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안겨 살듯이, 나도 그들을 품을 수 있기를
내가 사는 동네는 고양시의 맨 외곽, 서울과 인접한 하천변 동네이다. 내가 태어난 북한산 밑 동네가 이 개울의 최상류라면 나는 지금은 한강 하구와 맞닿아 있는 최하류에 살고 있는 셈이다. 덕분에 지대가 낮아서 장애물이 없는 관계로 내가 좋아하는 북한산의 봉우리들과 능선을 매일 보는 호사를 누리면서 산다.
어디나 물이 있으면 생명을 품어 내듯이, 이 개울가를 산책하다보면 수많은 동식물들을 만날 수 있다. 봄부터 겨울까지, 때마다 만날 수 있는 많은 생명들을 보는 것이, 내게는 작은 기쁨이고, 하루의 일상에 지친 뒤 내가 찾는 작은 위로이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개울이 매번 장마 후 어떻게 물길이 바뀌고, 늘 보이던 곳에 있던 새나 동물들이 과연 잘 있는지, 잘 있던 큰 수양버들이 장마 후 꺾여 버리지는 않았는지, 수위가 높았을 때 나무가지들에 걸린 저 비닐과 쓰레기들은 누가 언제 제거할 수 있을지, 참 남들이 보면 별 것들에 다 관심을 갖고 산다고 생각할 만큼 개울가의 환경에 눈길이 간다. 실제로 올 장마 때 한 번은 수위가 너무도 높아서 둑을 넘쳐 버리지 않을까 걱정할 만큼이었고, 이 동네에서 평생 사셨다는 어르신 한 분도 몇 번 보시지 못한 수준이었다고 말씀하실 정도였다.
큰 물이 지나가고 나면 개울의 지형이 조금씩 바뀌긴 하지만, 그래도 다들 어디 몸을 피하고 있었는지 나중에 물이 줄어들면 내가 관심을 가졌던 작은 동물들은 다행히 다시 몸을 드러내고, 다 물살에 잠겨 죽었을 것 같던 풀과 나무들과 잡초들도 다시 허리를 펴고, 오히려 물살이 실어다 준 비옥한 토양들 때문인지, 더 예쁘고 건강하게 자라나는 것 같다.
내게는 그 생김새와 색깔과, 물위에서 날아 오르고, 내려 앉고, 기지개켜는 신기한 모습들로 기쁨을 주던 새들.
아마도 장마 때 한강 하구에서 올라와서 지금껏 살고 있을 것으로 생각되는 금빛 잉어들. 헤엄치는 것을 가만히 바라만 보아도, 예전 어느 유명한 연못 같은데서 키우던 색색의 비단잉어들보다도 멋지다.
4월이 되면, 변함없이 날아온 백로 떼들이 근처 소나무숲에 둥지를 틀고, 부지런히 나뭇가지를 물어다 집을 짓고, 갓 부화한 새끼 백로에게 먹이를 물어다 주는 모습도 아름답다.
물가에 자라난 수양버들 가지에서 새순이 돋고, 민들레 홀씨는 바람에 날아갈 준비를 한다. 목련꽃 봉우리 솜털이 점점 자라나서 꽃망울을 터뜨릴 준비를 하고, 제비꽃들도 개울 옆 밭들에서 지천으로 피어난다.
풀밭에서는 아마도 수천 마리가 넘을 것 같은 달팽이들이 깨어나고, 거미도 부지런히 뭔가를 하고 있다.
일년 이상 이들을 보아 오다 보니, 이제는 이 모든 식물과 동물들이 너무 친숙해 진 것 같다. 처음에는 이 개울 하나가 이렇게 많은 생명들을 먹여 살리고 있었다니 하는 새로움이 컸다면, 지금은 나 역시 이들처럼, 저 멀리 산에서부터 발원한 조금 넓은 이 개울 옆에서 살아가는 같은 한 목숨일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이들보다 조금 더 오래, 넓은 지역을 누리면서 살다가 갈 뿐, 이들 역시 자기에게 주어진 자리에서, 주어진 시간만큼을 누리다 가는 차이랄까?
그래서인지, 공생(共生) 이라는 단어가 요즘 자꾸 떠오른다. 그것은 비단 사람들 사이에서만의 공생이 아니라, 온갖 살아있는 것들과의 공생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나무와 풀, 꽃과 곤충, 새와 물고기들, 모두 그들에게는 이 자연이 삶의 터전이고, 또한 그들 자신이 함께 꾸려가는 세상의 일부일 것이다. 인간인 나는 마치 그들보다 아주 우위의 존재로서, 그들을 내 마음대로 해도 되는 것처럼 생각해 온 것은 아닐지. 나 역시 같은 창조주의 솜씨로 빚어지고, 호흡을 받아 주어진 시간 동안만 사는 것은 마찬가지가 아닐지. 그렇다면, 나 역시 이들처럼, 주어진 모습을 감사해 하면서, 본래의 모습과 몸짓으로, 주어진 시간과 공간에 충실하는 것, 그것이 이 작은 "이웃목숨"들과 함께 사는 마땅한 방법이겠다.
그리고 그 작은 목숨들이라도 귀히 여기고, 함부로 대하지 않는 것, 그것이 이제껏 나를 품어 온 자연에 대해서 내가 갖출 수 있는 최소한의 감사와 예의가 아닐까?
올해 초, 2말 3초에 일제히 다 떠나버린 겨울 철새들의 귀환을 기대하며, 나와 같은 모든 작은 목숨들에 경의를!