? 그 힘은 누구로 부터 Empowered, 혹은 Authorized된 것일까? Constitution, 바로 헌법 아닌가? 모든 세대를 아울러 수많은 국민, 시민들의 염원이 응축되어 문서로 집약된, 고도로 정제된 합의, 그것이 문서화된 주권 (Sovereignity)!
그런데, 기껏해야 좀 어려운 시험을 잘 봤다고 뽑힌 위임권력자들, 선출권력이 아닌 자들이, 월급장이의 심정이 되어 임명권을 가진 대법원장의 의중에 따라 한 개인의 생사여탈권을 마음대로 휘두른다면, 그래서 "누구 누구 court" 라고 불리워 지는 법원 분위기가 형성된다면, 이건 옳은 일인가?
그래, 검사, 변호사, 판사 당신들은 나보다 공부를 훨씬 잘했을 수 있어요. 인정합니다.
암기력도 좋았을 것이고, 문해력과, 답변을 길게 논리적으로 쓰는 논술실력도 좋았을 것이라고 인정합니다. 제 친구들 중에 사법시험 봐서 지금 판사, 변호사 하는 친구들 봐도 저보다 고등학교 때 공부 더 잘한 것 맞아요.
그런데 나는 당신들한테 묻고 싶어요. 그 시절의 그 공부가, 지금 수십년 동안 살아오면서 당신들 자신을 행복하게 했나요? 당신들이 법대 위에서 땅땅 뚜드리는 그 소리를 듣는 누군가의 마음에 법과 정의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었는지 아니면 피눈물을 맺히게 했는지 되돌아 볼 정도의 양심은 가지고 있는 건가요?
요즘 "조희대 Court" 라는 단어를 가끔 방송에서 듣습니다. 웃기는 일이에요. 누구 누구 Court라뇨? 법이 대법원장 마음대로 변형되어 적용된다는 소리 아닙니까? 제가 좋아하는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도 변호사였는데, 노예제 폐지를 위해서 엄청난 법적 투쟁을 벌여야 했고, 당장 지금 우리도 어찌보면 상식과 이성의 관점에서는 너무도 당연시되어야 하는 일이, 마치 전직 법무부 장관이 추진해서 성공시킨, "..등" 단 한 글자로 뒤집혀 버리는 엄청난 시대를 지금 살고 있는 건 아닐까요? 결국 링컨 대통령도 총탄에 암살되었지요.
누군가는 전투용 칼을 사서, 오랫동안 갈아서 양날을 만든 다음, 일반인 키 높이 수준의 나무에 수건을 감아서, 목 부위에 휘두르는 연습을 수없이 한 끝에, 가덕도 신공항 행사장에서 실전을 감행했구요, 지금은 수감되어 있습니다. 선동당한 증오의 화신이 철퇴를 맞은 경우이지만, 만약 성공했다면, 지금 대통령은 없었을 겁니다. 이건 accuser들이 초래하는 아주 위험한 행동인데, 여기 생각없이 선동당한 사람들이 그 도구가 되어 세계로 교회 교인의 차를 얻어타고 거사 장소로 이동하는 등 조력자들 역시 accuser말만 듣고, Judge를 고려하지 않은 탓이라고 생각합니다. 본인들은 아마도 안중근 의사나 된 것 처럼 생각했을 수도 있겠네요...
그 분이 지으신 세상에서, 아무리 판사, 검사, 변호사가 뒤섞여 볶작대더라도, 결국 모든 것은 판사, 검사, 변호사를 모두 지으신 그분의 눈길, 손길 아래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HE has everything on the control.
토기는 토기장이의 손길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러니 누구 누구 court 라는 말 좀 하지 마세요. 길게 보면, 모든 것은 선하고 균형잡히고 정교하게 움직이는 우주의 섭리안에 아주 아주 미세하게 복속되어 있지 않을까요? 그것이 Coram Deo의 충분한 이유가 됩니다. 제발 좀 두려움을 가집시다. Trembling and Fear가 우리의 행동을 더 선하게 하고, 절제되게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야 무릎꿇는 삶이 가능하지 않을까요?
Zipaquira의 깊은 지하 소금성당 안에서, 기도했었습니다. 제발 좀 평화로운 세상, 정의로운 세상, 서로를 사랑하는 세상을 허락해 주십사 하고.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내 뜻과 다르게 세상이 흘러갈지라도, 결국은 꿈꾸는 자가 이깁니다. 요셉처럼. 같이 꿈꾸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